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죽음에서 배운다] 새로운 사랑

금산금산 2016. 9. 30. 16:06

[죽음에서 배운다] 새로운 사랑






청소년 때,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헤어진 P 여사는 50대에 접어들면서 생부가 궁금해졌다.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떠났다는 이유로 한없이 미워했던 아버지이지만, 불가피하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생겼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수소문 끝에 아버지 연락처를 알아낸 P 씨의 가슴엔 두려움이 앞섰다.

"만나본들 속만 더 상하는 것은 아닐까?",

" 아버지도 이미 80세가 넘었을 텐데…." 




이혼한 생부 찾아가 화해  
남은 인생 의지하며 도와
 




며칠을 망설인 끝에 P 씨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도 혈육인데 일단 뵙고 보자. 이 나이에 더 나빠질 것이 뭐가 더 있겠는가?  

그렇게 마음을 먹고 찾아간 아버지는 놀랍게도 외진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계셨다.

강은 크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지만 외로워 보이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P 씨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 눈물 속에 30년 묵은 응어리가 모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후 P 씨는 한 달에 한 번씩 반찬을 준비해서 아버지를 찾아뵙고 산책도 함께하면서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곤 한단다.

처자식을 두고 집을 나갈 당시 아버지의 심경을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덤덤히 듣고 있는 자신에 대해

스스로 놀랐다고 했다.  

아버지로부터 "용서해 달라"는 말을 듣지도 않았지만, P 씨는 아버지와 화해하는 차원을 넘어 서서

'새로운 사랑'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사춘기 시절을 거쳐서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돌보아드린다는 생각에

가슴이 풍만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조금 더 편안하게 돌아가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신다면 잘했다고 말해 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다.  

화해와 용서를 통해 자아가 성숙해진 좋은 사례다.

 며칠 전 다시 만난 P 씨는 이미 다 지나간 서로의 삶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이젠 남은 시간 동안 80세 아버지와 50세 딸이 서로 의지하면서 외롭지 않게 살고 싶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남은 인생,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는 어느 분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기숙  
 
전 신라대 교수 국제죽음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