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죽음에서 배운다]'외할머니의 장례식'

금산금산 2015. 12. 5. 10:24

[죽음에서 배운다]외할머니의 장례식

 

 

 

 

 

 

 

 

불현듯 떠오르는 내 생의 마지막 풍경

 

 

 

 

 

 

 

▲ 영화 '나의 첫번째 장례식'의 한 장면.

 

 

 

 

오늘부터 매주 신라대 이기숙 교수'죽음에서 배운다' 칼럼을 싣습니다.

죽음을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더운 여름, 외할머니의 부음(訃音)이 들렸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외삼촌이 사는 대전으로 올라갔다.

돌아가실 것을 다 예측하고 계셨기에, 어머니는 크게 놀라거나 경황이 없진 않으셨다.

91세 할머니의 죽음에 큰 비탄(悲歎)은 없었다.

잔잔한 애도(哀悼)의 마음만 있을 뿐.

그런 자리엔 특히 외할머니의 친정 식구들이 반갑다.

엄마 항렬에 걸쳐지는 나의 5촌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수십 년 만에 뵙는 분들이셨다.

초량 외가에서 자랐기에 나의 7~8세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고 계신 그 아재(아저씨의 경상도 표현)들을

만난다는 건, 너무나 기대되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 꼬마가 이리 늙었다는 인사로 시작되는, 1960년대의 외갓집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밤새 밑도 끝도 없이

이어져갔다.

모두 취한 표정으로 서로 기대고 앉아 화살같이 흐르는 시간과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했다.

할머니의 죽음은 동시에 남은 자들의 삶을 계량(計量)해 주었다.


그렇게 분주하게 할머니의 삼일장은 지나가고, 우린 화장장(火葬場)을 거쳐 대전의 한 원불교 교당에 닿았다.

교당의 차가운 마루 감촉이 지금도 느껴지는 듯한 그 점잖고 조용한 장소에서 할머니를 위한

마지막 기도가 시작되었다.

90여 년, 행여 지겹지는 않으셨는지?

1910년 한일합방(韓日合邦) 이후 칼 찬 일제 순사를 보면서 자란 어린 시절, 울산에서 부산으로 시집와

일본인들의 주요 상가 거리였던 중앙동에서 첫 살림을 시작하고, 이내 중앙동 화재로 초량으로 거주지를 옮긴 일. 해방 이후 할아버지의 사업이 번창해 아주 큰 집으로 이사한 일 등. 과거 내가 들었던 많은 일이

영화 속 장면처럼 스쳐 갔다.

내가 참 많이 좋아한 외할머니였는데….

러나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통해 내 장례식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내 장례식에 올 때는 부디 검은 옷은 입고 오지 마세요.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음악을 손녀에게 부탁하고 갈 터이니, 그 음악을 모두 함께 들으면서 저와의 추억을 떠올려 주세요."

장례는 한 사람의 평생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의례(儀禮)이기에, 사람마다 삶이 다르듯

장례 내용과 그 상징성이 달랐으면 한다. 



혹시 당신은 당신의 장례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한, 멋진 계획이 있으신지요?

 
이기숙

신라대 교수
국제죽음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