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너구리'

금산금산 2015. 8. 19. 22:10

너구리

 

 

 

어디서든 악착같이 살아나가는 야생의 청소부

 

 

너구리 한 마리가 불빛을 보자 매서운 눈초리로 경계하고 있다.

 

 

 

 

 

 

- 행동 둔한데다 활동 반경 좁아
- 사냥능력 부족해도
- 왕성한 식성과 필살의 적응력으로
- 생존 한계 극복

- 개과 동물 중 유일하게 겨울잠
- 남쪽 서식종 예외
- 겨울부터 초봄까지 파충류 등 먹이 부족
- 가장 힘겨운 계절

- 야행성인 탓에
- 해 질 무렵부터 움직이기 시작해


 

장삼이사들은 익살스럽고 넉살 좋은 친구나 능청스럽거나 음흉한 사람을 '너구리 같다'고 한다.

척박하고 먹이가 제한된 공간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정착해 살아가는 너구리들의 실태와

그들의 생태를 추적해 담았다.

화포천 주변 밭에서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너구리.

녀석들의 서식지는 경남 김해시 화포천 인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가 위치한 봉하마을이 속한

진영읍과 한림면 진례면 생림면을 관통하고 있는 화포천은

각종 조류와 다양한 식물군이 분포하고 있는 생태자원의 보고다.

해 질 무렵이 되자 잠에서 깨어난 너구리들은 서서히 활동하기 시작한다.

논두렁을 거닐거나 수로를 따라 걷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이곳이

그들의 아지트임을 짐작하게 한다.


자세히 보니 한두 마리가 아니라 한가족인 듯했다.

너구리는 새끼를 키울 수 있는 독립되고 안정된 공간이 있으면 그곳에서 서식한다.

특히 화포천은 먹이가 풍부해 너구리가 가족을 이뤄 서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화포천 주변의 논이나 밭으로 야생의 흔적을 찾아 살폈다.

너구리의 배설물이 발견됐다.

그 모양은 동글동글하다.

오래되지 않은 배설물 속에는 벼 이삭이 대부분이다.

너구리는 화장실을 정해두고 수차례 반복적으로 배설하는 습성이 있다.

너구리는 화장실을 따로 정해두고 한 곳에 배설하는 습성이 있다.

너구리의 화장실은 주로 길에서 떨어진 곳이나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넓고 폐쇄된 길 위에 있다. 화포천 주변의 너구리 화장실도 예외는 아니다. 이곳의 배설물은 차곡차곡 높게 쌓여 있다.

해서, 취재팀은 너구리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배설물 주변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실행에 들어갔다. 



해지기 전 조금 일찍 위장막을 설치하고 촬영을 위해 무작정 기다렸다.

야행성 야생동물인 너구리가 과연 집단 배설물을 남겼던 이곳에 나타날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휩싸인 화장실과 습지 인근 논가를 꼼꼼히 살피는 가운데 드디어 논두렁 사이로

빠르게 움직이는 야생동물 한 마리가 나타났다.

자세히 관찰한 결과 녀석은 분명 너구리였다.


볼일을 본 후 논바닥으로 갑자기 바쁘게 달려간다.

그리고는 논바닥에서 먹이를 찾았는지 있는 힘을 다해 무언가를 물어 당기고 있다.

죽은 오리 사체였다.

순간 취재팀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죽은 오리를 먹지 않고 카메라 쪽을 응시하다 이내 얼어 죽은 오리 사체를

깨끗이 먹어치우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밭에서 땅냄새를 맡고 있는 너구리.

야생의 청소부라 불릴 만큼 생명력이 강한 너구리는 개과 중

 가장 원시적인 동물이다.

동시에 개과 중 유일하게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다.

하지만 완벽하게 겨울잠을 자는 건 아니다.

가을철에 배를 불려놓지 못할 경우 겨우내 먹을 것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몸통 길이는 52∼66㎝, 꼬리 길이는 15∼18㎝이다.

몸은 길고 뒤로 갈수록 점차 가늘어진다.

다리는 짧고 약하며, 머리도 짧고 뾰족하다.

매우 짧고 넓으며 둥그스름한 꼬리는 대단히 치밀한 긴 털로 덮여 있다.

체색(體色)은 흑색에 가깝고 등의 띠와 눈 밑의 반점, 앞다리의 띠는 더 색이 짙다.

관찰 도중 침입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침입자는 논바닥에 작은 낟알을 주워 먹고 있다.

일정한 영역을 확보하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너구리의 입장에선 영역 침입이다.

이것은 서로 다른 개체가 같은 장소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에서는 모두 세 마리의 너구리가 먹이를 두고 싸움이 벌어졌다.

너구리는 서로 상대방의 목을 노린다.

한가족이 똘똘 뭉쳐 한 마리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진다.

침입자가 등을 보인다.

등을 보이면 싸움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영역을 지켰다.

 패자에겐 상처만 남았다.

싸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선 앞으로도 계속 싸워야만 한다.

너구리들은 낟알 한 톨마저도 남에게 주기 아까운 모양이다.

화포천에 서식하는 너구리 한 마리가 심한 피부병에 걸린 채 배회하고 있다. 이 옴진드기의 경우 사람에게도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주일 후 다시 이곳을 찾았다.

너구리 한 마리가 힘없이 앉아있다.

눈에는 눈곱이 가득하다.

사람이 다가가도 평소 같지 않게 느리게 도망간다.

별로 높지 않은 농수로조차 좀처럼 뛰어넘지 못한다.

잠시 쉬더니 겨우 농수로를 빠져나간다.

너구리는 이미 탈진한 상태였다.

 

 

너구리는 살쾡이처럼 순수하게 사냥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

가을까지는 먹이가 풍족하지만, 겨울부터는 개구리 파충류 같은 너구리가 좋아하는 먹이들이

동면에 들어가 먹이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겨울이나 초봄까지는 굉장히 힘겨운 계절이라 할 수 있다.



활동 반경이 좁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너구리는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고 사냥 능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주변 환경에는 잘 적응한다.

무엇보다 뭐든 잘 먹어치우는 잡식성이 생존 무기이다.

밤이 되면 체육공원 쓰레기통이나 고궁 주변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헤매는 너구리를

종종 목격할 수 있는 연유이다. 



야행성인 너구리는 겨울잠을 자지만 남쪽에 사는 너구리들은 동면하지 않고 한겨울에도 먹이를 찾아

밤을 나선다.

과거 독극물을 먹고 죽은 동물들을 먹어 그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 위기에 몰렸던 너구리는

이제 우리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종종 나타난다.

도심 체육공원이나 고궁, 산악지역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분포한다.

국내에서는 고라니 다음으로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종이 됐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린다.

010-8516-3298



취재 협조= 박용수 생태전문가·

송재정 조류전문가· 길병섭 생태전문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