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신 항일투사
[박재혁 생가] '복원'하자
“남루하게 방치” 본지 보도 뒤 존재 몰랐던 후손이 연락…
“독립운동 자산 보존 도와달라”
문 대통령도 “애국지사 예우”…박 의사 재평가 작업 나서야
“부산 시민이 도와주세요.
독립투사인 큰할아버지의 넋을 기리는 생가 복원에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박재혁(왼쪽) 의사와 박 의사 여동생 박명진의 친손녀인 김경은 씨. |
부산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박재혁 의사의 후손 김경은(여·53) 씨의 호소다.
김 씨는 독립운동의 역사적 공간이 방치되고 있다는 기사(본지 지난 17일 자 6면 보도)를 보고
22일 취재진을 찾았다.
그는 “광복 70년이 넘었는데 독립운동의 흔적이 보존되지 않아 안타깝다.
더 늦기 전에 박재혁 의사가 제대로 조명받을 수 있게
부산 동구 범일동 생가 복원부터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 의사는 의열단 김원봉 단장의 지시를 받고
1920년 9월 14일 부산경찰서(현 부산 중구 남포동)에 폭탄을 던져 일본인 하시모토 서장을 폭사시켰다.
현장에서 체포돼 옥중 단식을 벌이다 27세의 나이에 숨졌다.
여느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그렇듯 김 씨도 넉넉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직업은 신용카드 설계사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혼자서라도 박 의사 생가 복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김 씨는 “박재혁 의사는 고향 부산에서도 저평가되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최근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제발 초라하고 남루한 박재혁 의사 거리부터
재단장해 달라’고 호소했다”고 털어놨다.
박재혁 의사의 혈육이 부산에 있다는 사실은 여태 아무도 몰랐다.
역사학계도 그동안 박 의사의 가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박 의사가 혼례를 올리지 않고 젊은 나이에 숨져 후대가 끊긴 줄로만 여겼던 탓이다.
박 의사에게는 여동생(박명진)이 한 명 있었다.
김 씨는 명진 씨의 친손녀다.
부산시나 부산보훈청이 그동안 김 씨를 몰랐던 것은
박 의사의 순국으로 국가보상금(매월 200만 원)을 받는 후손이 따로 있어서였다.
박 의사의 제적등본을 보면 박 의사는 양자를 뒀다.
보상금 수급자는 당시 양자의 아들(경기도 거주)로 확인됐다.
김 씨는 “아버지(김갑경)는 3·1동지회를 통해 박 의사 추모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박재혁 동상(1998년 완공)도 아버지가 주도해 설치했다”고 소개했다.
부산시 이병진 문화관광국장은 “여태껏 박 의사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게 사실이다.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산보훈청 측도 “국가보훈처에 보고해 소중한 독립운동 자산을 널리 알리는 방법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화영 기자 hong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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