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부산 컬처로드 연다] 2부 '역사와 함께하는 길' 임시수도 길

금산금산 2015. 2. 28. 14:28

'임시수도' 길

 

 

 

 

 

격변의 시대 아픈 역사 흩어져… 하나로 꿰는 '통큰 기획' 나와야

 

 

 

 

 

 

▲ 60여 년 전 잃어버린 가족을 만날 희망을 건지던 점바치 골목엔 이제 겨우

 점집 2곳만 남았다. 세월의 더께를 이고 있는 점집 길 건너에는 최근 초대형 상업시설 롯데몰이 문을 열어 과거와 현재의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정대현 기자

 

 


사람도 그렇지만, 누군가를 위해 짓는 건물이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도 시절에 맞는 역할이 있다.

부산에는 격변의 시기를 온몸으로 담아낸 역사가 오롯이 살아 숨쉰다.

특히 한국전쟁 기간 임시수도로 피란민을 끌어안은 부산은 어느 도시도 대신할 수 없는 독보적 위상을 갖고 있다.
 


■ 전쟁 같았던 삶의 흔적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시작되고 정부 기능이 부산으로 옮겨 오면서

서구 부민동에 일제 때 지어진 경남도청과 경남도지사 관사는

임시수도 정부청사와 대통령 관저의 기능을 맡았다.

 

 

 



임시수도기념관~영도대교
'다크 투어리즘' 적극 육성 필요
도개기능 복원에 그쳐 아쉬움
전시관 건립해야 의미 되새겨져

 

 


1926년 지어진 경남지사 관사는 2층 건평 100평 규모로

서양식과 일본식을 혼합해 지은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이다.

1984년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조성돼 오늘에 이른다.

2012년부터는 경남지사 관사 옆 고등검찰청 검사장 관사를 영상관으로 꾸며

피란 시절 시민들의 생활상을 되새길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햇살 좋던 지난 6일 오후 찾아간 기념관은 평일임에도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과 젊은 연인, 일본인 관광객 등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성현주 임시수도기념관 관장은 "일본인 관광객들에게는 여기가 하나의 관광코스로 알려져 있다"고 소개했다. 자신들의 건축양식을 담아 식민지 시절 지은 건물, 전쟁 중 대통령이 머무른 공간.

그들은 이곳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까?

과거의 영화에 대한 향수일까, 식민 지배 직후 한민족이 겪은 참혹한 역사에 대한 반성과 참회일까.

 


시리즈 자문위원인 나동욱 부산근대역사관 관장은

"생각보다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양식 있는 일본인이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역시 자문위원인 김기수 동아대 건축학과 교수는

"일제 시대 지어진 건축물을 허물어야 한다는 주장은 20~30여 년

일제에 의해 사용된 역사 때문에 해방 후 지금까지의 기억을 지우자는 것"이라며

"아픈 역사도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네거티브 문화재' 혹은 '다크 투어리즘'을 오히려 적극적인 시각에서 발굴하고 키울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임시수도 기념관 아래 동아대 부민캠퍼스에는 임시수도 정부청사가 있다.

1924년 경남 진주에 있던 경남도청을 부산으로 옮기면서 지어졌다.

동아대는 박물관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과거의 벽체와 기둥을 최대한 살려 복원했다.


동아대 디자인환경대학 지역유산재생연구팀 김영분 연구원은

 "이 건물은 원래 병원으로 설계돼 다른 지역 공공청사에 비해 화려함이나 웅장함보다는

실용적인 기능 위주로 설계됐다""다른 공공청사에서는 보이지 않는 지하실이 대규모로 만들어져 있는 것도 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세탁실과 욕실, 부속실 등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전쟁통의 랜드마크' 영도다리로 향한다.

영도대교로 가는 길은 피란민들이 일궈 낸 전쟁 같던 삶의 공간이다.

보수동 책방골목, 깡통시장, 국제시장, 자갈치시장이 남쪽 바다까지 쭉 이어진다.


거래된 물품의 목록이 다를 뿐, 전쟁통에 피란민들이 미군부대나 부두에서 들어온 물품을 사고팔았던 곳이다.

이제는 관광의 옷을 입어 야시장이 열리고, 문화관이 만들어져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이 되었다.


영도대교 아래에 이르자 오는 23일 개통 1주년 축제가 영도대교 아래 친수공간에서 열린다는 플래카드가 나붙어 있었다.

1934년 영도와 부산 도심을 잇는 도개교로 만들어진 영도대교는 높이 30m가량 올라가는 다리 모습이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고, 전쟁이 터진 후 부산으로 피란을 가던 가족들은 혹시 헤어지면 '들리는 다리'

 영도다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이 영도다리 아래 모이자 가족의 생사와 자신의 앞날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건네는 점쟁이들도 몰려들어 점바치 골목이 형성됐다.

지금 점바치 골목엔 점집 2곳만 남아 겨우 과거의 흔적만 알려준다.



■ 채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임시수도기념관부터 영도다리까지는 약 3㎞, 걸어서 1시간 정도의 거리다.

지금까지 소개한 다른 길에 비해 도심 한가운데 있어 접근성도 좋고,

매우 압축적으로 여러 유적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각각의 공간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충분한데, 힘겨운 삶을 서로 부대끼며 살아 낸 임시수도의 기억을 보다

명확하게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각인시켜 줄 통합된 기획이 절실하다.

임시수도기념관은 전쟁 시기 대통령 관저로 사용된 것을 기념하는 것이 주된 기능이고,

건물 자체가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어 확장 여력도 없다.

국제·자갈치시장은 그 자체로 시민들의 생활사를 보여 주는 장이고, 공공적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영도대교 기념관(혹은 전시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영도대교 복원공사 당시 문화재위원으로서 문화재 복원 개념으로의 공사를 강력히 요구했던

김기수 교수는 "영도대교의 도개기능 복원은 일단 관광 측면에서 성공적으로 보인다"면서도

"복원된 영도대교를 하나의 문화재로 보고, 그 문화재가 어떤 메시지를 시민과 관광객에게 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아직 번쩍 들리는 다리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피란민의 애환을 상징하는 영도대교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시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영도대교 전시관이

약속대로 만들어졌다면 단순히 하나의 건축물 전시관으로서의 의미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동아대 지역유산재생연구팀 황수환 연구원은 "복원공사에 착수하면서 부산시와 롯데, 문화재위원회가 영도대교 전시관을 짓기로 합의했는데 비용 부담에 대한 구체적 합의 없이 시간을 끌다 결국 롯데가 전시관 건립비용 부담을 거부하는 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고 말했다.

예산난에 허덕이는 부산시가 영도대교 전시관을 애초의 기획과 목적대로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산시 주변에서는 부산에 있는 대교 전체를 보여 주는 전시관을 지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역사는 빠지고, 그저 건축기술을 자랑하는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근대역사관 옆 한국은행 부산본점 건물도 부산의 근현대사를 보여 주는 박물관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있다. 나동욱 관장은 "부산은 항구의 역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데 한국은행 건물에 개항에서부터 임시수도

시기를 아우르는 부산의 근현대사 박물관을 지으면 주변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을 잇는 거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사와 접근성, 볼거리, 먹을거리, 살 거리를 모두 충족시키는 원도심 임시수도길. 구슬도 꿰면 보배가 된다는데, 이미 드러나 있는 보석을 하찮게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이호진 기자

 

 

 

공동기획 동아대 디자인환경대학 지역유산재생연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