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부산 매력 공간] '모두 내려놓고' 자연으로

금산금산 2015. 6. 10. 09:15

모두 내려놓고 자연으로

 

 

 

욕망은 내려놓고 자연을 떠받쳤구나…木石의 설법

 

 

 

범어사 대웅전. 범어사 대웅전은 다포식 맞배지붕이다.

 

 

 

 

 

사찰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은 연신 합장한다.

크든 작든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불전 앞에서는 매번 두 손을 모으며, 탑 앞에서도 합장은 이어진다.

따라온 아이들 역시 고사리손을 모으더니, 스스로 대견한 듯 씨익 미소를 띤다.

등산복 차림의 방문객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마음속 소망을 빈다.

경거망동 시끄럽게 떠들거나 뛰어다니는 이는 없다.

들뜬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는 조용히 경내에 머무른다.

자연과 더불어 사찰 공간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고, 그곳에서 사람들 마음 역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알다시피 자연(自然)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있음'이다.

시절의 변화와 시시때때의 가변을 허여하면서도 원래 있던 모습 그대로의 자태를 변치 않고 유지하는 것이 곧 자연이다. 가식과 허영이 없으며, 독자적 생존을 꿈꾸지 않는다.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며, 겸허히 스스로를 내려놓음으로써 전체의 섭리에 순행한다. 인간이 '욕망의 존재'라고는 하지만, 가끔은 자연에 다가서서 '내려놓음'을 연습해야 한다. 죽어서는 영원히 자연으로 돌아가겠지만, 살아서도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은 인간의 본연(本然)을 돌아보아야 한다.


■ 감싸고 투영하여 자연 담은 범어사

부산의 진산, 금정산 자락에 범어사가 천년 세월을 지키고 있다. 분초를 다투며 사는 일상에서 억겁 시간의 무게감을 보듬고 있는 다른 세상으로 발걸음을 들여놓는다. 계곡과 숲을 양옆으로 끼고서 조금 오르다 보면 제 1관문 일주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속(俗)의 먼지를 떨구어내고 차분한 마음에 잦아든다. 인간 욕망을 끊어내려 부리부리한 눈으로 지키고 서 있는 사천왕의 문을 통과하자, 다시 위압적 크기의 보제루가 앞을 가로막는다.

누각 하부를 고개 숙이고 지나 십여 층계를 오르면 드디어 광명 세상이 펼쳐진다. 너른 중정의 흙마당은 성(聖)의 세계에 당도하였음을 느끼게 하며, 정중앙에 우뚝 솟은 주불전의 위엄 있는 자태 앞에서는 히에로파니(聖顯, 성스러움이 드러남)가 극에 달한다. 몇 번의 열고 닫히는 경계를 지나는 동안 사람의 마음은 이미 숙연해 있다. 천 년의 시간을 무념무상하게 서 있는 마당의 3층 석탑과 석등, 당간지주는 사람들의 부질없음을 일깨운다.

대웅전 기단에 올라 뒤로 돌아서 보니 양옆의 부불전(미륵전, 비로전, 지장전, 관음전)과 보제루가 마당을 완전히 에워싼 형국이다. 마당 너머로는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가 감싸 안고 있으며, 거기에 푸른 하늘까지 온통 투영되어 담긴 듯하다. 어느 것 하나 유아독존의 우김이 없다. 양옆으로 펼쳐진 승려들의 수행 공간과 처소 역시 지붕의 기와만이 겹쳐 보일 뿐이다.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 앞에 겸양하니 모든 것이 어우러진다. 까닭에 여기에 머무는 찰나가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긴다.

대웅전의 외부는 간박하다. 맞배지붕과 처마, 다포식(多包式) 공포와 목조기둥. 모든 구성요소가 어우러져 상하좌우의 적절한 비례감을 형성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건물 양 모서리의 기둥은 절반 정도 돌기둥이며, 그 위에 목조기둥이 얹혀 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바로 경내 초입 일주문(최근 국가보물로 지정되면서 편액에 있는 명칭을 따 '조계문'으로 변경되었다)이 돌기둥과 목기둥의 조합으로 되어 있었다.

거친 정다듬의 장주석은 돌의 자연 질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원형 석주 위에 작달막한 목기둥, 그리고 그 위에 화려한 색의 단청과 삐죽삐죽 튀어나온 공포는 그 자체로 자연을 빼닮았다.

여기에 있는 인공물들은 모두 욕망과 이기(利己)의 산물이 아니다. 자연을 담으려 하고, 자연을 닮으려 한다. 자연이 되기를 소망한다. 범어사가 우리 곁에 있는 존재 이유는 이것이다. 욕망을 버리지 못한 참배에만 여념치 말고, 자연이 되어 있는 참 아름다움의 결을 쓰다듬고 매만져보자. 대웅전의 우물 천장에 그려진 꽃그림과 꽃조각의 아름다움을 보았는가. 흰색, 분홍색, 주황색, 파랑색으로 색칠한 독성전의 솟을빗꽃살창호는 보았는가.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은 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마음에 있지 않겠는가. 석양빛을 등진 일주문 거친 돌을 만지며, 바른 삶에 대한 소망을 속으로 다독여본다.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를 위해 범어사에서는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108배를 통해 일상을 돌아보며 내려놓음을 경험하고, 발우공양을 통해 만인과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배우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산행과 참선, 수련과 문화체험 등을 천년고찰에서 경험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축된 실루엣…자연 닮은 장안사

태백산맥의 지류인 대운산맥에서 뻗어 내린 불광산 남쪽 끝자락에 장안사가 있다. 범어사도 그렇지만 장안사의 앞을 지나는 계곡에는 여름이 되면 피서객들로 북적인다. 물이 맑은 데다가 양 사방 병풍처럼 둘러선 산으로 그림자를 드리우니 시원한 골바람이 분다. 장안사에 들어가려면 소류(小流)를 건너야 한다. 수량이 많지 않은 실개천이기는 하나, 이것이 성과 속을 구분 짓는 경계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천왕문을 통과하고 나면 사찰 전체가 한 눈에 잡힌다. 거의 평지에 가까워 초입에서 최상단 주불전까지 고저 차가 거의 없고, 그래서 위압적 위계도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 양쪽으로 부불전(명부전과 응진전)이 있으나 뭔가 짜임은 엉성해 보이며, 거기에 초입의 해동전은 개축 공사 중이며, 우측의 부지에는 시굴작업(시굴을 통해 절의 경역이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컸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이 한창이라 어수선하다. 마음을 부여잡아 줄 요소가 좀처럼 없다.

그 와중에 최근 국가문화재 보물 제1771호로 승격 지정된 대웅전만큼은 형태미가 아주 빼어나다. 범어사의 대웅전이 맞배지붕의 단순한 형태였음에 비해, 장안사의 대웅전은 화려한 다포식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의 선이 유연하게 휘어져 끝선이 하늘로 비상하듯 치켜 올라가 있다. 전후면 뿐 아니라 모서리와 양측면까지도 공포가 적용되어 있어서,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건물은 매우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묵직한 지붕선이 이리도 경쾌하고 날렵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2009년 부산대 건축학과 서치상 교수의 조사발굴로 장안사 대웅전(1657)이 범어사 대웅전(1680)보다도 앞서 중창되었음이 밝혀졌다. 부산 최고(最古)의 목조건축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천장의 단청에 건립 당시에 채색된 천연광물 위주의 전통 안료가 잘 남아 있으며, 덧칠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도 보물 지정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었다 한다.

사찰 전체를 병풍처럼 둘러 감싸고 있는 대나무 밭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한 바퀴 가볍게 둘러보자 싶어 길을 따라 나섰다가 깜짝 놀랄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정확히 대웅전의 뒤편 언덕에서 사찰의 후경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사찰 너머 하나의 배경과 같이 펼쳐져 있는 나지막한 삼각산이 역광의 빛을 받아 마치 산수화의 한 장면과 같이 농축적인 실루엣으로 겹쳐 보이는 것이 아닌가. 자연과 인공이, 현세와 영의 세계가 묘하게도 하나의 장면에서 교호하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모르나, 자연은 잠시나마 무아(無我), 여여(如如), 해탈(解脫)의 순간을 열어 보여 주었다. 헛되고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허송세월을 보내지 말고, 내려놓고서 부디 조금이라도 자연을 닮아 가라는 설법(說法)을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준다.

동명대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

* 참고 문헌: '부산의 불교건축' 서치상 지음, 도서출판 세화, 2014

범어사

위치

부산시 부산 금정구 청룡동 546

시설

대웅전, 보제루, 템플스테이,
성보박물관 등

문화재

범어사 대웅전(보물 제434호)
조계문(보물 제1461호)
삼층석탑(보물 제250호)

문의

051-508-3122(종무소)
051-508-5726(템플스테이)
http://www.beomeo.kr/


장안사

위치

부산시 부산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598

시설

대웅전,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등

문화재

장안사 대웅전(보물 제1771호)

문의

051-727-2393
http://qrsystems.co.kr/site/85221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