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3

1963년 9월, 또다시 호열자(콜레라)가 부산을!...

민간에서는 호열자를 막기 위한 주술의식이 유행하였습니다. 대표적인 풍속이 고양이 그림을 대문에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호열자에 걸리게 하는 악귀를 쥐 귀신으로 여겼으므로 천적인 고양이 그림을 붙여 쫓고자 한 것입니다.  이렇게 콜레라는 현대까지도 두려운 신으로 전해졌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lCrmSHshTM&t=3s

해방이 되었지만, 콜레라 때문에 반갑지도 않아...

일제가 패망하고 1946년, 귀환동포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귀환동포들이 반갑지도 않은 것은 그놈의 콜레라 때문이었습니다.  1946년 5월 귀환동포 3150명을 싣고 중국에서 온 수송선이 일주일이 넘도록 부산에 입항하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배 안에 호열자가 창궐하여 2명이 사망하자 이들을 수장했기 때문입니다.  미 군정의 방역부에서 소독을 했지만 허사였습니다.그 해 부산에서는 하룻밤에 80명씩이 호열자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호열자 환자를 장롱에 감추었다가 한 동네가 몰살을 당했으며, 아미동 화장터에서 연기가 날아온다고 화장터를 부수는 소동도 있었습니다. 또 시신 운반을 거부하는 운전사에게 권총을 들이대기도 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6ULElFeM..

개항과 함께 ‘부산을 덮쳤던’ 콜레라!~

근대 시기까지도 몸서리치게 무서운 병은 역병이었습니다. 호열자는 역병 중에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병이었습니다. 전파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치사율도 높았습니다.  호열자를 호역(虎疫)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호랑이가 살점을 뜯어내는 고통을 준다는 뜻으로 호열자에 관한 공포 관념이 담겨있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kpjqPyl1FY

건강 이바구 2024.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