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부산 매력 공간] 삭막한 공단에 '예술의 온기' 감돈다

금산금산 2015. 3. 18. 14:35

삭막한 공단에 '예술의 온기' 감돈다

 

 

 

 

 

기계 욕망 걷어낸 터에 문화가 꿈틀…시멘트 틈새 뚫고 민들레 피듯

 

 

 

 

 

 

예술지구_P(왼쪽), 홍티아트센터. 사진 제공=이승헌

 

 

 

 

 

 

이지적 규율이 판을 치는 시대에는 감성적 자율에 대한 갈구함이,

부드러운 감성으로 흐느적거리는 시대에는 다시 강성의 리더십을 갈망한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이며, 문화의 명멸 과정이다.

고딕이 르네상스를 낳고, 르네상스가 바로크를 낳고, 바로크는 다시 신고전주의를 낳고,

신고전주의는 수공예운동을 낳고, 수공예운동은 모더니즘을 낳았다.

모더니즘에 대한 불만은 '레트로'와 '빈티지'와 '몽타주' 등 용어로 다시금 감성의 유령을 불러내고 있다.



산업사회가 남겨놓은 욕망의 찌꺼기들을 예술과 문화운동으로 순화시키려 하는

우리 시대의 현상 역시 같은 맥락의 고민이라 하겠다.

생산구조의 변동으로 유휴지로 남게 된 산업구조물을 문화공간으로 재생하는 방식이 대표적 그 예이다.

중국의 '798 예술구'나 스위스의 취리히 웨스트, 독일의 카를스루에 등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실험이 진행 중이다. 부산에도 이제 막 그 첫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  금사공단을 창착의 열정으로 색칠한 '예술지구_P'

공장과 창고로 빼곡하던 부산 금정구 회동동 금사공단에

복합문화공간이 들어섰다.

그것도 도시고속도로의 짙은 그림자가 덮고 있는 삭막하기 짝이 없던

장소에. 마치 시멘트 담벼락 틈사이로 풀이 자라나오는 것과 같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곳에 창작의 꽃이 피어날 터가 마련된 것이다.

몸과 마음을 돌아볼 겨를 없이 생산 시스템에 하루 일과를 맡기는

공단 근로자들에게는 허파를 갖게 된 셈이다.


'예술지구_P'는 두 동의 건물에서 다양한 예술창작활동이 일어나는 그야말로 복합적 공간이다.

신축한 건물의 계단을 오르다 문을 열어보니 녹음실에서 젊은 대중음악 지망생의 녹음이 밀도있게 진행 중이다. 한 층을 더 올라가니 경사지붕 아래 하얀 공간의 갤러리에 사진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서 흡음과 음향에 만전을 기울인 공연장을 둘러보고, 의외로 예쁘게 꾸며진 카페에서

잠시 차를 한잔 한다.

건너편 창고를 개조한 건물의 1층에서는 다음 전시준비에 분주하다.

천장의 가운데 부분을 사각형으로 슬래브 오픈한 것이 밋밋한 공간에 긴장감을 준다.

철근 배근까지 그대로 노출시켜 놓았다.

1층에 공동 취사공간이 있고, 철재 원형계단으로 오르면 각 작가가 배정받은 레지던스 스튜디오가 나열되어 있다. 공간을 들여다 볼 때마다 보석상자를 하나씩 여는 것 같은 묘미를 느낀다.

그런데 더욱 놀라게 된 것은 이 모든 환경의 조성과 운영 경비를 지역의 한 중소기업(파낙스그룹)에서 전적으로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근에 또다시 기존 허름한 창고를 리모델링하여 전시공간과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있으니,

이름 그대로 'Art Strict'로 지역을 바꾸어가고 있다.

영리 목적이 아닌 순수예술 창작공간의 운영에 이처럼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던 경우가 있었던가.

문화의 가치를 아는 기업주의 젊은 마인드가 너무나도 반갑게 다가왔다.

 

 



#  장림공단을 붉고 푸르게 물들인 '홍티아트센터'

'홍티'는 무지개 '홍(虹)'에 고개를 뜻하는 순우리말 '티'를 합쳐서 만든

이 지역 마을 명칭이다.

원래 포구였던 마을은 시의 매립 정책에 따라 바다를 잃고 정체성도

 잃어버렸으나, 그나마 최근에 설립된 아트센터로 인해 그 이름의

명맥만큼은 유지하게 되었다.

분주하게 지나가는 물류 차량들과 거친 기계소리만 가득하던 지역에

아트센터는 색색의 무지개 빛을 다시금 물들이기 시작했다.



건물 외장재로 채택된 산화철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질감적 특징으로 인해 현대 건축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재료 중 하나인데, 묘하게도 공장지대의 분위기와도 잘 맞다.

붉게 녹슨 철이 혹여 차가워 보일까봐 설계자는 건물의 양단부를 송판노출콘크리트에 알록달록한 색을 칠하는

깨알같은 배려를 하였다.

격자형으로 꾸며 놓은 건물 주변의 조경 역시 제법 공들여 조성되어 발길을 붙들었다.

논두렁과 같은 산책길이 있고, 그 사이사이 둔벙(웅덩이와 같은 뜻)과 같아 보이는

빈 영역에 거대한 조각물이 하나둘 세워져 있다.


1층 전시실은 대형 설치미술이 놓일 만큼 층고가 높다.

공동작업장과 작가들의 레지던시 스튜디오들이 여럿 있으며, 작가간 교류를 위한

세미나실이나 커뮤니티홀도 있다.

내부 벽면 전체는 흰색으로 되어 있으나, 계단 옆벽은 붉은색, 사무실 앞 전시 벽면은 검은색,

중정 벽면은 초록색을 칠해 창작의 잠재성을 자극하고 있다.

2층 옥외 테라스에 설치된 철재조각 작품은 맞은편 공장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더욱 빛이 난다.

입주 작가들 외에도 공단 주변에 개인 작업장을 가진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과 공단 근로자나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 참여 프로그램까지도 운영하고 있다 하니, 센터는 지역과의 공생 공유를 실천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방문한 날, 점심 식사를 마친 아주머니 네 분이 센터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하며

수다를 떨다 가신다.



# 경계에서 새로운 문화운동 꽃이 피어나길

경계 지점에서의 갈등과 쟁투는 어색하고, 앞을 알 수 없고, 피곤한 일이라 피하고 싶지만 새로움을 낳기 위해서는 겪어야 할 산통의 과정이다.

공단에서 새로이 시작된 문화운동이 재정적으로나, 운영상에 어려움이

없을 리 없다.

특히나 사람의 문제, 작가들 간 혹은 운영자와 후원자 간의 교류와 협력은 숱한 변수들로 인해 성숙한 커뮤니티 그룹이 되기까지 넘어야 할 고비가

엄청 많을 것이다.

 지역문화, 지역민과의 밀착된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도 지난한 노력으로만 얻어질 어려운 숙제거리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디 척박한 문화의 땅에 떨어진 민들레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 주변으로 홀씨를 널리 퍼뜨려주기를 기원한다.

평상시에는 무덤덤하다가도 한번 필을 받으면 불 일듯 열정이 타오르는 것이 부산 사람의 기질이니, 곳곳 경계 지점에서 일어나는 창작 활동이

대안적 문화를 창출하는 우듬지가 되지 못할 것도 없다.


◇ 예술지구_P

위치 : 부산 금정구 회동동

규모 : 지상 2층+지상 3층

시설 : 전시장, 공연장, 카페, 녹음실, 스튜디오

 

설계 : 김명건(다음건축 종합 건축사사무소)

문의 : 070-4322-3113 http://www.artdp.org


◇ 홍티아트센터

위치 : 부산 사하구 다대동

규모 : 지상 2층

시설 : 전시장, 공동작업장, 세미나실, 스튜디오

설계 : 서원건축사사무소 조서영+건축사사무소 상상원 이상석

문의 : 051-263-8661 http://hongti.busanartspace.or.kr


동명대학교 실내건축학과 이승헌 교수 yein1@tu.ac.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