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근대무역·금융 태동' 길
일제강점기부터 '금융의 도시' '영화의 도시'… 곳곳에 흔적
▲ 한성은행 부산지점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청자 빌딩. |
부산 중구 동광동 일대에는 금융기관이 많다.
마치 일본 도쿄 긴자거리처럼 이곳에 왜 이렇게 금융기관이 많은 걸까?
조금만 역사를 되돌리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곳이 금융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이 있던 자리였고,
백산기념관 옆 붉은 벽돌 건물(일명 청자 빌딩)은
옛 [한성은행] 부산지점 자리로 옛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시리즈 자문위원이자 부산시 문화재 위원인 동아대 김기수 건축학과 교수는
"근대기, 이곳에서 부산의 무역, 금융이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시리즈 자문 그룹은 동광동 은행거리→백산기념관→(갤러리 604)→옛 한국은행 부산본부→부산근대역사관(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복병산 창작공간)→(화가 김종식 선생 옛 화실)→부산지방기상청(대청동)→복병산 배수지→보수동 기상청(부산지방기상청 전신)→한국전력공사 중부산지점으로 이어지는 길을
컬처로드로 제안했다.
■ 속살 : 일제 수탈의 역사, 그 속에 핀 꽃
부산 무역·금융 태동길의 시작은 백산기념관이다.
일제강점기에 백산상회(1914~1919)와 백산무역주식회사(1919~1928)가 있었던 자리에
백산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지난 22일, 기념관 입구에서 한참을 지켜봤지만, 기념관을 찾는 시민의 발길은 볼 수 없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이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은행 점포 19개 중 14개 동광동에
백산상회 자리에는 기념관 들어서
붉은 벽돌 한성銀 부산지점 그대로
복병산 기슭에 국내 첫 영화사 위치
주차장으로 변한 건물터 안타까워
동광동 지역에는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의 은행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130 은행 부산지점(1893년 9월), 제18 은행 부산지점(1896년 7월), 경상농공은행 부산지점(1909년 4월),
주방은행 부산지점(1909년 4월)이 운집해 있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부산 전체에서 영업하고 있던 19개 점포의 은행들 가운데 70%가 넘는 14개의 은행이
부산 동광동에 있었던 셈이다.
비록, 당시의 은행 건물들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동광동 일대에는 증권, 은행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부산은 흔적을 잃어 가는 도시지만 그래도 곳곳엔 잊고 지냈던 근대 건축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백산기념관 바로 옆 붉은 벽돌 건물도 그렇다.
한성은행 부산지점이 있었던 곳이다.
건물을 자세히 보면, 석축, 창틀 등 아직도 당시 한성은행의 속살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대청동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자리는 조선은행 부산지점이 있었던 곳이다.
김 교수는 "부산을 금융도시라고 하면서 그 출발을 찾는 일은 등한시하고 있다. 옛 한성은행 부산지점 건물은 근대기 부산이 금융도시였음을 일깨워 주는 증거다. 일제강점기라 해서 무조건 도외시할 게 아니라, 이런 걸 발굴하고 시에서 근대건조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을 이야기하면 부산근대역사관도 빼놓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건립된 부산근대역사관은
고난과 투쟁으로 점철된 20세기 한국사의 축소판이다.
부산기상청에서 보수동 쪽으로 내려오면 110여 년 전에 건립된
부산임시관측소(부산지방기상청 전신)의 부지와 당시 청사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을 만나볼 수 있다.
이 건물은 110년 전 건립된 부산임시관측소 부지로,
현존하고 있는 목조 2층 건물이 임시관측소 청사로 추정되고 있다.
부산 최초의 현대식 배수지인 복병산 배수지. 정대현 기자 jhyun@ |
중구청 뒤편에 있는 복병산 배수지(부산시 등록문화재 제327호)도 눈여겨봐야 한다.
1910년 일본 거류민들을 위해 설치한 부산 최초의 현대식 배수지다.
수원지는 보수천 상류의 계곡, 지금의 구덕수원지였다.
'선경(仙境)의 물처럼 마르지 말라'는 뜻으로 새긴 요지무진(瑤池無盡)이라는
돌 현판이 지금도 복병산 배수지 입구에 남아 있다.
■ 활성화 :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유럽의 도시를 걷다 보면 몇 백 년은 기본이고 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건물도 간혹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외세의 침략을 자주 받은 것도 있지만, 여기엔 무엇보다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부족한 측면도 있다.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켜켜이 세월의 때가 묻어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존이 우선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무조건 지우고 보자는 식이었다.
이번 컬처로드에 포함된 몇몇 공간 역시 1~2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전력 중부산지점(부산 서구 토성동) 창고.
3~4년 전만 해도 있었던 창고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지난 22일 취재에서 확인한 결과, 건물은 깡그리 사라지고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장인철 중구 문화예술계장은 "비록 허름한 창고였지만 부산의 기억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이 또한 소중한 보물이었기에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마치 최근 지은 건물처럼 깨끗하고 세련돼 보이는 한국전력 중부산지점은
1930년대 국내 전력산업의 중추를 담당하던 ㈜남선전기의 사옥으로 지어졌다.
동행했던 김 교수는 "전문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공공기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어처구니없다"고 말했다.
부산임시관측소 건물도 특정 건설사가 상당 부문 매입한 상태다.
자문 위원들은 이런 공간에 대해 이제는 부산시가 팔짱만 끼고 있을 때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이 공간 역시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 1세대 순수 토박이 화가 김종식(1918~1988) 선생의 옛 화실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건물이 오랜 세월의 흔적을 견디며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지탱하는 밀알이 되어야 한다.
자문 그룹은 잊혔거나 숨겨져 있는 장소도 더 많이 찾아내고, 지역을 더 많이 홍보할 것도 주문했다.
요컨대, 복병산은 한국영화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자리이다.
중구 향토문화가 이영근 씨는 "1924년 대청동 복병산 기슭 러시아 영사관 건물에 조선 최초의
주식회사 형태의 영화제작사였던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이곳에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부산이 영화의 도시임에도 말이다.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있었던 곳은 중구청 밑 중국집 한성각 주변이었다.
정달식 기자
공동기획 ·동아대 디자인환경대학 지역유산재생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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