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치야마(福智山)'
꼬리 문 폭포수 굉음에 놀라고 산죽·억새 천지에 풀처럼 눕다
칸몬해협 동해 바라보는 기타규슈시 최고봉
호수·칠중폭포·산죽 억새밭 어우러져 절경
우거진 삼나무 숲 길 맑은 공기 삼림욕 만끽
4~5 시간 산행 마치면 온천탕서 피로 풀어
수십 길 자란 삼나무가 빽빽한 숲에서 쏟아져 나와 콧속으로 흘러드는 청정한 공기의 맛.
그리고 그 공기를 타고 귓속까지 비집고 드는 산새들의 청아한 노랫소리.
계곡을 따라 오르며 한 굽이 돌 때마다 만나는 크고 작은 폭포들의 '물방울 소나타'.
8부 능선부터 정상부 평원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산죽밭과 억새군락지에서 울려 퍼지는 '바람의 교향곡'.
360도 거칠 것 하나 없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대한해협과 칸몬해협의 푸른 물결.
취재팀이 일본 기타규슈시 최고봉 후쿠치야마(福智山)의 상징인 '칠중폭포' 중 최상단에 위치한 '제7폭' 앞을 통과하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 |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해외 명산 답사차 다녀온
일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北九州市)의
후쿠치야마(福智山·900.8m)의 면모를 보여주는 말들이다.
사실 후쿠치야마의 특징을
한 마디로 콕 집어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굳이 우리나라 산들과 비교해 본다면
포항 내연산의 계곡과 영남알프스 신불산 억새평전,
산죽이 우거진 지리산 황금능선, 그리고 발아래 시가지와 바다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금정산의 장점들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 같은
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발 1000m가 안 되는 높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트레킹 산행을 즐기는
'주말 산꾼'들에게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는 산이다.
사실 국내 산행에 한창 재미를 들인 산꾼이라면 가끔 해외 산에도 가보고 싶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적·경제적 부담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기 십상.
또 큰 마음 먹고 기껏 휴가라도 받아서 4박5일 일정으로 경관이 빼어나다는 중국 황산이라도 찾아가면
산행을 한 것인지, 사람 구경을 한 것인지 분간이 어려워지기 일쑤다.
그래서 주말에 제주도 한라산이나 울릉도 성인봉을 찾아갈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고
비용 면에서도 큰 부담이 없는 해외 산행지로 인기 있는 곳이 부산에서 가까운 일본 규슈지방의 산들이다.
그동안 국내 산꾼들이 주로 찾던 규슈의 산으로는
규슈섬 최고봉인 구주산(1791m), 산자락에 신사(神社)가 즐비하고
계곡의 자그마한 폭포가 인상적인 보만산(寶滿山·829.6m) 정도다.
화산 활동이 활발하고 일본 제1호 국립공원이기도 한
아소산(1592m)의 경우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이국적 '관광지'일 뿐 산행 코스로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취재팀이 답사한 후쿠치야마(복지산)는
구주산, 보만산 등과는 또 다른 산행의 멋을 즐길 수 있는
규슈의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산이다.
산행 시간도 4시간 안팎이면 충분한 데다 전체 일정 역시 주말에 가볍게 다녀올 수 있을 정도여서 부담이 없다.
무엇보다도 7개의 커다란 폭포가 연속되는 계곡산행의 아기자기한 맛과 정상부 산죽 및
억새 군락지의 광활함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로 구성하면
어떤 산에도 뒤지지 않을 매혹적인 산으로 다가올 수 있다.
또한 일본의 56개 국정공원(國定公園) 가운데 하나인
기타큐슈국정공원의 중심부이자 최고봉인 점도 이 산의 매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전체 산행을 요약하자면
마스부치댐~현수교~칠중폭포(나나에노폭포) 계곡 입구~칠중교~칠중폭포~갈림길~주
능선 도오마에(豊前)고개~까마귀고개~무인대피소~후쿠치야마 정상(산죽밭)~연속 갈림길~
우에노고개~갈림길~임도~시로이토계곡~우에노(上野)마을 시로이토 온천으로 이어지는 14㎞ 코스다.
정상을 기준으로 볼 때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진행(산행개념도 참조)된다.
후쿠치야마 산행 초반에는 몇 차례 계곡을 건너야 한다. |
부관훼리 편으로 도착한 일본 본토인 혼슈의 최서남단 항구도시인
시모노세키(下關) 부두에서 버스 편으로 간몬대교를 타고
규슈섬으로 건너가야 한다.
현수교인 간몬대교는 동해와 일본 내해(內海)인
세토나이카이의 연결목인 간몬해협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구간.
즉 혼슈와 규슈를 연결하는 다리인 셈이다.
규슈 최북단 도시인 기타큐슈시 고쿠라미나미구(小倉南區)
도바루(道原) 마을 마스부치저수지의 마스부치댐 입구
주차장이 들머리인데 시모노세키에서 이곳까지 50분 걸린다.
댐에서 바라본 저수지에는 서서히 물안개가 걷히고 있고
눈을 들면 후쿠치야마의 깊은 계곡과 능선이 성큼 다가온다.
마스부치댐 위를 통과하면 차량 통행 차단문이 나오고 '후쿠치야마 5.5㎞'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이 거리 표시는 최단거리 코스로 올랐을 경우의 구간 거리일 뿐
취재팀이 진행하는 코스로 가면 정상까지 약 8㎞가량 된다.
순환도로를 따라 300m쯤 가면 보행자를 위한 붉은색 현수교가 나오는데 이 다리를 건넌다.
다리 끝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벌써부터 빼곡히 들어선 삼나무 숲이 싱그러움을 풍기며 대륙에서 건너온 손님들을 맞아준다.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한적하고 운치 있는 길이다. 붉은 동백꽃이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도로에 나뒹군다.
후쿠치야마의 울창한 삼나무 숲이 맑은 공기를 선사한다. |
15분쯤 가면 '규슈자연보도(九州自然步道)'라고 적힌
대형 목제 등산로 안내판이 있는 '등산구(登山口)'가 나오는데
이곳이 본격 산행 들머리인 줄 착각하기 쉬우니 주의하자.
이곳은 규슈섬 전체에 이어진 규슈자연보도 코스의 일부이자
후쿠치야마로 오르는 최단 코스 등산로의 입구일 뿐이다.
호수 순환도로를 따라 200m 정도 더 가면 작은 돌다리를 건너
또 하나의 등산로 입구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칠중폭포로 가는
진짜 진입로다.
산불조심 간판과 작은 철문이 보이고
칠중폭포로 가는 길이라는 표시가 있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5.9㎞.
계곡으로 들어서니 산새 소리와 물소리가 어우러져
달콤한 '숲의 소나타'가 울려 퍼진다.
5분 뒤 임도가 갈라지는데 칠중교를 건너 직진한다.
임도는 어느새 산길로 바뀌어 있다.
10분 후 계곡을 건너 200m만 오르면
작은 다리 위로 우렁찬 물줄기를 쏟아내는 폭포를 만난다.
여기가 칠중폭포(나나에노폭포)의 제1폭이다.
높이 10m 정도의 폭포로 산행 당시 비가 온 후라서 그런지 물줄기가 제법 굵다.
2폭포는 제1폭포의 왼쪽 쇠줄을 잡고 올라서야 나오는데, 그 전에 왼쪽 공터를 지나 좀 더 왼쪽에 있는
지계곡에도 제1폭포 못지않은 폭포가 있으니 놓치지 말고 꼭 본 후에 오르자.
번호가 따로 붙어 있지 않은 이 폭포를 취재팀은 '1-1 폭포'라고 부르기로 했다.
1-1폭포 오른쪽으로 오르자마자 좀 더 우측으로 우회해 쇠줄 구간 위쪽으로 오르면 2폭포가 나온다.
높이 15m가량의 2단 폭포다.
이어서 왼쪽에 3단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높이 30m 정도의 폭포를 만나는데 이곳 역시 별다른 이름이 없다. 오대산 소금강계곡의 구룡폭포를 닮은 이곳을 '2-2 폭포'라고 붙여봤다.
이후 3~7폭포까지 이름표를 가진 폭포가 잇따라 나온다.
마지막 7폭포는 15m 높이의 수직폭포로 마치 밀양 구만산의 구만폭포를 빼닮았다.
후쿠치야마의 칠중폭포는 일본의 젊은이들에게는
자일과 로프를 이용해 폭포수 절벽을 타고 오르는 모험의 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칠중폭포는 번호가 없는 왼쪽 2개까지 합치면 총 9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후쿠치야마 정상 직전에 만나는 무인대피소. |
칠중폭포를 통과한 직후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면
갑자기 계곡이 확 넓어진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아래위가 넓고 중간은 좁은 폭포가
여러개 있는 것은 포항 내연산이나 청송 주왕산의
내원동 계곡과 흡사한 구조"라고 설명한다.
마치 평지 같은 넓은 계곡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다.
왼쪽 도오마에고개(豊前越)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조금씩 가팔라진다.
길은 아주 걷기 편하게 정비돼 있지만 등산객은 거의 없어 한적함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다.
20분 후 주능선의 고개마루인 도오마에고개에 닿는다.
다시 규슈자연보도와 합쳐진 셈이다.
오른쪽으로 능선을 따르면 샤쿠다케(尺岳·608m)를 거쳐
기타큐슈시의 진산으로 통하는 사라쿠라산(622m)까지 종주할 수 있다.
사라쿠라산은 규슈섬을 관통하는 규슈자연보도의 최북단 종점이기도 하다.
또한 정상에서 바라본 기타큐슈시와 해협 건너 시모노세키시, 그리고 동해의 야경이 너무 멋지기 때문에
이 산의 야경을 '신 일본 3대 야경' 중 하나로 꼽곤 한다.
후쿠치야마 정상으로 가려면 왼쪽 오르막 능선을 타야한다.
25분 후 까마귀고개로 알려진 사거리 갈림길을 통과해 7~8분쯤 더 오르면 무인대피소에 닿는다.
샘터와 비상의약품함, 양변기를 갖춘 무인 화장실 등이 있다.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100엔짜리 동전이 필요하다.
후쿠치야마 정상 주변 평전에 펼쳐진 광활한 산죽밭. |
대피소를 지나면 광활한 산죽밭이 펼쳐진다.
울창하던 삼나무를 비롯해 다른 나무는 찾아볼 길이 없고
온통 산죽만 넘실댄다.
15분 후 작은 석재 산신각 10m 위에
정상현판과 돌탑이 서 있는 정상에 도착한다.
사방이 거칠 것 없는 빼어난 조망미를 갖춘 정상이지만
갑자기 뒤덮은 운무 때문에 조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정상 남쪽으로는 마치 신불평전 같은 넓은 억새밭이 펼쳐진다.
가을에 오면 정말 장관이라고 한다.
답사 산행에 동행한 건건테마여행사 전인규 대표의 제안으
로 취재팀은 정상에서 순국선열 및
일제강점기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한 후 하산길에 나섰다.
하산은 정상에서 남쪽으로 20m 지점에 있
는 또 다른 산신각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 산죽터널길을 따른다.
두 차례 갈림길이 나오는데 처음엔 오른쪽,
그 다음에는 왼쪽 길을 택해 내려선다.
30분 후 이정표가 있는 우에노고개 사거리에 닿는다.
직진하면 다카토리산으로 가는 길이지만 왼쪽 우에노계곡 방향으로 간다.
3분 후 갈림길에서 왼쪽 내리막을 타면 곧바로 임도를 만난다.
오른쪽으로 5m쯤 살짝 이동한 후 임도를 버리고 다시 내리막 숲길을 따른다.
계곡을 따라 20분만 내려서면 산행 종점인 우에노마을의 시로이토온천탕 앞에 닿는다.
정갈하고 깔끔한 마을길 한 쪽에 등산화를 깨끗하게 털 수 있도록 솔과 물을 준비해 놓은 것이 보인다.
산행객들에게는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하고 마을 길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니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작지만 큰 배려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산행 들머리 부근인 마스부치저수지 순환도로에서도
같은 용도로 사용되는 물통과 솔이 구비돼 있었다.
그곳으로 하산하는 산꾼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 떠나기 전에
- 기타규슈 국정공원으로 지정된 명산
취재팀이 날머리에 비치된 솔로 등산화를 손질하고 있다. |
일본 규슈의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의 최고봉인
후쿠치야마(복지산·福智山)는 56개뿐인 일본 국정공원 가운데 하나인
키타큐슈 국정공원에 속한다.
그런데 이 국정공원이라는 것이 한국에는 없는 독특한 공원이다.
일본의 국정공원은 쉽게 말해 국립공원에 버금가는 경관을 갖고 있으면서 자연보호의 가치가 높다고 인정되는 곳을
정부 부처인 환경청이 지정한 자연공원이다.
국립공원의 경우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데 반해
국정공원에 대해서는 정부 부처인 환경청과 도·부·현 등
광역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관리한다는 점이 차이다.
1950년대에 이 제도가 도입된 후 4곳의 국정공원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기타큐슈국정공원은 지난 1972년 10월 지정된 후 줄곧 환경청과 후쿠오카현이 공동 관리하고 있다.
후쿠치야마의 모든 이정표와 코스 안내판에는 환경청과 후쿠오카현의 명칭이 함께 기재돼 있다.
한편 후쿠치야마는 일본의 100대 수원보호숲으로 지정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행 날머리인 후쿠오카현 다가와시(田川市)의 우에노(上野) 마을은
차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명품으로 통하는 다기(茶器)를 굽는 가마가 많은 마을이다.
매년 4월 우에노 다기 축제가 펼쳐진다.
◆ 교통편
- 부관훼리 이용… 전문 여행사 통하면 부담 덜어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부관훼리 편으로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한 후
50㎞가량 떨어진 후쿠오카현 기타규슈시의 후쿠치야마 입구까지는 버스를 연계해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갈 경우 의사소통도 불편하고 시간적 경제적으로도 낭비요소가 많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산악회 등의 단위로 단체산행을 하는 편이 좋다.
부산에서는 후쿠치야마 산행 전문 여행사도 있다.
일반적으로 금요일 저녁 또는 토요일 저녁에 부관훼리를 타고 부산항을 출발,
다음 날 오전 8시께 시모노세키 부두에 내린 뒤 산행을 하고 온천욕과 쇼핑을 한 후
당일 저녁 재승선해 3일째 오전 8시에 부산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구성된다.
금요일 저녁 출발하면 일요일 아침에 도착하고,
토요일 저녁 출발이면 월요일 아침 도착 후 곧바로 출근할 수 있는 일정이다.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제주도 한라산 산행 일정과 유사한 셈이다.
산행 중 식사는 도시락이 제공되며 나머지 식사는 대부분 선내 레토랑에서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