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9월, 또다시 호열자(콜레라)가 부산을!... 민간에서는 호열자를 막기 위한 주술의식이 유행하였습니다. 대표적인 풍속이 고양이 그림을 대문에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호열자에 걸리게 하는 악귀를 쥐 귀신으로 여겼으므로 천적인 고양이 그림을 붙여 쫓고자 한 것입니다. 이렇게 콜레라는 현대까지도 두려운 신으로 전해졌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lCrmSHshTM&t=3s 그때 그시절!~~~ 2024.05.22
1919년 3·1운동 때도 전국적으로 ‘콜레라 환자’가... 3·1운동이 일어났었던 1919년, 아울러 호열자의 습격도 거센 해였습니다. 전국적으로 1만6915명의 콜레라 환자가 발생 1만1084명이 죽었습니다. 1920년에도 호열자는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이 해에는 2만4229명의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부산은 콜레라 위험지역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부산은 전염병의 수입지가 되었습니다.부산에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입출국하는 사람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늘 외항 선원들로 붐볐기 때문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saFEiurqis&t=10s 건강 이바구 2024.05.04
개항과 함께 ‘부산을 덮쳤던’ 콜레라!~ 근대 시기까지도 몸서리치게 무서운 병은 역병이었습니다. 호열자는 역병 중에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병이었습니다. 전파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치사율도 높았습니다. 호열자를 호역(虎疫)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호랑이가 살점을 뜯어내는 고통을 준다는 뜻으로 호열자에 관한 공포 관념이 담겨있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kpjqPyl1FY 건강 이바구 2024.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