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 교수의 '내 부산, 내 옛 둥지'] 17. 해운대 백사장서 '적기가' 부르고
"상급생 강요 공산당 노래 합창하며 행진"
1930~40년대 부산의 시가지가 대신동에서 범일동에 불과했던 시절, 해운대로 가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 해운대 해수욕장은 시설이 갖춰진 공적 해수욕장은 아니었다.
가까이 사는 사람들만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시절 상급반 학생들이 해운대해수욕장에서 공산당의 '적기가'를 부르게 한 기억은 어처구니없다.
사진은 1930년대 해운대해수욕장의 모습.
김한근 부산불교역사연구소 소장 제공
누구나 알다시피, 해운대는 한국 팔경(八景)의 하나다.
신라 시대 최치원이 달맞이 고개에서 서쪽으로 내다보이는 바다 풍경에 넋을 잃고
자신의 자(字)를 따서 '해운대'라 했다고 전해진 것을 보면,
해운대의 유래는 무척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해운대에는 산과 바다에 걸친 명소가 많다.
산으로는 북으로 길게 솟아 있는 장산(長山)을 첫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바다를 내다보는 언덕으로는 송정 넘어가기 직전에 길게 뻗친 달맞이 고개를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달밤에 바다를 바라보는 명승지로 이 고개만 한 곳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해변으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오늘날 시가지를 끼고 펼쳐진 백사장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장산과 달맞이 고개와 백사장은 해운대의 삼절(三絶)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긴 온천도 꼽아야 할 테지만, '해운대 온천'의 명승은 이젠 꽤 시들은 것 같아서 마음 아프다.
동래 온천과 나란히 전국에 이름을 날리고 있던 것이 자못 아쉽고도 또 아쉽다.
광복 다음해 좌익 계열 선배에 이끌려 집합
'붉은 깃발 아래 죽음 맹세' 가사 내용 '섬뜩'
"그대 얼굴을 그대 모습을
눈시울에 그리며 나 홀로 찾아서 왔네
추억 맺힌 해운대 물새 소리도
파도 소리도 그 옛날과 같건만
그리운 님은 가고 없더라. 찾을 길이 없더라"
문주란이 이같이 노래하고 있는 그 해운대는,
서로는 수영만에서 동으로는 송정까지, 12㎞에 이르는 해안선에 걸쳐서 뻗어 있다.
그러나 해운대가 역시 해운대다운 것은 1.8㎞에 걸쳐서 펼쳐진 그 백사장이다.
1930~40년, 부산의 시가지라야 대신동에서 겨우 범일동까지로 끝나고 있던 시절,
시내에 사는 사람들이 해운대 가기는 쉽지 않았다.
부산부(釜山府) 시절 해수욕장은 동으로는 '마쓰시마'라고 하던 송도(松島)가, 그리고 서로는 수영이 고작이었다.
해운대 백사장은 시설이 갖추어진 공적(公的)인 해수욕장은 아니었다.
물론 그 당시 동래 군에 속해 있던, 해운대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해수욕을 즐겼겠지만,
그것은 극히 한정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오늘날 풍광이나 환경이나 시설로 보아서 한국 제일의 해수욕장은 다름 아닌, 해운대 백사장이다.
여름이면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 지역에서 해수욕객이 모여들고 있다.
그 수가 예사로 십 만을 넘고 이십 만도 넘는다니 엄청나다.
한데 필자에게 해운대는 마음 아리는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1945년 8·15 광복을 맞은 다음 해의 일이다.
그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우리는 상급반 학생들에 이끌려서 해운대 백사장에 모였다.
상급생 몇이 우락부락 나서더니 우리로 하여금, 마치 군대처럼 백사장을 행진하게 했다.
그것은 주변 환경과는 아예 어울리지 않는 흉측함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난데없는 일이 벌어졌다.
상급생 녀석들이 우리로 하여금 급작스레 공산당의 '적기가'를 부르게 했다.
그자들은 좌익계열이었던 것인데,
미리 준비한 붉은색 깃발을 이상하게 흔들어대면서 우리를 다그쳤다.
'원수와 더불어 싸워서 죽은
우리의 죽음을 슬퍼 말아라.
깃발을 덮어다오, 붉은 깃발을
그 밑에 천사를 맹세할 깃발!'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광복하기 전 일정 시대에 그토록 일본을 위해서 죽을 수 있어야 한다고 군가를 부르곤 하지 않았던가!
그게 바로 어제 같은데, 광복을 맞은 이제, 공산주의를 위해서 죽으라니!
빨갱이가 되는 것도 당치 않은데, 붉은 깃발 덮고는 무덤에 들라니!
나는 콱, 침을 뱉고는 입을 앙다물었다. 마음도 잠갔다. 백사장 모래가 패도록 깊게, 크게 한숨을 토했다.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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