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희 동화엔텍 회장
"직원 행복이 곧 회사 행복"…미래 경영으로 세계시장 호령
동화엔텍 김강희 회장이 회사의 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
- 열 교환기 국산화 일념으로 창업
- 거듭되는 성장에도 中 추격 긴장
- 연구 개발·시장 확대로 정면돌파
- 외환위기 노조 자발적 희생 감동
- 회사 정상화 후 직원에 주식선물
- 노사 끊임없는 소통 무분규 비결
(주)동화엔텍 김강희(81) 회장의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집무실. 그 곳에는 '회장실' 대신 '미래를 생각하는 방'이란 팻말이 걸려있었다. "왜 '미래를 생각하는 방'이냐"고 묻자 김 회장은 "'회장실'이란 명칭은 딱딱하다. 직원들이 부담 없이 내 방에 와서 회사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이름을 바꿨다. 또 대표는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였다"고 설명했다. 권위를 내려놓고 노사가 함께 소통하며 회사를 일구는 김 회장의 경영철학이 묻어났다.
■열 교환기 세계 5대 업체로 우뚝
동화엔텍은 세계 5대 선박·플랜트용 열 교환기 생산 기업으로 꼽히는 '히든 챔피언'이다. 지난 2014년 정부의 '월드클래스 300 기업'에 선정됐다. 김 회장은 "명함에 '월드클래스 300' 문구를 새겨 넣었다. 볼 때마다 자부심도 생기고, 월드클래스 자격에 맞게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도 한다"고 말했다. 선박에는 다양한 열 교환기가 있다. 그 중에서도 엔진의 과급기용 공기냉각기는 이 회사가 자랑하는 제품이다. 엔진 마력을 올리는 데 가능한 많은 공기를 압축하는 과급기용 공기냉각기는 크기가 작으면서도 냉각 효율이 좋아야 해 높은 기술을 요한다. 초창기 이 공기냉각기를 주력 제품으로 한 동화엔텍은 선박용 열 교환기로 시장을 넓혀, 지금은 육상플랜트용 열 교환기 제작업체로 잘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1952년 한국해양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바다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대한해운공사(현 한진해운)에서 기관장을 거치는 등 20여 년을 근무했다. 김 회장이 동화엔텍의 전신인 (주)동화정기를 설립한 것은 1980년. 창고를 임대해 직원 3명과 함께 열 교환기 수리를 시작했다. 그는 "우리 배에 우리 기술로 만든 열 교환기를 넣겠다는 일념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창업 계기를 설명했다. 설립 2년 뒤에는 쌍용중공업(현 STX조선해양) 국산화 엔진 1호 개발에 기술 참여를 했다. 김 회장은 "'일본에서 수리하는 것보다 신속하고 비용도 저렴하다'는 평을 받으면서 회사가 빠르게 성장했다"고 전했다. 동화엔텍은 창업 후 35년간 일본과 유럽 위주였던 선박용 열 교환기를 국산화했다. 회사는 성장을 거듭했고, 1997년 197억 원이었던 매출액은 2014년 1693억 원까지 10배가량 뛰었다. 동화엔텍은 현재 국내 6대 조선소와 세계 3대 엔진 메이커, 해운회사 등과 거래하며 열 교환기 시장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 했다.
최근 김 회장은 '미래를 생각하는 방'이란 집무실 이름처럼 회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세계적으로 조선 경기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는 시장의 선두에 일본이 있었고, '일본만 따라가면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마저 우리를 추격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과 일본 모두를 뛰어넘지 않으면 시장에서 존재가치가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동화엔텍의 전략은 '기술력'이다. 친환경 고효율 에너지 관련 신사업 추진 전략으로서 LNG 운반선과 중소형 LNG 추진선박(LFS, LNG Fuelled ship)에 대한 영업 전략을 세우고, 제품 라인업을 확장하는 등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또 차세대 항공기 엔진용 열 교환기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92년 설립된 동화엔텍의 기업부설연구소에는 현재 21명의 전문 연구원이 있다. 김 회장은 "창립 이래 세웠던 '기술만이 살 길이다'라는 모토로 연구개발과 성능개선, 신제품 개발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30년 무분규'에 빛나는 노사문화
동화엔텍 화전공장에서 직원이 표면응축기를 조작하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
김 회장이 생각하는 미래에는 노사가 함께 있다. 동화엔텍 노조는 '가족사랑위원회'라는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다. '노사는 가족'이라는 뜻과, '직원 가족의 행복까지 생각한다'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동화엔텍에 노조가 결성된 것은 1987년. 김 회장은 "직원들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살벌한 플래카드를 내걸었을 때 섭섭한 마음도 들었지만 지속적으로 대화에 나선 끝에 결국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노력은 회사가 어려웠던 외환위기 때 빛을 발했다. 노조가 자발적으로 임금을 깎고 야간작업에 나섰다. 회사는 1년여 만에 정상화됐고 김 회장은 그 보답으로 직원들에게 회사 주식을 나눴다.
동화엔텍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노조가 생긴 이래 30년간 단 한 건의 노사분규도 겪지 않았다. 김 회장은 "일주일에 한 번씩 노조위원장과 공장투어를 하며 함께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한다. 경영과 노사를 따로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자세로 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꿈을 이룬 현재가 가장 보람 된 순간이라고 말했다. "1952년에 부산에 와 63년을 살았다. 고향은 아니지만 고향처럼 아끼는 곳이 됐다. 부산의 성장을 갈망하고 있고, 여기에 일조하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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