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예술]

[부산 '영화지도'를 그리다] <4> '영도·사하구'

금산금산 2013. 9. 8. 09:20

[부산 '영화지도'를 그리다] <4>

'영도·사하구'

'낯선 설렘'이 가득한 곳…로컬리티 드러나는 영화 기대

    

 

영도구와 사하구의 다대포는 제1의 해양도시다운 근대적인 모습과 천혜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야성적인 모습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해운대의 해변이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적인 세련된 자태를 지녔다면, 영도와 다대포의 바다는 코르시카(Corsica)적인 거친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클레르 드니(Claire Denis)의 영화 '개입자(L'Instrus·2004)'에서 그려진 부산의 모습은 바다를 지나 도착한 낯선 공간이 아니라 생동감, 활력으로 가득한 '접촉'의 공간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영화 속에서 영도구 동삼동 국제크루즈터미널과 중구 중앙동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는 새로운 공간에 놓인 이방인의 낯선 설렘을 그려 내는 장소로 제시됐다. '개입자'는
프랑스스위스 국경 그리고 부산, 남태평양의 타히티를 배경으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적인 영화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부산의 낯선 풍경은 영화 전반부의 우울함과 후반부의 희망적인 이미지를 연결하는 공간으로 그려졌다.

1934년 개통 영도다리
피란민들 아픈 사연 간직
때로는 희망의 문 변신도

사진가 즐겨 찾는 흰여울길
옛 사진첩 보는 듯 애틋

영화 '태풍''작업의 정석'…
수많은 작품 배경 다대포
광활한 이미지 큰 매력


한 지인은 우스갯소리로 부산에 살고 있으나 귀가할 때 '들어간다'는 표현을 쓰는 몇 안 되는 지역이 영도와 다대포라고 말했다. 부산 최남단에 위치한 다대포와 '다리'라는 매개를 통과해야 도착할 수 있는 영도에 관한 지리학적인 유머였다. 클레르 드니는 부산에서 타자와 낯설음에 관한 현실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 도입하는 관문을 보았고, 그 관문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들고 나기'를 반복하며 두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이중적 경계에 놓인 이 특수한 지역 중에서 먼저 영도로 들어가 보자.


■피란민의 애환을 지닌 역사적 공간, 영도다리

이 배경이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이다.

영화 '영도다리'에서 미혼모 인화(박하선 분)가 영도다리 아래를 거닐고 있는 장면.

현재 영도구에는 해사고등학교, 한국해양대학교, 해양경찰서, 국제크루즈터미널, 조선소, 국립해양박물관에 이르기까지 바다에 관련된 기관이 빼곡하게 상주해 있다. 하지만 영도를 대표하는 전통적 명소의 으뜸으로는 '영도다리'를 꼽을 수 있다. 영도다리로 익히 알려진 영도대교는 영도구 대교동과 중구 대청동을 연결하여 1934년 11월 23일에 개통된 부산 최초의 연륙교이다. 6·25 동란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던 시절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피란민들의 고달픈 사연이 얽히는 무대가 되었고, 근래에는 전수일 감독의 영화 '영도다리(2009)'에서 미혼모 인화(박하선 분)의 황망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고독한 공간으로 등장한다. 과거의 애절한 사연이 영화 속에서 대물림 되는 것일까? 인화는 원치 않는 아이를 낳고 입양을 보내고 영도다리 주위를 맴돌며 가혹한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로 묘사되었는데 영화 후반부에는 입양된 아이를 찾아 프랑스의 낯선 마을로 찾아가는 것으로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영도다리'의 영화적 상징성은 실제 영도다리의 아픈 역사성과 관계적 유대감에 기반을 둔 것이다. 상실의 아픔, 만남의 희망이라는 영화의 소개처럼 영도다리는 애환의 역사가 새로운 희망으로 변화하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 바다의 흔적과 기억의 공간- 영도 해안길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최민식 분)의 여동생이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김 서방과 집으로 찾아오고 있는 모습.
영도의 관문인 영도대교를 지나 영선동 아래 로타리에서 제2 송도길로 가 보자. 오른쪽 바다를 끼고 난 좁은 골목을 따라가면 흰여울 문화마을을 만날 수 있다. 영도구의 주요행사인 '영도다리 축제'의 일환으로 흰여울길 답사가 있듯이, 이 지역은 이미 사진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꼽히고 있다. 이곳의 집들은 아찔한 높이의 낭떠러지 위에 들어서 있고 바닷바람이 새긴 흔적이 벽마다 켜켜이 쌓여 있다. '흰여울길'을 걷다 보면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골목의 모습이 살아 있어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착각마저 든다.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2011)'에서 최익현(최민식 분)이 비리 관세 공무원으로 살아갈 때의 거주지로 이 마을이 등장한다. 익현은 만삭이 된 여동생과 김 서방을 좁은 집에서 맞으면서 자신의 가문이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자랑하지만, 이후 부산 최대 조직의 젊은 보스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아 한몫을 챙긴 뒤에는 보란 듯이 마을을 떠난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공간적 특성은 옛 사진처럼 마을에 남아 있다.


절영해안산책로는 과거에 지형이 가파르고 험난한 군사보호구역으로 접근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은 절벽 사이를 흔들다리로 연결해 대마도와 송도 쪽으로 드넓은 바다 풍경을 배경 삼아 연장 3㎞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가장 부산적인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한 곽경택 감독은 이미 그의 전작에 걸쳐 부산의 장소적 특색을 전면에 드러내어 왔다. 그의 6번째 영화 '태풍(2005)'에서는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대위 강세종(이정재 분)이 국정원 간부(김갑수 분)에게 최명주(이미연 분)와 최명신(장동건 분)에게 가지는 감정을 과거의 기억에 비유해 털어놓는다. 천혜의 기암절벽과 자갈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바다 건너편 세계의 기억이 밀려올 듯하다. '태풍'과 '범죄와의 전쟁'에서 절영해안산책로의 풍경은 인상주의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 바다의 낯선 풍경- 다대포

다대포에서는 그 지역의 관계적 공간성을 결합한 작품보다는 각 영화 자체의 분위기에 맞춘 이미지로 선택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대포가 가진 특수한 장소성은 단지 단편적인 이미지였다 하더라도 강렬한 모습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다대포에 입성하기에 앞서 철새들의 고향인 을숙도대교부터 둘러보자.

을숙도대교는 부산신항 물류 수송의 원활한 처리와 지역 간 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사람들을 자연 속으로 다가가게 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철새도래지의 훼손을 피하기 위해 1993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 2010년에서야 완공되었고, 그 덕에 여전히 을숙도에는 철새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고마운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을숙도에서는 '엽기적인 그녀(2001)'와 '무적자(2010)' 등 을숙도 특유의 자연경관을 활용한 영화들이
촬영되었다. 을숙도는 또 자전거 도로로 유명한데, 낙동강 옆 평지구간에 마련돼 있는 자전거 도로를 달리다 보면 다대포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영화 '태풍'에서 주인공 강세종(이정재 분)이 동료들과 다대포 바닷가에서 럭비를 하는 모습.
다대포해수욕장은 사막을 연상케 하는 드넓은 백사장과 완만한 수심으로 어린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태풍'에서는 강세종이 동료와 함께 해변을 가르며 럭비를 하는 장면이 촬영되었고, 그 외에도 '작업의 정석' '마음이' '카멜리아' 등 수많은 작품이 다대포해수욕장이 가진 광활한 매력을 찾았다. 이곳은 지역적 특색이 드러나는 일상적 로컬리티를 담아내는 것보다는 이미지로서의 공간이 부각되는 특징이 있다. 이 지역의 내적인 특색보다는 이미지만을 차용하는 것은 내심 안타깝다. 이미지 차용을 넘어 다대포만이 가지고 있는 로컬리티가 드러나는 영화가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부산 영화지도 그리기 모임에 1년간 참여하면서 평소에 알지 못했던 지역 문화의 특수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간은 변화하고 살아 있는 것이라 그 추이를 감히 짐작하지는 못하겠다.

특히 영도구와 다대포 일대에서는 촬영 장소로 공간성을 드러낸 것이 가장 주요한 흐름이라 볼 수 있겠다. 영화 속에 취사선택된 이 지역의 공간성은 바다와 절경이라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도를 그리자면 평소 우리가 자주 찾는 관광지와 일치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 '영도다리'는 영도 특유의 공간성이 잘 반영되었고, 일상적 장소성을 절묘하게 병치하거나 결합시킴으로써 지역 정체성을 심도 깊게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나아가 영화 '개입자'처럼 바다를 통해 신세계의 관문이 되는 지리적인 특성을 살린 로컬 시네마가 풍부하게 제작된다면 이 공간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글=원라진 부산대 영화
연구소 연구원 jatan@naver.com

사진=박종현 사진가
newyorker57@hanmail.net

후원: 부산영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