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영도다리 난간 위서 장난삼아 바다로 다이빙

금산금산 2011. 9. 6. 07:45

[김열규 교수의 '내 부산, 내 옛 동지'] 16.영도다리에 관한 기억

"다리 난간 위서 장난삼아 바다로 다이빙"

                                           부산항의 대표적 명물 영도다리는 한국 현대사의 기념비다.

                                       큰 배들이 지나다니게 하려고 하루에 6번씩 시간 맞춰 들어 올려졌다.

                                          강판 위로 전차가 다니고 탱크도 통과하는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영도다리 아래는 6·25전쟁 직후 50여 채의 점집이 무리짓고 있었다.

                                                          그 앞바다는 훌륭한 수영장이었다.

                                                         김한근 부산불교역사연구소 소장 제공

부산은 항구다.

항구는 부산이다.

한반도에 포구도 많고 항구도 많지만, 항구 중의 항구가 곧 부산이다.

그런 부산항의 대표적인 명물 중의 명물이 다름 아닌 영도다리다.

남항과 북항의 경계에 자리 잡은 영도다리, 그것은 부산항 최상의 역사적인 상징으로 쳐도 괜찮을 것 같다.

 

'등대 불 깜박이는 부산 항구야

오륙도 떠난 배는 어데로 갔나, 어데로 갔나

님이야 떠났건만 정이야 떠날소냐

잔을 들고 내가 우는 영도다리 난간에

아, 쌍고동 섧다.'

'도개' 장면 구경 시민 몰려

방파제서 영도까지 헤엄쳐

대교 주변, 꼬맹이 '놀이터'

 

 

이처럼 적잖은 대중가요가 노래한 영도다리.

영화의 무대가 되기도 한 영도다리.

그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기념비가 되기도 할 영도다리는

꼬마 시절 내게는 추억이 어리고 또 어린 현장이다.

 

 

우선 볼거리가 대단했다.

무엇보다 '도개(跳開)'라고 일컬은 그 장엄한 장면을 내세워야 한다.

큰 배들이 지나다니게 하려고,

하루에 6번씩 시간 맞춰 들어 올려지는 다리가 무엇보다 신기했다.

 

 

그 무거운 강철로 된 구조물!

36미터 길이의 강판 위로 전차가 다니고 탱크도 통과할 만한 거대한,

몇천, 몇만 톤을 넘을 어마어마한 구조물!

천천히 육중하게 각도를 높이다가 마침내 하늘로 우람하게 치솟는 것은 여간 장관이 아니었다.

일부러 구경 나온 사람들은 다들 압도당해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한데 내게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으니,

그것은 영도다리를 놀이터 삼는 일이었다.

거기서 수영하고 장난치고 했다.

 

 

남포동 쪽에서 다리로 들어서기 직전에

오른편 아래로 나 있는 계단을 내려서서 조금만 앞을 보고 가면

작은 방파제가 있었다.

6·25전쟁이 일어난 그 무렵, 50채가 넘는 점쟁이의 집이 무리 짓고 있던

그곳이 바로 여름철 나와 친구들의 수영장이었다.

보수동에 있던 집에서는 제법 먼 곳이었는데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만큼 매력 넘치는 장소였다.

 

 

수영복이고 뭐고 할 것 없이, 팬티로만 알몸을 가리고는 온 방파제를 휘젓고 다녔다.

물론 풍덩 하니 바다에 뛰어들어서는 물놀이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건너편 영도까지 헤엄쳐 가서 되돌아오곤 했다.

크고 작은 기선들이 내왕하는 항로 사이를 비집고는 헤엄을 쳐댔으니 위험천만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무슨 변덕인지, 우리는 다리 위로 올라갔다.

겨우 허리둘레를 조금만 가린 꼴로 난간을 따라 내달리기도 했으니,

그것은 무슨 육체미를 과시하자는 것이었을까?

지나다니는 어른들이 손가락질하고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수영하고 달리고 하는 걸로는 신이 차지 않았던지, 셋 중 하나가 긴급 제안을 했다.

다리 위에서 바다로 내리뛰자고 했다.

'좋아, 한 번 해보지!' 나머지 둘도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속으로 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글쎄, 높이가 얼마나 될까?

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눈길이 감감했다.

10미터는 더 될 높이가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어쩌랴.

이미 본 합의를 사내새끼가 뒤집을 수는 없었다.

셋은 육지에 가장 가깝게 접한, 그래서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은 곳을 골랐다.

그리고 난간 밖으로 나가서 섰다.

하지만 다들 다리가 떨렸다.

누구라고 선뜻 몸을 날릴 처지는 아니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는 맨 처음 차례가 된 친구는 비실대고 머뭇대기만 했다.

 

 

그런 녀석을 옆에 섰던 친구가 와락 떠밀었다.

아차! 떠밀린 녀석의 몸이 무슨 낙엽처럼 날렸다 싶은데, 이내 풍덩! 철썩! 물에 처박혔다.

크게 솟구친 물기둥이 가라앉도록 녀석은 떠오르지 않았다.

난간 위의 둘은 겁을 먹고는 허둥대기만 했다.

파랗게 얼굴이 질렸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파도를 헤집고 물밑에 처박힌 녀석의 머리와 몸이 가까스로 떠오르는 게 아닌가!

몸을 파도에 싣고는 바로 뉘더니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무사했구나!'

 

그 한마디 남기고, 난간 위의 두 놈은 쏜살같이 내뺐다.

다리야 날 살리라고, 영도다리야 날 살리라고 삼십육계를 놓았다.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