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
얼어붙은 DMZ 속 온정, 도도한 경계심도 녹였다
살아 있는 화석 동물'이라 불리는 산양. |
- 상위포식자 없는데도 개체수 좀체 늘지 않아
- 국제적 보호 희귀동물
- 국내에선 초식동물 최초 천연기념물로도 지정
- 수백만년 전 외형 거의 유지하고 있어
- '살아있는 화석' 불려
- 100m 밖 발소리에도 달아나는 예민한 녀석
- 힘겨운 겨우살이 돕는 군인들 먹이수송 덕에
- 하루 수십 마리씩 목격
- 취재팀 촬영에도 무심
북녘 땅이 내려다보이는 민통선 철책 인근에 산양 두 마리가 숲 속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그 너머로 비무장지대(DMZ) 최전방 철책도 보인다.
강원도 화천군 오작교에서 만난 산양이 카메라를 무시하듯 힐끗보곤 관심을 보이고 있다. |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국제적 멸종위기종 산양은
국내 초식동물로는 최초로 1968년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됐다.
상위포식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체수가 늘지 않아
현재 멸종위기동물 1급이자 국제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희귀동물이다.
지난 3일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 정훈장교의 안내를 받아
10분 정도 걸어 산양이 자주 출몰한다는 초소에 도착했다.
초소에서 10m 떨어진 바위 밑에 능선을 향하고 있는
야생 동물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깊고 넓은 두 개의 발굽 자국이다.
아침 일찍 이곳에서 먹이활동을 한 후 능선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발자국과 함께 배설물도 눈에 띄였다. 짙은 갈색에 1㎝ 정도 크기의 타원형이다.
산양은 근처에 또 다른 흔적을 남겼다.
가느다란 나무줄기의 껍질을 벗겨놓았다.
영역표시이다.
뿔 사이에 분비샘이 있어 냄새도 함께 남겨놓는다.
대개 짝짓기 철에 많이 한다.
뿔이 없는 어린 산양도 뿔질 흉내를 낸다고 하니 본능이 아닌가 싶다.
강원도 양구군 방사면 최전방 21사단 두타연에서 어두운 밤 산양 한 마리가 이동하는 모습이 적외선 무인센서 카메라에 촬영됐다.(산양증식복원센터 제공) |
겨울철 함박눈이 쌓일 때면 산양은 초소 인근으로 와서 쉬고 은거한다.
병사들이 건초나 먹이를 놔두기 때문이다.
취재팀은 먹이를 놓아둔 이곳을 향해 카메라를 설치했다.
오후 1시께 또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병사들 말대로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어디선가 산양이 초소 인근
오작교 근처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 마리로, 암수 한 쌍인 듯했다.
호기심으로 가득찬 취재팀이 15m 가까이 다가가도 가파른 암벽에서
풀을 뜯는 데만 열중하다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그만이다.
경계심이 무척 강한 산양이지만 알고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눈이 자주 내리는 겨울철이면 이곳의 병사들은 경계근무와 별개로 독특한 작전을 수행한다.
산양을 위한 먹이 수송작전이 바로 그것이다.
화천 평화의 댐 주변 동서녹색도로에 설치된 산양의 교통사고 방지를 위한 로드킬 안내판. |
겨울은 산양에게 시련의 계절이다.
평소 새순, 각종 나무 열매, 꽃잎, 가는 줄기, 바위 이끼 등을 즐겨 먹지만
겨울이면 마른풀과 나뭇잎으로 먹이가 한정된다.
하지만 폭설이 내리면 이마저도 먹을 수 없다.
산양의 힘겨운 겨우살이를 지켜보던 병사들 사이에선 언제부터인가
이심전심으로 멸종위기에 놓인 산양을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들은 겨울이면 총을 잠시 내려놓고 산양들의 비상식량인 건초 더미를
손수 지고 나른다.
사라져가는 야생동물을 위해 이러한 훈훈한 사랑의 선물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DMZ인 것이다.
지구촌에서 유일한 공간인 DMZ가 야생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특별한 공간이 된 데에는
병사들의 숨은 관심과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멸종위기에 놓인 산양에게 DMZ는 더없이 매력적인 곳인 셈이다.
산양의 배설물. 산양은 정해진 배설 장소를 이용한다. |
백두대간의 주인공인 산양 보호와 증식을 위해 밀렵 감시와 함께
겨울철 먹이 주기 등을 통해 큰몫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군인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 고마움을 전한다.
그들의 선행이 있었기에 산양이 한반도 생태계의 보고이자
생태평화 벨트인 DMZ의 상징적 동물로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산양은 원래 100m 밖에서도 눈 밟는 소리에 도망을 칠 정도로
아주 예민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는 민통선 인근에선 일정 거리를 두고 병사와 산양이 서로 호의를 가지고 공존하고 있는 듯했다.
만일 군인들이 군복을 입지 않고 있다면 아마도 줄행랑을 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평화의 댐 주변 동서 녹색도로에서 DMZ 오작교 구간 사이엔 유독 산양들이 많이 산다.
병사들에 따르면 겨울철엔 하루에 수십 마리가 목격된다고 한다.
산양에게 줄 먹이인 건초를 병사들이 나르고 있다.(산양중식보원센터 제공) |
취재에 동행한 야생동물 전문가인 최현명 씨는
"뿔에 새겨진 나이테나 윤기 있고 짙은 회갈색 털, 균형 잡힌 체격,
두 마리가 생활하는 것으로 보아 건강한 4, 5년생 한 쌍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양은 지형이 험하고 해발 600m 이상인 고산 암벽지대에서 주로 서식한다. 산양은 우제목 솟과로 전 세계에 걸쳐 6종밖에 없는 진귀한 동물이다.
농가의 흑염소와 비슷하게 생긴 산양은 몸길이가 115~130㎝로
염소와 비슷하나 턱에 수염이 없고 목에 백색의 큰 반점이 있으며 꼬리 주변에 흰색을 띠고 있다.
뿔 모양이 뒤로 활처럼 휘어져 있고 네 다리가 암벽을 타기 좋게 굵고 짧으며
발바닥은 고무처럼 말랑하고 발끝은 뾰족하다.
산양은 다른 동물들이 접근하기 힘든 험준한 바위나 동굴 등에서 2~4마리씩 무리를 지어 산다.
암수 모두 뿔이 있고 산양으로 분화되고 난 후 거의 수백만 년 동안 외형의 변화 없이 그대로 조상의 형질을
보존하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털 색깔도 바위색과 유사한 회갈색이나 검은 갈색을 띠기 때문에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대자연에서 산양을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높은 바위 위에서 당당함과 위엄을 자랑하는 두 마리의 산양. |
산양에겐 희소식이 이미 있었다.
지난 2007년 강원도 양구에 산양증식복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 센터 홍재은 팀장은 "산양증식복원센터가 강원도 비무장지대와
바위가 많은 악산인 설악산과 월악산 일대에서 산양 복원사업에
힘을 쏟으면서 지금은 전국에 걸쳐 900~1000마리 이상 개체수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 양구지역에서만 500여 마리 서식하고 있다.
10년 전 환경부 조사에선 700여 마리 서식하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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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협조= 육군 7사단 칠성부대·21사단 백두산부대·산양증식복원센터·박용수 생태전문가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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