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부산 컬처로드 연다] 3부 '시민과 함께' 걷다

금산금산 2015. 5. 30. 16:37

시민과 함께 걷다

 

 

 

 

 

'부산 역사길' 문화재단 시민아카데미로 첫발 떼다

 

 

 

 

 

▲ 부산문화재단의 시민아카데미 '부산 역사길 따라' 참가자들이 지난 12일 동래향교 명륜당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김병집 기자 bjk@

 

 

 

 

 

지자체의 스토리텔링 경쟁이 치열하다.

각 시·군·구는 '콘텐츠 활성화'라는 이름하에 경쟁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경북 영주시는 지난 3일 선비의 고장 영주를 홍보한다며 서울 국립극장에서 오페라 '선비'를 선보였다.

우선 영주를 상징하는 오페라를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했다는 것부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지만

흥행이라도 잘 되었다면 위안을 삼을 만하다.

국비 2억, 도비 3억과 시비 3억, 총 8억을 투입한 오페라 '선비'는 유료관객 12명이라는 비극적인 기록만 남겼다. 

 

 


 
본보 시리즈 시민들 큰 호응
문화재단 '부산의 역사길 따라' 마련
장관청~동래향교~복천고분군
여행사 가이드·건축가 등 참가
목요일 오후 5시간 걷기로 진행

"뿌리를 알고 향유하는 게 문화생활
역사·문화·삶 엮은 부산의 길
지역민 자부심이자 관광상품 될 것"

 

 

 



둘레길도 마찬가지다.

제주도 올레길의 성공 이후 각 지자체에서 웰빙에 관심 있는 주민과 걷는 여행자를 위한 둘레길을 쏟아내고 있다. 어떤 길은 주민의 삶 속에서 살아남을 것이고, 어떤 길은 표지판에서만 존재하는 길로 남을 것이다. 

'부산 컬처로드 연다' 기획 시리즈는 부산의 역사, 문화, 삶과 연관 지어 부산의 길을 엮고 이었다.

부산문화재단은 본지의 보도가 호응을 얻자 부산의 역사길을 걷는 시민아카데미를 개설했다.

지난 12일 시민아카데미 첫 수업에 동행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6시 진행되는 수업이라 참가한 이들은 대부분 50~60대였다.

여행업에 종사하는 청년과 동래에 50년 이상 거주한 70대도 수업에 참가했다.


첫 수업은 장관청~수안역~동래부동헌~송공단~동래향교~내주축성비~복천고분군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수영에서 시작해 동래와 복천을 거쳐 연산동 고분군으로 끝나는 컬처로드보다는 이동거리나 소요시간이 짧았다. 컬처로드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를 단위 시간으로 잡은 데 비해 시민아카데미는 매주 목요일 오후라는

시간대로 한정했고, 또 강의와 탐방이 어우러진 역사길 탐방이 지루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 동래 역사길, 다크투어리즘으로 키워야

박기택(29) 씨는 지난해까지 여행사에서 가이드로 일했다.

박 씨는 "유명한 관광지를 중심으로 스쳐 지나가는 관광은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면서

"빈 도시를 채우는 역사와 문화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씨는 부산의 민속과 문화재를 공부하며 관광과 역사를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부산관광공사 투어코디네이터로 주로 중국인 관광객을 맞이하는 김희정(27) 씨도 당직을 바꿔가며

시민아카데미에 참가했다.

"점점 더 많은 중국인이 부산을 찾을 테고, 쇼핑하는 곳 남포동과 바다를 둘러보는 해운대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인 관광객 유커(游客)가 두 번, 세 번 부산을 방문하게 하려면

역사와 문화를 가미한 콘텐츠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왼쪽 사진은 동래부 동헌 충신당, 오른쪽은 동래읍성지 북문 안쪽을 따라 내주축성비에 이르는 길. 김병집 기자 bjk@

 

 

동래구청 인근에 위치한 장관청과 동래부 동헌, 송공단은 모두 일본과 연관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의 관문을 지키다 산화한 순국선열의 넋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며, 임진왜란 이후

동래의 중요성이 커져 개보수한 흔적도 가지고 있다.

또 일제강점기 때 이러한 호국충절의 정신을 짓밟기 위해 철거·훼손한 점도 공통점이다.


따라서 동래 역사길은 일본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다크투어리즘을 진행할 잠재력도 지니고 있다.

다크투어리즘은 재난, 재해나 학살과 전쟁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회상하고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관광자원을 일컫는다.

아픈 과거와 희생자를 상품화 한다는 논란도 있지만, 최근 한국과 일본이 겪고 있는 역사적 논쟁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여행상품의 기획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새로운 화해의 씨앗이 될 수 있다.

 

 



■ 주변의 가치를 아는 것이 문화의 시작

동래 역사길을 걷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옛날 관청만 둘러보는 것이 아니다.

수안역사 안에 위치한 임진왜란 전시관은 동래의 유래를 살펴보는 영상물,

목표물을 겨냥하는 총 쏘기 게임, 미니어처 조감도가 전시되어 있어 볼거리가 풍성하다.

이날 참가한 주미옥(50) 씨는 "수안역을 자주 이용하면서도 이런 공간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앞으로 도시철도역에 올 때마다 한 번이라도 더 둘러봐야겠다"고 말했다.


동래부 동헌은 최근 복원한 건물들로 새 단장을 마쳤다.

병자호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반 이상 훼손되었던 부속 건물들을 옛 문헌을 바탕으로 지난해 복원해냈다.

일제강점기 때 금강공원 앞으로 옮겨진 망미루(부산시 유형문화재 제4호)도 본래 있었던 자리를 되찾았다.

부산시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시대 관청인 동래부 동헌은 분명 옛 건물이지만, 복원과 이전을 거치며

 스스로의 생명력을 더했다.


내주축성비(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16호)와 복천동 고분군을 가는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

읍성 둘레길을 거쳐야 했다.

아스팔트와 흙길이 적절히 안배되어 있고 도심 속에서 쉽게 만나는

옛 건축 양식이 수강생들의 '걷는 맛'을 돋웠다.


이번 시민아카데미 '부산 역사길 따라'를 기획한 부산문화재단 전이섭 팀원은 "부산일보 컬처로드 시리즈가 공간과 공간 사이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의미를 생성하는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문화생활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뿌리를 알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덧붙였다.

한동안 지자체 '축제'가 남발되더니 이젠 '이야깃거리' 만들기 경쟁에 돌입했다.

지역 고유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접목해 이야깃거리를 선점하는 지자체가 가장 먼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지역신문이 기획하고, 부산문화재단에서 실제로 시민과 같이 걸었다.

첫발은 뗀 셈이다.

여기에 지속성을 가하려면 먹을거리, 묵을 곳도 연이어 발굴해내야 한다.

지역민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주고, 외지인은 머무르며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곳.

길이 동력을 기다리고 있다.

조소희 기자 s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