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쌍두봉'
순수산행은 5시간 안팎
긴 가뭄 탓 단풍 빛 바래
급한 오르막 내리막 반복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올 가을 단풍을 두고 산꾼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이다.
기상청은 지난달 중순 올해 단풍은 맑은 날이 많고 일교차가 커
예년에 비해 유달리 고울 것이라고 애드벌룬을 띄웠다.
예년에 비해 8일 정도 빨리 찾아와 설악산은 9월 23일께 시작돼 이달 11일 절정에 이를 것이며,
내장산 지리산 등 내로라하는 명산의 단풍 시작일과 절정일도 빼놓지 않았다.
평소 산하고 담을 쌓고 지내던 장삼이사들의 추심(秋心)까지 흔들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붉은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단풍을 기대하고 절정일에 즈음하여 설악으로 떠난 산꾼들은
기상청이 발표한 만큼은 아니라고 소식을 전해왔다.
예년 같으면 봉홧불 옮겨 붙듯 활활 타오르던 단풍이 마치 빛바랜 풍경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잎마름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지리 등 다른 단풍 산도 예외가 아니다.
물이 든 단풍은 검은 반점이 생기면서 추풍낙엽이 돼 증세가 심할 경우
이미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 겨울산을 방불케 했다.
가을 가뭄과 이상 고온 탓이었다.
전문가들은 "수분이 일정하게 유지된 상태에서 생리활동이 진행돼야 아름다운 단풍이 탄생하는데
올해는 가뭄과 이상 고온 때문에 나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단풍의 잎마름 현상은 이미 지난달 하순부터 징후가 보였다.
주민들의 목소리를 통해서다.
그들은 "여름 장마 이후 비가 거의 오지 않아 걱정"이라며 등산복을 입은 기자에게
"향후 비가 오지 않으면 올 단풍은 아마도 재미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청 측은 이 목소리를 들었는지, 듣고도 좋지 않은 소식이라 그대로 넘겼는지 사실 궁금하다.
단풍이 고운 해가 있고 그렇지 않은 해도 있다.
중요한 건 단풍의 속보성 단기예보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봉인 쌍두봉 1봉에 서면 역시 암봉인 쌍두봉 2봉과 들머리인 삼계리 마을, 그리고 옹강산이 한 눈에 펼쳐진다. 삼계리(三溪里)는 발밑의 생금비리 계곡과 그 뒤쪽의 계살피 계곡, 그리고 쌍두봉 2봉에 가려진 배넘이골 등 세 계곡이 만나 붙여진 마을 이름. 이 곳에서 합류한 물은 정면의 신원천으로 흘러 운문댐에 들어간다. |
이번 주 산행지는 청도 쌍두봉.
비록 붉게 물든 단풍의 고운 자태는 드물지만 천봉만학의 영남알프스 내륙의 속살을 맘껏 조망하며
스릴 만점의 암릉을 오르내릴 수 있다.
들머리는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의 천문사.
삼계리는 문복산 계살피 계곡, 운문령을 지나 만나는 운문산자연휴양림쪽에서 발원하는 생금비리 계곡,
나선폭포수가 흐르는 배너미골 등 세 계곡이 만나는 지점이라 명명된 마을.
삼계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한 뒤 칠성가든 옆 '천문사' 이정표를 보고 왼쪽으로 5분쯤 가면 천문사 주차장.
들머리다. 두 개의 거대 암봉이 우뚝 솟은 쌍두봉은 주차장에선 보이지 않지만
정류장에서 주차장으로 오는 도중에는 볼 수 있다.
나선폭포 인근 투박한 돌을 쌓아올린 운주사 거지탑 모양의 돌탑. |
산행은 삼계리 버스정류장~천문사 주차장~나선폭포 갈림길~나선폭포~폭포 위 전망대~잇단 전망대~옛 헬기장~사리암·배넘이재 갈림길~배넘이재~돌탑봉~암릉길~1038봉(헬기장)~쌍두봉 1봉(좌봉)~쌍두봉 2봉(우봉)~황등산~나선폭포 전망대~천문사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 안팎.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해 땀깨나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주차장 우측 끄트머리쪽에 열린 길로 향한다.
등로는 임도 수준의 오솔길. 300m쯤 뒤
계류를 건너면서 빗물 등에 파인 듯 돌길로 변한다.
곧 갈림길.
돌탑이 서 있다.
직진하면 배넘이재. 산행팀은 오른쪽 나선폭포 방향으로 간다.
투박한 돌을 그대로 쌓아올린 화순 운주사 거지탑의 축소판도 눈에 띈다. 9분 뒤 나선폭포.
40m쯤 돼 보이는 거무튀튀한 이 오버행 폭포는 비 온 뒤
천둥소리가 날 정도로 우렁차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물이 말랐다.
겨울철 빙벽등반지로도 유명하다.
아쉬움을 달래며 발걸음을 옮긴다. '악' 소리가 날 정도로 급경사 된비알이 기다린다. 8분 뒤 폭포 위 전망대. 정면 젖꼭지 모양의 암봉이 쌍두봉 1봉, 그 앞이 황등산이다. 발아래는 천야만야한 낭떠러지.
이어지는 산길. 약초인 백출 캐는 부부도 만난다.
단풍은 가뭄 탓인지 그렇게 좋지 못하다.
이렇게 폭포 위 전망대에서 35분쯤 다리품을 팔면 또 다른 전망대.
여기서 2, 3분 왼쪽으로 가면 안전하고 너른 전망대에 닿는다.
정면 쌍두봉과 그 뒤 왼쪽에서부터 상운산 쌀바위,
가지산 정상, 청도 귀바위 등 영남알프스의 주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고개를 돌리면 지룡산 옹강산 문복산 고헌산도 확인된다.
직진한다.
또 오름길이다.
12분 뒤 헬기장.
오른쪽 지룡산 가는 길 대신 직진한다.
이제서야 길다운 길이다.
곰 형상을 닮은 벼락맞은 나무를 지나면 갈림길.
역시 돌탑이 서 있다.
오른쪽 사리암 대신 왼쪽 배넘이재·쌍두봉 방향으로 간다.
헬기장에서 사리암 갈림길까지의 짧은 구간은 지룡산 편(466회)에서 소개됐다.
당시엔 사리암으로 하산했다.
때문에 리본 뒤에 각각 '사리암' '쌍두봉'이라고 적어놨다.
급경사 내리막길로 17분이면 배넘이재. 천지가 물에 잠겼을 때 이곳으로 배가 다녔다고 배넘이재란다.
오른쪽은 학심이골 심심이골 가지산북릉, 왼쪽은 나선폭포 입구 천문사 방향이다. 직진한다.
심한 된비알이다.
고도를 차츰 높이면 쌍두봉 2봉과 1봉이 보이고, 곧이어 숲 사이로 2봉, 1봉,
헬기장인 1038봉이 일직선으로 나란히 보인다.
40분 뒤 돌탑봉.
잠시 내려서다 오른쪽으로 에돌아 농짝만한 암벽을 오르면 전망대.
방금 지나온 백색의 너른 전망대와 헬기장봉 배넘이재 등이 한눈에 잡힌다.
이어 초록빛 밧줄을 타고 암벽을 오르면 이때부터 암릉길이 기다린다.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암릉길 왼쪽으론 쌍두봉(2봉 뒤 옹강산, 1봉 뒤 문복산), 오른쪽으론 상운산 쌀바위 가지산 청도 귀바위가,
정면엔 1038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억새는 벌써 머리를 풀어헤쳤고, 지리산에서나 볼 듯한 고사목의 행렬도 눈에 띈다.
이윽고 헬기장인 1038봉.
오른쪽 상운산 방향, 왼쪽 쌍두봉으로 내려선다.
이 길은 이미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 겨울산을 방불케 한다.
혹 가는 나무에 손이라도 짚으면 기다렸다는 듯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10분 뒤 쌍두봉 1봉(910m) 입구 갈림길.
암봉으로 바로 올라도 되지만 안전한 왼쪽으로 에돌아간다.
올라가는 건 큰 문제가 없지만 내려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2, 3분이면 정상에 닿는다.
지금까지 봐왔던 주변 조망에다 들머리인 삼계리와 신원천이 추가로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2봉(850m)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 우측 뒤로 30m쯤 되는 밧줄이 매달린 1봉 직벽이 보인다.
기자 생각에도 올라가는 건 가능하겠지만 내려오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20분 뒤 2봉.
조망은 별 차이가 없다.
역시 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온다.
잠시 뒤 갈림길.
오른쪽은 2봉을 넘어 내려오는 길이다.
왼쪽으로 내려선다.
11분 뒤 김해김씨묘가 위치한 마지막 봉우리.
황등산이다.
14분 뒤 왼쪽 전망대.
그루터기 5개가 있는 지점 옆이다.
건너편에 나선폭포가 보여 나선폭포 전망대라 불린다.
여기서 날머리 천문사까지는 20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천문사 품고 있는 '황등산' 새로 발굴
산행팀은 이번 산행에서도 숨어있던 산 이름을 하나 발굴했다.
바로 황등산(669m)이다.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천문사에서 바라보면
쌍두봉 앞에 위치한 아담한 봉우리다.
쌍두봉에서 천문사로 하산할 때 김해김씨묘가 위치한 봉우리이기도 하다.
천문사 주지 무공 스님은 "쌍두봉이란 이름은 삼계리 주민들이
생긴 모양을 본떠 지은 것이며 쌍두봉 앞쪽의 절을 품은 산이 황등산"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황등산이란 이름은 경주 남산 인근과 무주 등 우리 나라에 단 3개뿐이며, 셋 모두 무술을 연마한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청도 운문사 일대에는 예부터
'산허리 갑(岬)' 자가 들어가는 '오갑사(五岬寺)'가 있었다.
조선 후기 채헌이 지은 경상도 청도군동호거산운문사사적에 따르면 6세기 신라 진흥왕때
지금의 운문사 인근의 금수동에서 득도한 한 선승이 도반들과 함께 짓기 시작해 7년 만에 완성했다.
동쪽의 가슬갑사, 서쪽의 대비갑사, 남쪽의 천문갑사, 북쪽의 소보갑사, 그리고 중앙의 대작갑사가 바로 그것.
대작갑사와 대비갑사는 각각 지금의 운문사, 대비사이며 나머지 세 갑사는 폐사돼 찾을 길이 없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삼계리 일대는 가슬갑사로 추정될 뿐 구체적인 단서가 드러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가슬갑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신라 원광 법사가 머물면서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무공 스님의 '황등산론'이 근거가 있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 지난 6월 청도군과 동국대박물관은 본격적으로 가슬갑사 찾기에 나서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경우
이곳 일대를 청소년심신수련장으로 성역화, 화랑정신 교육장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천문사 인근의 가슬갑사는 오갑사 중 하나인 '가슬갑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일러둔다.
# 교통편
- 하산길 언양행 시외버스 하루 1회만 운행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언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있다.
1시간 걸린다.
언양터미널에선 오전 11시 출발하는 경산행 시외버스를 타고 청도 운문면 삼계리에서 내린다.
45분 걸린다.
삼계리에서 언양행 시외버스는 오후 5시10분 단 한 차례 있다.
언양에서 노포동행 시외버스는 역시 20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밤 9시.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서울산(삼남)IC~언양 35번(가지산 석남사)~경주 봉계 직진~밀양 상북~밀양 석남사 24번 우회전~경주 921번 지방도 우회전(궁근정 삼거리에서 오른쪽 방향)~언양 두동 석남사 운문사 좌회전~청도 운문사 69번 우회전~운문령 지나~운문산 자연휴양림 지나~삼계리 천문사 가슬갑사 이정표 보고 좌회전~천문사 주차장 순.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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