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산기업 스토리] '왕표 연탄'

금산금산 2015. 4. 25. 10:51

'왕표 연탄'

 

 

 

 

왕표연탄은 창업주 손도익 회장이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문을 연 우리나라 연탄업계의 효시다.

 

1·4후퇴 때 피난 온 손 회장이 부두노동자로 일하면서 퇴근 후에는 행상을 하는 등 억척스럽게 번 돈으로

 수동식 구멍탄제조기 1대를 구입해 시작한 회사다.

당시 손 회장은 부산 동구 초량동 자택 뒤 텃밭에서 하루에 200장씩 연탄을 찍어내어 직접 배달까지 하면서

착실하게 모은 돈으로 종잣돈을 마련했다.


 


1·4 후퇴 때 피난 와 창업한 회사
에너지사업 다각화로 준재벌 등극

 

 


이후 1년 만인 1952년, 손 회장은 부엌용 연탄불로 온돌 난방까지 겸할 수 있는 토관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연탄이 땔감 나무를 몰아내고 가정용 연료로 자리를 잡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1957년 국내 최초로 프레스식 연탄제조기를 개발한 데 이어 1959년에는 윤전식 제탄기를 발명하는 등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했다.

그 여세를 몰아 1967년에는 부산 동래구 낙민동에 대형 공장을 지으면서

비로소 왕표연탄이라는 독자브랜드를 선보인 것을 계기로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하는 등

'제2 도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비슷한 시기 박정희 정부가 산림녹화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땔감용 나무 채취를 엄격히 금지한 것도

왕표연탄의 성장에 엄청난 호재로 작용했다.

여기에다 1974년 경동탄광을 설립할 무렵 제3차 중동전쟁이 터지면서

유류파동이 일어난 것도 사세가 수직 상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곳간이 넉넉할 때 흉년에 대비하라'고 했던가.

1, 2차 오일쇼크로 연탄산업이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던 1978년 손 회장은

조만간 액체에너지시대가 올 것에 대비해 경동보일러를 창업하기에 이른다.



그후 4년 만인 1982년, 기체에너지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상하고 창업한

울산도시가스 등이 잇따라 대성공을 거두면서 준그룹사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처럼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왕표연탄은 1988년 장남 손경호 씨가 대표이사로 취임, 2세 경영시대를 열면서

1990년 상호마저 ㈜원진으로 바꾸었다.

이어 2003년에는 본사를 경남 양산시로 옮겨가면서 계열사가 무려 10개에 달하는 준재벌급 회사로 도약하는 등 성공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junsh@ 


정순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