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린 꽃으로 그린 작품…거실, 자연에 물들다
예술로 재탄생한 ‘압화’
- 가지에 붙은 꽃잎 채취해 색을 최대한 살린채 건조
- 단시간 수분 빼는게 관건
- 작품완성 땐 진공상태 압축
- 액자 속 풍경 된 야생화 감탄
- 컵·거울 장식하면 염색 사용도
- 서영주 명장 “자연색 유지 노력”
조금씩 다가오는 가을의 이미지 중 하나는 낙엽이다.
보도블록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잎이나 아기 손 같이 앙증맞은 단풍잎부터 떠오른다.
이런 예쁜 낙엽을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책 속에 곱게 넣어 조심스레 말려 본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졸업식에서 받은 꽃다발을 버리지 않고 거꾸로 매달아 바삭바삭해질 때까지 말려본 기억도 보편적이다.
이처럼 식물을 말려서 보관하는 건 누구나 해 본 적이 있지만 납작하게 말린 식물로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보는 건 새로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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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화로 만든 다양한 작품들. 화병에 꽂힌 꽃을 표현하거나 가구의 표면 장식, 컵 뚜껑 등 다양한 곳에 적용할 수 있다. |
채원압화예술원의 서영주 명장은 “압화는 꽃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며
“꽃의 다양한 표정을 살려 건조하는 것부터가 중요하다”고 했다.
압화라면 책갈피나 열쇠고리 등에 조그마하게 들어가 있는 말린 꽃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예술원 안을 둘러보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식장 전체에 벽지처럼 발라져 있는 것이 벚꽃잎과 수국이었다.
꽃잎 하나하나가 다 실제라니 나도 모르게 액자나 작품 앞에서 코를 박고 쳐다보게 됐다.
압화를 배우고 즐긴 지 20년째 된다는 정경주(49·남구 대연동) 씨가
“다들 그렇게 코를 박고 작품 안에 들어갈 듯이 감상을 하게 된다”며 흐뭇해했다.
작품 속 무늬나 색감이 그린 것이 아니라 말린 꽃과 자연물로 표현해낸 것이라 놀라웠다.
서 명장은 “말린 식물을 겹쳐서 형태와 볼륨감을 가진 작품으로 표현하다 보면
내 거실에 정원이 들어와 있는 느낌을 준다”며 압화의 매력을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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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주 명장이 수강생들이 건조해 놓은 과일을 보여주고 있다. 본연의 색상을 가지고 종이만큼 얇게 말린 과일이 신기할 정도다. |
압화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식물을 채취해 가장 예쁠 때 말리는 건조작업이다.
서 명장은 “벚꽃은 바닥에 떨어진 걸 모아다 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때는 이미 꽃잎의 색이 다 바래서 쓸 수가 없다”며
자신만의 방법을 알려줬다.
벚꽃이 봉오리를 맺었을 때 가지째로 잘라 실내에서 꽃을 피운 뒤
건조작업에 들어가는 거다.
그래서 지인에게 부탁해 아예 작업용 벚나무를 심어두고 사용하거나
상품용으로 판매되는 꽃들을 사다가 쓴다.
꽃이 가장 예쁠 때 건조 작업을 해야
색소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낙엽도 마찬가지다.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는 이미 색소가 바래서
말리면 시커멓게 색이 다 변해버린다.
나무에 붙어 있을 때 채취해 색을 살리는 데 가장 중점을 둔다.
서 명장은 “식물이 살아 있을 때 그대로를 봐야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니냐고 책망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압화는 식물을 가장 아름다울 때 건조해 그것을 재료로
다시 아름다움을 재창조하는 일이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압화 작품을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작품이 몇 있었다.
거베라, 해바라기같이 부피가 큰 꽃을 어떻게 저렇게 액자에 납작하게 들어가게 말릴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서 명장은 “내가 압화에 완전히 빠지게 된 것도 해바라기 때문이다. 해바라기는 부피가 아주 큰 꽃인데
그게 액자에 너무나 얌전하게 들어가 있어서 반해 버렸다”고 했다.
비결을 물어보니 날카로운 도구로 꽃과 줄기, 잎에 상처를 내서 최대한 빨리 속의 수분을 빼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작품이 완성되면 진공상태로 압축해 자연의 색이 최대한 오래 가도록 하는 것도 노하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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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작업을 거치면 3차원의 식물이 완전히 1차원적인 평면으로
변하는 게 신기해 그 과정을 알고 싶었다.
서 명장은 “마침 수강생들이 과일을 말려 놓은 게 있다”며
건조하고 있던 과일을 보여줬다.
수박, 골든 키위, 포도까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제 색상을 유지하면서 종이처럼 얇게 바싹 말라 있었다.
포도 껍질은 수분이 흘러나오지 않게
휴지를 속에 대어서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버섯과 연근, 가지 등이 그린 것보다 더 예쁜 모양과 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종이보다 얇아서 만질 때는 핀셋을 사용해 들어올려야 한다.
이렇게 말리는 과정부터 정성을 들여야 자신이 만든 작품에도 애착이 생긴다.
그나마 과일은 크기가 좀 커서 덜 조심스러웠지만 꽃잎이 쌓여 있는 곳에선 무척 조심스러웠다.
서 명장은 “압화 꽃잎으로 작업할 때는 크게 웃었다가는 낭패를 본다.
워낙 가벼워 다 날아가 버린다”며 짓궂은 수강생들은 서로 우스운 표정을 하거나
재채기를 하는 시늉을 해 서로를 놀리기도 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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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명장은 “컵이나 거울에 장식용으로 작업하는 압화에는 염색을 한다.
그래야 오래 두고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으로는 염색 없이 자연색만을 살려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게 제 원칙”이라고 했다.
식물의 아름다운 그 순간을 모아 작품으로 만든 압화가
장식물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다시 보였다.
글·사진=최영지 기자 j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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