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 고마워서…1년간 '폐지 판 돈 100만원' 기부
부산 초장동 박정자 할머니, 부산연탄은행 '따신밥상'에 매일 3000원씩 모아 전달
- "이웃과 어울려 점심한끼 행복
- 좋은일 하는데 힘 보태고파"
지난 25일 아침 부산연탄은행 강정칠 대표의 사무실.
70대 노인이 흰색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겉면에는 '봉사헌금 백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강 대표가 "무슨 돈이냐"고 물었더니 노인은 "별거 아니다"며 줄행랑을 쳤다.
박정자(71·부산 서구 초장동) 씨 얘기다.
박정자 할머니가 28일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서정빈 기자 |
박 씨는 지난 1년간 폐지를 주워 번 100만 원을 이날 기부했다.
매일 3000원가량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은 돈이다.
강 대표가 '혹시 아프면 쓰시라'고 말렸더니
박 씨는 "아픈 곳도 없고 돈 쓸 곳도 없다. 공짜 밥 묵는 것도
고마운데 보답해야지"라고 공치사 한마디 없이 돌아갔다.
박 씨는 부산연탄은행이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따신밥상'을 자주 찾는다. 혼자 밥 먹기가 싫어서다.
그래도 늘 마음에 걸렸다.
"언제까지 도움만 받을 수는 없는데…."
박 할머니는 폐지를 줍기로 했다.
1년 전부터 새벽 1시에 일어나 현관문을 나섰다.
오전 7시에 문을 여는 고물상에도 그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오전 내내 초장동 빌라와 주택가를 돌며
고물이나 폐지를 주으면 3000원 남짓 벌었다.
마침내 목표했던 100만 원이 쌓이자
박 씨는 '따신밥상'에 따뜻한 밥 한 그릇 올리는 데 보태라며 후원금을 내놓았다.
부산이 고향인 할머니는 21세에 결혼해 경북 의성에서 생활했다.
21년 전 남편과 사별한 그는 한 사찰에서 공양주(절에서 먹을 음식을 짓는 사람) 생활하다
자식들의 간청에 못 이겨 부산으로 돌아왔다.
제주도와 부산에 사는 아들딸들에게 부담 주기 싫어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인 방을 구했다.
맞은 편에는 박 할머니의 큰 오빠네가 함께 살고 있다.
박 씨는 앞으로도 폐지를 주울 생각이다.
"연금도 받고 자식들도 도와주니 어려울 게 없어. 이웃들과 어울려 점심 한 끼 먹으려고
따신밥상에 가는데 목사님(강정칠 대표)이 좋은 일을 하니까 힘을 보태야지."
박 씨처럼 따신밥상을 찾는 어르신 중 후원금을 내놓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강 대표는 "지난 14년간 이웃들과 연탄이나 식사를 나눴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평소에도
유쾌한 박 할머니 덕에 행복했는데 100억 원보다 더 크고 값진 정성을 기부하셔서 따뜻한 음식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구 아미동에 있는 부산연탄은행 따신밥상에서는 어르신이면 누구나 점심을 함께할 수 있다.
매주 월·수·토요일 식사를 하는 산복도로 어르신은 150여 명에 달한다.
김봉기 기자 super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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