부산 이바구

[부산 매력 공간] '장소의 혼이 되어' 땅을 지키다

금산금산 2015. 2. 25. 12:19

'장소의 혼'이 되어 땅을 지키다

 

 

 

 

산에 뿌리내린 문학관, 단풍 품은 하얀 미술관…

한 자궁서 나고 산 인연

 

 

 

 

전통한옥과 신축 건물이 어우러진 요산문학관은 문학과 사회의 소통을 지향한 요산 선생의 정신을 담았다. 사진 이승헌 제공

 

 

 

 

 

전율을 일으키는 문학 작품이나 예술 작품을 대할 때 우리는 작가를 궁금해한다.

왜냐하면, 작품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정신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작가가 세상의 결을 어떻게 읽어내고, 어떤 소재를 활용하여 결의 단면을 표현하는지 등이 궁금증의 핵심이다.

작가의 혼이 담긴 작품은 그윽한 향과 같아서, 복합적인 뉘앙스를 은근히 드러내는 공통점이 있다.


건축물도 간혹 혼이 깃든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장소의 감각을 잘 읽어내고 작가(건축가)의 정신을 거기에 잘 버무려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던,

아니면 있어야 했던 것처럼 디자인한다.

기억을 되살리고 맥락을 짚어냄으로써 시간이 지나 스스로 장소가 되게 하는 것이다.

혼이 담긴 장소에 가면 누구나 감동한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스며있는 땅의 기운이, 장소의 정서가 가슴에 와 닿는다.

 

 



■ 산과 같은 올곧은 정신을 지키는 '요산문학관'

요산문학관은 요산 김정한(1908~1996) 선생 생가터에 지어졌다.

아담하게 꾸며놓은 잔디마당에는 잘 생긴 은행나무 몇 그루와 감나무,

단풍나무, 담벼락 역할을 하는 대나무 등이 어울려 있다.

땅의 기운이 전달되면서 요산 선생의 지난 시간이 그려졌다.

부산의 대표 문학가인 요산 선생은 누구보다 땅에 애착이 깊었던

분이었기에 이곳을 뜨지 않았으며, 지역 리얼리즘을 소재로 삼아

올곧은 문학을 펼쳤다.


2003년 복원된 생가는 팔작지붕의 일자형 목조 집이다.

지금처럼 집들이 빼곡히 자리 잡기 전에는 금정산을 뒤로하고 너른 들을 내려다보는 부잣집 면모였을 것이다.

이런 전통한옥을 품으면서 전시관 성격의 건물을 짓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설계를 맡은 안용대 건축가(가가건축사사무소)는 지붕선을 경사지게 하여 기와의 그것과 조화를 꾀하면서도,

벽돌 벽면에 다양한 형태의 창을 뚫어 현대적 디자인을 추구했다.


1층 필로티 구조(기둥만 있고 건물이 띄워진 구조)는 잔디마당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받아 뒷마을까지도

시선이 확장하는 개방감을 제공했다.

전체 유리로 된 1층 북카페에 들어서면 지나온 마당과 생가가 한눈에 모두 들어온다.

2층 전시실의 한쪽 벽면에 뚫린 낮은 창도 마당과 생가를 내려다보게 했다.

2층 소규모 도서관에 들어서서 드디어 설계자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었다.

직사각형 공간의 안쪽 쏠림 벽에 전면 대형 창을 설치해 외부를 조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문학과 사회의 소통을 지향한 선생의 정신을 담으려 했다"고 건축가는 전한다.


1층 마당에서 외벽을 뚫고 튀어나온 저것이 뭘까 궁금했으나 3층 집필실 테라스에 나서는 순간 한방에 해소됐다. 아~ 하는 자연스러운 감탄사와 함께.

문인들에게만 일시적으로 개방한다는 두 개의 집필실에 딸린 테라스는 전면으로 아담한 옥상정원과 측면으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캔틸레버 돌출 난간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서니 1층 유리 벽에 요산 선생의 대형 사진과 함께 적혔던 '사람답게 살아가라'

붉은색 문구가 환청으로 들린다.



■ 넉넉한 품으로 주변 감싸는 '킴스아트필드미술관'

금정산 산성마을 한 자락에 범상찮은 형태의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으니

 '킴스아트필드미술관'이다.

지금도 주말이면 등산객과 동호인들이 뒤섞여 동네가 시끌벅적하지만,

이곳만큼은 언제 찾아도 차분하고 고즈넉하다.


잔디마당 곳곳에 조각품이 있다.

가족을 주제로 한 손가락 모양 조각이 가장 많고, 철제나 황동으로 만든

크고 작은 작품들이 호기심을 유발한다.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된 작품들은 오히려 땅에서 자라난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개인 작업공간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는 미술관 건물 자체도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하다.

1m가량 땅 위로 솟은 지하 원형 전시공간의 지붕으로 오르니 건물 주변의 산세가 근경과 원경으로 모두 보인다.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한 산은 겹겹이 쌓인 억겁의 세월을 품고 있다.

정화된 마음으로 내부로 들어가려 하는데, 가을 단풍보다 더 화려한

컬러의 입구가 마음을 다시 들뜨게 한다.

색에 매혹돼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고 나서야 겨우 입구를 통과한다. 1층의 연속된 작은 방들과 지하 1층 원형의 큰 룸은 기획전시공간으로

매번 전시가 바뀐다.

경사지붕 아래 다락방과 같은 2층엔 조각가 김정명 교수의 소장 작품들이

주제별로 상설 전시돼 있다.

방 전체가 노랑, 빨강, 파랑으로 온통 칠해져 정말 색다른 공간이다.

최근 기장 동암마을에 제2 전시관을 열었다. 바다를 면전에 둔

하얀색의 모던한 건물은 마을 분위기를 한순간 바꿔놓았다.

바다를 향해 깔때기 모양으로 입을 벌린 2층 전시공간에서

요산문학관 도서관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건물 설계자가 같은 사람이다.

 3층 작업공간과 파티공간이 가능한 옥상 덱 역시 바다를 향해 있다.

 

 



■ 장소에는 항시 묘한 연이라는 게 있다

금정산에 안긴 킴스아트필드미술관은 노랑, 빨강, 파랑으로 구분한 전시 공간이 이채롭다. 사진 이승헌 제공

두 건물은 묘한 인연이 있다.

태어난 시기(2006년)가 같고, 몸을 딛고 선 자리가

금정산 자락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요산의 생전 소장품이 전시된 전시관처럼 킴스아트필드 2층은

소품을 작품화해 진열하고 있다.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손길도 같이 미쳤으니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소의 혼을 담고 있는 부산의 몇 안 되는

소중한 문화공간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두 공간이 가지는 가치는 크다.

문학과 예술 작품을 감상하러 간다기보다는, 장소가 전하는 그윽한 감각을 충전하러 한번 방문해보시길 권한다.



◇ 요산문학관

▶위치 : 부산 금정구 남산동

-도시철도 장전역에서 80번 버스 타고 남산동 하차

▶규모 : 지하 1층, 지상 3층 ▶시설 : 북카페, 도서관, 전시실, 창작실 ▶관람 : 무료, 월요일 휴관

▶문의 : 051-515-1655 www.yosan.co.kr


◇ 킴스아트필드미술관

▶위치 : 부산 금정구 금성동

 

-도시철도 온천장역에서 산성버스 타고 종점 하차

▶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 ▶시설 : 전시실, 사무실, 체험공간 ▶관람 : 무료, 월요일 휴관

▶문의 : 051-517-6800 www.kafmuseum.org


동명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