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여행

[시장따라 골목따라] 남포동 '포장마차' 골목

금산금산 2015. 6. 6. 19:32

남포동 '포장마차' 골목

 

 

 

 

 

저녁 길손의 따뜻한 보금자리

 

 

 

 

 

 

                                                                                 

 

 

 

 

겨울비가 추적주적 내린다.

옷깃을 여미는 손등에 빗방울 하나 듣는다.

몸과 마음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겨울 저녁이다.

이미 젖은 마음 둘 곳 없어 황망스러운데 어디선가 따뜻한 불빛들이 꽃을 피웠다.

먼발치의 불빛들이 이렇게 반가울 수 있을까?  


 
겨울비 속 포장마차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등대불빛과 같이 반갑고도 반갑다.

노곤한 일상을 이끌고 귀항을 서두르는 가장들에게는

잠시 거쳐 가는 중간 기항지쯤이 포장마차의 존재라 하겠다.

그래서 포장마차의 불빛은 푸근하고 살갑다.

정이 듬뿍 묻어 있다.

남포동 포장마차 골목의 불빛도 다름 아니다.

일렬로 서 있는 포장마차의 불빛이 마치 작은 꽃잎의 꽃다지처럼 앙증맞다.

이 꽃들이 일제히 피어 꽃밭을 이룬다.

이렇게 소박한 꽃밭에서 이 시대의 가장들은 잠시 무거운 몸을 맡기고 마음마저 따뜻하게 데워 가는 것이다.
 


1989년에 이 골목이 만들어졌으니 햇수로 17년의 세월이다.

70~80여 집이 집단적으로 모여 그 규모만 해도 여간 아니다.

최근에는 국제영화제 전후로 포장마차의 크기나 모양 등을 규격화 시켜 양성화 했다.


그만큼 믿고 찾을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옛날처럼 단속반에 쫓겨 다니며 막다른 좁은 골목에서 숨어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특색 있는 포장마차골목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지금은 '피프(PIFF)거리'로 세계적 영화의 거리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이 일대가,

20여 년 전에도 못잖은 부산의 영화 중심지였다.

국도극장이 버티고 있었고,재개봉관인 왕자극장이 뒤를 잇고 있었다.

때문에 주말마다 영화를 보기 위한 많은 인파들이 북적였고,이들을 상대로 난전이 속속 들어서곤 했다.

일명 '영화관 골목' '잡상인 골목'이라 불린 이곳에는,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난전이 '잡상(雜商)'을 이루었다.

각종 먹거리전부터 최신 유행의 생활용품,그리고 행인의 주머니를 노리는 야바위꾼까지 한데 모여 줄을 이었다. 이들 난전 구경만도 반나절이 훌쩍 지날 정도로 아주 좋은 눈요기 거리였다.

바로 이곳에 이들 포장마차가 진을 치고 피곤한 길손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가격도 다양하다.

8천원 선부터 1만2천원 선까지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안주 종류는 계절 따라 15~20여 가지.

이 곳의 '7번집'만 해도 해삼,멍게,개불,가리비,굴,피조개 등 주로 해산물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 외 꼼장어,닭모이주머니,돼지족발 등도 입맛을 돋우었다.



가끔씩 들리는 '석화(생 굴)집'에 앉는다.

겨울이면 은근히 생각나는 집이다.

석화를 한 아름 쌓아놓고 주문에 따라 직접 까서 손님에게 내 놓는다.

그만큼 신선한 굴을 맛 볼 수 있어서 좋다.

이곳의 특징은 다양한 소스에 있다.

'석화(생 굴) 전문 포장마차'라 석화애호가의 다양한 입맛을 배려했다.

기존의 회 초장을 비롯해서 레몬즙,타바스코 소스,굴소스 등이 석화의 싱싱한 맛을 더욱 승화시켜 준다.

굴 껍질 안의 생굴에 타바스코 소스를 듬뿍 친다.

타바스코 향이 새콤하게 코를 자극한다.

벌써 입 안에는 침이 가득 고인다.

'후루룩' 소리와 함께 생굴을 입에 넣는다.

신맛과 매운맛 뒤로 굴 특유의 구수하고 들큰한 맛이 서로 어울린다.

콧속으로는 바다의 해감 내음이 가득하고,입 안에는 남해 청정 지역의 신선함이 뒤엉킨다.

소주 한 잔으로 입맛을 가신 뒤 또 하나를 입에 넣는다.

신선함은 여전하다.

과연 겨울철 별미다.

이 시대의 길손들에게는 비 오는 겨울 저녁이 한없이 외롭고 고독하다.

 '군중 속의 외로움'인 것이다.

이 때 이들의 '길손 병(?)'을 고쳐주는 곳이 포장마차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겨울 저녁 따뜻한 보금자리 같은 이곳에서 푸근하고 살가움을

잠시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