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부산 컬처로드 연다] 2부 '역사와 함께하는 길' 산복도로 역사 길 下

금산금산 2015. 3. 28. 14:11

산복도로 '역사 길' 下

 

 

 

 

 

유치환의 연서·장기려의 나눔·김민부의 노래가 발길을 잡는 곳

 

 

 

 

 


▲ 초량 산복도로 길에서 만나는 유치환 우체통.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1년 뒤 수신처로 배달된다.

 

 

 

 

영화 '국제시장'에는 70대가 된 남자 주인공이 산복도로 집에 앉아

 부산항을 바라보며, "내 꿈은 선장이었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6·25전쟁 때 피란 내려와 가족을 건사하느라 자신의 꿈은 늘 뒷전이었던 주인공.

주인공의 한 많은 인생은 그가 앉아있던 산복도로가 대신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산복도로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변천 과정을 품고 있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거쳐 경제 성장 시대까지 수많은 이들의 눈물이 녹아 있다.

이번 컬처로드는 유치환 우체통을 시작으로 옛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 장기려박사기념 더 나눔, 김민부 전망대,

168계단, 소림사, 한중우호센터, 백제병원으로 이어진다.

이번 코스 자문을 도운 정영석 소민아트센터 관장은 "가장 부산다운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 유치환의 낭만과 장기려의 나눔을 만나다!

출발은 유치환 우체통이다.

산복도로 길바닥과 같은 높이로 있는 건물 옥상. 그 중간에 선 빨간 우체통이 인상적인 곳이다.

청마 유치환은 통영에서 태어났지만, 부산에서 오래 살았고 특히 부산 동구와 깊은 인연이 있다.

경남여고 교장을 지냈고 그가 일생을 마친 곳도 부산 동구 좌천동이다.



서민 삶 녹아있는 '가장 부산다운 곳'
연인 향한 그리움 애틋한 유치환우체통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기념관
옛 경남도지사 관사였던 찻집 '달마'
부산 최초 근대 민간병원 '백제병원'



청마는 나이 마흔이던 1947년에 지금 예총의 전신인 문화단체총연합회 부산지부장을 맡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문인구국대로 부산에서 활동한다.

 1963년 경남여자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했고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던 1967년 2월 13일 좌천동에서 버스에 치여 안타깝게 사망한다.


그의 무덤이 부산에 있고 그가 죽을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고받았던 사랑의 편지, 그것도 5천 통이 넘는

연서를 유품으로 남겨놓은 곳도 부산이다.

부산에 살던 청마가 발치를 돋우고 연인이 있는 통영 쪽을 바라보던 곳이

지금 유치환 우체통이 서 있는 자리이지 않을까 싶다.


유치환 우체통에서 산복도로 길을 따라 걸어가면 부산이 기억해야 할 또 한 명의 인물,

장기려 박사의 흔적을 만난다.

장기려박사기념 더 나눔센터이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 박사는 평생 환자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돈에 욕심을 내지 않는 사람을 옛날에는 '청빈'이라고 했지만, 요즘에는 '바보'라고 부른다.

자기 자신을 바보로 칭했던 김수환 추기경과 무소유를 살다간 법정 스님, 그리고 장기려 박사를 합쳐

21세기 대한민국의 '3대 바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1976년 부산 동구 수정동에 청십자병원을 세운 장 박사는 죽을 때까지 영세민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의료 복지 향상에 매진했다.

장 박사 기념관에는 생전 선생이 사용했던 의료 기구와 유품을 비롯해 선생의 친필 편지와 영상도 만날 수 있다. 지금도 장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던 환자들이 장 박사의 영상을 보며 눈물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숨겨진 사연, 역사의 뒷이야기를 찾자!

옛 경남도지사 관사. 현재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선화여중 정문 옆에는 유난히 눈길을 끄는 전통 찻집이 있다.

 '달마'라는 이 찻집은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예전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6·25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내려와 머물던 곳이다.

700여 평의 넓은 대지에 펼쳐진 집 자체도 보물이지만 오래된 수령의 나무들과 돌탑, 방공호까지

예전 그대로 모습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집무실로 사용했던 방 앞으로 아침마다 대통령에게 인사를 하는 시민이 몰렸다고 한다.


지금은 동네 주민들조차 이런 사연이 있는지 잘 모른다.

찻집을 운영하는 박승례 대표는 "역사를 가진 이 집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 아쉽다.

                                             체험이나 탐방 코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아래에서 올려보면 숨이 턱 막히고, 위에서 내려 보면 굴러 떨어져 큰일(?)이 생길 것 같은 이곳. 168계단이다.

수도가 들어오기 전 아낙네들은 계단 밑에 있는 물을 길어와야 했고 저승 가기보다 힘들다고 해서

'하늘 계단'으로 불리기도 했다.

 부산역, 부산항에서 날품 팔아 일당을 챙겨야 했던 사람들은 이 계단을 내달려 가장 먼저 일터를 찾았고

노동으로 지친 몸을 눕힐 집을 찾아 다시 이 계단을 올랐다.



지금 이 계단의 중간에는 김민부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김민부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그가 쓴 노래 '기다리는 마음(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은 알 것 같다. 1941년 부산 동구 수정동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해

'천재'로 불린 그는 31살에 요절했다.

김민부 전망대는 부산항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김민부 전망대를 내려오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절, 소림사를 만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재일학도의용군들이 자진해 배를 타고 전쟁에 참여했다.

일본 영주권을 보유해 한국에서 병역 의무가 없었지만, 이들은 조국을 위해 기꺼이 전쟁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조국을 향했던 이들의 대가는 너무 컸다.

전쟁이 끝났어도 일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일본 정부가 출국 허가를 받지 않고 나갔다는 이유로 재입국을 거부했고

이들을 품은 곳이 부산 동구 초량동의 소림사였다.

소림사에서 머물며 일본 정부의 입국 허가를 기다렸지만

끝내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해 한국에 남아야 했던 이들은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백제병원. 지금은 빈 건물로 남아 있다.

 

 

소림사에서 부산역으로 내려오면 부산 최초의 민간 근대병원, 백제병원을 만난다.

빨간 벽돌의 5층짜리 서양식 건물은 단연 눈길을 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유학해 의사가 된 부산 출신 최용해가 동양척식회사의 돈을 빌려 지었다.

1922년 완공되었고 초창기에는 독일인 의사와 일본인 의사를 고용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인체표본을 이해하지 못했던 당시, 흉흉한 소문이 퍼졌고 10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중국 음식점으로 변했다가 일본군 장교 숙소, 부산 청년 치안대 사무소, 결혼식장으로 바뀌며

역사의 변화를 겪어야 했다.

백제병원의 후손은 지금도 부산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의사로 일하고 있다.


 

한중우호센터 내부.

 

 

여기까지 왔다면 근처 차이나타운 공영주차장 2층에 생긴 한중우호센터도 들러보자.

차이나타운의 역사와 한중 수교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자료가 정리돼 있다.


부산 동구청은 현재 초량동 산복도로 길을 대상으로 '산복 소풍'이라는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5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산복도로 이바구길 조성을 담당하고 있는 이소영 주사는

 "범일동 쪽의 역사 이야기를 담은 조형물 작업을 하고 있다.

수정동과 좌천동의 역사 길도 계속 찾고 다듬을 계획이다"고 밝혔다.


김효정 기자

 

사진=김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