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 길-교육 종교 문화유산
희미해진 근대의 기억… 길 위에서 되새기는 '격동기 삶'
▲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은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몰려들어 살았던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간직한 건물이다. 정대현 기자 |
1876년 개항 뒤 부산은 서구 문명을 도입함으로써 개화와 근대화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때 근대식 교육제도가 생겼으며 기독교, 성공회 등 다양한 종교도 전파됐다.
새로운 교육과 종교가 격동기 부산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갔다.
근대 교육과 종교 문화유산을 통해 당대 삶을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를 위해 시리즈 자문그룹은 부산진일신여학교→영주동 봉래초등학교(옛 개성학교)→옛 부산유치원 터→용두산공영주차장(제7공립심상소학교 터)→광일초등학교(제1공립심상소학교 터)→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대각사로 이어지는 컬처로드를 제안했다.
■ 근대 교육의 중심지 부산
개화기 부산의 교육은 민간인이 민족의 자주와 자강을 위해 설립한 사학, 기독교가 설립한 근대식 학교,
일본의 식민지 교육의 정지 작업으로 변질한 학교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전개됐다.
3·1운동 발원지 '일신여학교' 등
좌천동 일대 기독교 건물 줄이어
국내 최초 '부산유치원' 아쉬운 철거
2017년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거듭나
과거 흔적 연결 디자인 작업 필요
부산 최초의 근대식 여성 교육기관인 부산진일신여학교는 선교와 교육 사업을 위해 설립됐다.
1895년 초량의 한 초가에서 시작된 일신여학교 초대 교장은 호주 선교사인 멘지스였다.
1905년 4월 15일 교사를 준공해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이 학교는 근대 여성교육과 부산지역 3·1 운동의 발원지 역할을 했다.
지난 15일 일신여학교를 찾았을 때 붉은 벽돌의 외벽이 도드라져 보였다.
동아대 디자인환경대학 지역유산재생연구팀 김영분 연구원은
"2층에 베란다를 설치해 20세기 초 서양식 건물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문위원인 김기수 동아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 건물은 부산진교회, 일신기독병원 등 좌천동 일대 기독교 관련 건물을 파생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영주동 봉래초등학교로 향한다.
봉래초등학교의 전신은 개성학교다.
봉래초등 본관 입구에 화강암 표지석이 있다.
1895년 부산 경무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박기종이 주축이 돼
부산 최초 근대학교인 개성학교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봉래초등학교에서 동광길을 따라 걸어가면 대청로와 만나게 된다.
옛 부산유치원 터는 부산 중구 동광동 3가 44번지 일대다.
부산유치원은 일본 고급관료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1897년 3월 우리나라 최초로 일본인에 의해 설립됐다.
옛 부산유치원 건물은 2007년 1월 철거됐다.
부산시는 이곳에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을 만들 계획이다.
제7공립심상소학교가 있었던 곳은 용두산공영주차장으로 변했다.
1920년 개교한 제7공립심상소학교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아동의 초등 교육을 담당했다.
1946년 동광국민학교로, 1996년엔 동광초등학교로 교명을 바꿨다.
1998년 9월 동광초등학교는 남일초등학교와 통합돼 광일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광일초등학교의 전신인 제1공립심상소학교는 1877년에 설립됐다.
부산의 전관 거류지 내 일본인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최초로 설립된 초등교육기관이었다.
1946년 남일국민학교로 이어졌다.
동아대 디자인환경대학 지역유산재생연구팀 남윤순 연구원은
"동광동이나 대청동은 과거에 일본인 밀집 거주지여서 일본인을 위한 학교가 많았다"고 말했다.
■ 종교시설 어떤 게 있나
광일초등학교 인근에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이 있다.
1924년 지어진 부산주교좌성당은 부산시, 경상남도, 경상북도를 담당하는
대한성공회 부산교구의 17개 성당 가운데 1호 성당이다.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립 당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지난해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제573호로 지정됐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이 종탑과 다락방까지 차지하고 피란살이를 할 정도로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건물이다. 노현문 신부는 "성공회에서 일본인을 선교하기 위해 일본인 밀집지역이었던 이곳에 성당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부산 중구 신창동에 위치한 대각사는 1894년 일본 동본원사의 부산별원으로 창건됐다.
부산에 세워진 최초의 일본 사찰로 일본과의 유일한 무역 교류소였다.
1921년 만들어진 종이 설치돼 있다.
수차례 신축을 거쳐 동본원사 부산별원의 모습이 사라지고 한국식 절로 변모했다.
■ 채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원도심 속 교육과 종교 건축에는 근대역사가 오롯이 새겨져 있다.
부산진일신여학교와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은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찾는 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부산유치원, 제7공립심상소학교 등 다른 건축물의 경우 옛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사라진 근대의 기억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시리즈 자문위원들은 옛 부산유치원 터에 건립될 예정인 '부산영화체험박물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은 곧 착공에 들어가 2017년 초 완공될 예정이다.
지하 3층, 지상 4층 규모로 영화체험관, 전시실, 영상홀 등 시설이 들어선다.
김기수 교수는 "박물관을 지을 때 부산유치원의 흔적과 기억을 연결하는 디자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순임 전 부산시의원은 부산유치원과 영화체험박물관의 연계를 주장한다.
그는 "옛 부산유치원 터에 짓는다는 상징성을 고려해 유아교육기념관 공간을 별도로 확보해야 한다"며
"영상과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이 공간이 유아교육의 발상지였음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영화체험박물관에 별도의 교육기념관이 들어선다면 역사관을 운영하는 학교들과의 연계 전시가 필요하다. 봉래초등학교(교장 김휘)와 광일초등학교(교장 이재선)는 자체 역사관에 학교 변천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개방하기가 쉽지 않다.
전담 인력 부족, 자료 유실 우려, 학생 안전 문제 때문이다.
광일초등학교 이재선 교장은
"공공에서 운영하는 교육기념관이 생긴다면 조건부로 학교 자료를 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진일신여학교는 주말에도 개방할 필요가 있다.
부산진일신여학교를 관리하는 부산예수교장로회 부산노회 김형효 사무국장은
"주말에 전시관을 안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배치할 수 있도록
동구청이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문위원인 나동욱 부산근대역사관 관장은
"근대사를 수탈, 억압, 말살의 기억이라는 거시사로만 볼 게 아니라
당대 삶의 모습에 관한 미시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도심 속 교육과 종교 문화유산은 흔적만 남은 사례가 많다.
컬처로드를 만들 경우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표지석 설치와
스토리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해설사 도입이 필요하다.
김상훈 기자
공동기획 동아대 디자인환경대학 지역유산재생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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