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로 세상보기]
유럽대륙에 내린 '신의 축복' 감자
▲ 프랑스 인상파 화가 쥘 바스티앵 르파주(1868~1916)의 유화 '감자 수확하는 사람들'.
스페인 원정대가 약탈해온 감자의 생명력은 실로 위대했다.
연중 따듯한 지중해 연안에서부터 여름에도 으스스하고 습한 대서양 연안의 북유럽과
유럽내륙 심지어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랐다.
산기슭 황무지에서도 웬만한 가뭄에도 제대로 심기만 하면 토실토실한 감자가 땅속에서 줄줄이 맺혔다.
북유럽과 유럽내륙은 지형상 농지가 부족하다.
게다가 기후마저 열악해 애당초 농업보다 목축업이 성했다.
이런 탓에 주식인 밀과 보리를 남유럽에서 수입했지만 모두 상류층의 식탁에 올랐고,
서민은 목축으로 얻은 우유와 육류에 호밀을 곁들여 연명했다.
이러다 보니 홍수나 가뭄이 닥치면 이웃 마을을 약탈할 수밖에 없었고, 이래저래 전쟁은 그칠 새 없었다.
936년 로마제국의 계승자로 자처한 독일 작센 왕조의 오토 1세가 광활한 유럽내륙을 어렵게 통합하고
신성로마제국을 세우지만 허약한 재정 탓에 제국은 이내 혼돈에 빠졌다.
1871년 빌헬름 1세가 독일제국을 세우기까지 935년간 무려 23개 왕조가 부침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제국의 재정난은 고질적인 식량난과 인구 감소에서 비롯했다.
놀랍게도, 감자를 심으면 식량난이 일거에 해결됐다.
감자 덕분에 굶주림에서 벗어나자 체력이 눈에 띌 정도로 좋아졌고,
집집이 아기 울음소리가 이어지면서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다.
작은 마을에도 시장이 생겨나고, 도시는 활기를 띠었다.
특히, 당시 유럽을 생지옥으로 몰아넣었던 괴혈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교회는 수백 년간 떠돌던 악마를 드디어 내쳤다며 자찬했지만, 실은 감자 덕분이었다.
괴혈병은 비타민C 결핍으로 생긴다.
감자에는 탄수화물과 비타민B 그리고 비타민C가 풍부하다. 유
럽 서민의 주식인 육류와 우유와 호밀에는 단백질, 지방, 비타민A는 풍부하지만,
탄수화물과 비타민B와 C는 부족하다.
이래서 육류나 우유를 감자와 곁들여 먹으면 3대 영양소와 필수 미네랄까지 거의 완벽하게 해결된다.
감자는 스페인 정복자의 범선에 실려 유럽에 들여온 지 100년 즈음인 1630년대 유럽대륙 전역으로 번졌고,
18세기 유럽 식탁의 주식 자리를 꿰찼다.
감자는 신이 유럽대륙에 내린 축복이었다.
심각한 재정난에 식량난까지 겪던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왕실 정원에 감자를 몸소 심고 근위병에게 지키도록 했다.
심지어 무도회에 참석하는 앙투아네트 왕후에게 감자꽃을 머리 장식으로 꽂도록 했다.
귀족들의 눈길을 끌어 감자 재배를 장려하기 위한 쇼였다.
러시아의 개혁 여제 예카테리나 2세와 신성로마제국을 계승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도
감자 재배를 솔선하며 백성에게 심기를 권유해 식량난을 해결했다.
한때 '악마의 식량'으로 저주받던 감자는 왕의 식품으로 몸값이 치솟았고,
감자의 '식량 혁명'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유럽의 세력 판도를 남유럽에서 중유럽과 북유럽으로 이동시켰다.
감자가 유럽사람들에게 특별한 이유는 이런 가슴 벅찬 역사가 DNA에 있기 때문이다.
반 고흐의 습작 '감자 먹는 사람들'이 미술 문외한에게도 각별한 이유는
감자가 인류의 굶주림을 덜어준 은혜로운 식물이기 때문이다(10월 2일 자 참조).
박중환/'식물의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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