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화 지도'를 그리다] <6> 동구②, 그리고 남구 '문현동'
40년 전 개관 때 '초호화 시설' 시민회관, 남녀노소 관람객 장사진...
▲ 전국 공공문예회관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시민회관 전경. 다음달 10일로 개관 40주년을 맞는다. |
부산은 현재 부산영상위원회의 적극적인 협조 하에 로케이션을 지원하며 제작 전선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말 그대로 장소와 공간만 대여해 주는 형식으로 엔딩 크레딧 한 편을 장식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장소와 공간도 부산의 지역성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곳으로 이루어져 호명되는 편파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 '건축학개론'의 강 교수의 말처럼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으며,
숲보다 먼저 나무를 봐야 할 때가 있다.
해운대와 센텀시티, BIFF 광장에서 벗어나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의 로컬 시네마를 이해하는 진정한 출발점이 아닐까?
다양한 예술 공연 '공공문예회관' 기능 톡톡
1980년대 부산 개최 영화제 대부분 치러
문현 교차로의 눌원빌딩 '지원군' 역할
문현 안동네 벽화마을서 '마더' 촬영
현재도 영화 속 분위기 그대로 살아 있어
일제 강점기 때 형성 곱창골목엔 '친구' 흔적
장소 제공 곱창집 당시 모습 고스란히 보존취
■경계선에 위치한 문화적 공간 - 시민회관과 눌원소극장
약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의 극장 대부분은 현재의 중구 남포동과 충무동에 위치한 BIFF 광장 근처에 집중되어 있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 시절 동구와 남구의 주민들은 부산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서면점이 근방에 생기기 이전에 동구 범일동 근처 시민회관으로 모여들곤 하였다.
중구에서는 기존의 대형극장과 별도로 소극장들이 활개를 치고 근처인 동구 범일동에도 노동자들을 위한 극장들이 모여 있던 시절, 시민회관은 공공문예회관으로서 다양한 예술들을 계층과 연령, 성별에 관계없이 두루 접하게 하였다. 또한 당시로서는 초호화 시설을 자랑했던 시민회관은 단체 관람이 흔했던 곳으로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민회관에 영화를 보러 갈 때면 그곳에서 초등학교 동기들을 만날 수가 있었음은 물론, 의도치 않은 가족 모임이 이루어지곤 하였다. 시민회관은 동천을 경계로 동구 범일동에 위치하고 있지만 교통편으로 보았을 때는 남구 문현동과 상당히 근접해 있다.
1973년 10월 10일 개관 이래 연극과 전시 활동을 포함한 수많은 영화들이 이곳에서 상영되었으며, 1980년대 부산에서 행해진 영화제나 관련 행사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아스팍영화제, 스위스 영화제, 유럽공동체 영화제, 한국창작단편영화제(현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여성영화제 등이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1976년에는 개항 100주년을 맞아 부산시민회관에서 제22회 아시아영화제가 열렸는데, 서울에만 집중되던 국제적 영화 행사가 지방에서 열린 이례적인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 시민회관이 영화 촬영 로케이션으로 활용된 사례는 아직 없으나 맞은편 크라운관광호텔에서는 '달콤한 인생'(2005)이, 국제호텔에서는 '범죄와의 전쟁'(2011)이 촬영되었다.
KRX 한국거래소 본사 건물은 동구 자성로에 위치해 있으며 문현교차로와 매우 가깝다. '눌원 빌딩'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1990년 개관해 이 지역 예술 공간의 지원군 역할을 담당했다. 다목적 문화공간인 눌원소극장을 보유하고 있었고, 예술 관련 행사들과 소규모 영화 상영 및 시사회들이 치러졌다. 제8회 한국창작단편영화제, 칸느영화제수상작 상영회, 청룡영화상 수상작 상영회, 영화 탄생 100주년 기념 예술영화 상영회, 한국우수영화 감상회 등이 이 눌원빌딩의 역사와 함께하였다.
■부산의 가교 문현동
문현동은 동구 범일동과 부산진구 전포동을 마주한 남구의 가장자리 동네다. 동구 영화역사와 부드럽게 연결되는 곳이 문현동이다. 부산 전체 교통의 요충이기도 하다.
황령터널 전면 무료화가 시행된 2010년 이전까지, 지리적으로 부산 지역의 중심지를 잇는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는 이 지역을 지게골이라고 하고 있으나, 도시철도 2호선이 들어서기 이전까지는 문현동 새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지게골이란 밖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문종이로 바른 외짝 문을 말하는데 이러한 지명의 유래를 되새겨 보자면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문현동 자체의 지리적 중요도를 가늠할 수 있다. 가깝게는 서면과 광안리, 해운대 일대를 연결하되 멀리는 도시고속도로를 통해 부산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금정구와 남쪽의 끝자락인 부두를 이어 주었으며, 서쪽으로는 동서고가도로(부산 제2도시고속도로)가 있어 남해고속도로와 부두를 이어 주었다.
문현동 벽화마을에서 촬영된 '마더'의 한 장면. |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2009) 일부분은 문현 안동네에 위치한 벽화마을(돌산마을)에서 촬영되었다. 이 벽화마을은 요즈음 보기 드문 달동네의 풍경을 간직한 곳으로 한국전쟁 시기 피란민들이 자리 잡은 삶의 터전이었다. 이 벽화마을을 포함한 문현 안동네는 과거 미군부대가 주둔했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본토박이 어르신들은 안동네 전체를 부대안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벽화마을은 이러한 이력을 제외하고도 일반적인 산동네와 구분되는 아주 특이한 점이 있는데, 좁고 빼곡하게 즐비한 허름한 슬레이트 주택가들 사이로 주인 모를 80여 개의 무덤들이 무질서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처음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이곳 주민들의 대문 앞과 마당, 좁은 골목길 사이에 드문드문 존재해 있는 무덤들을 보고 깜짝 놀란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이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은 이 무덤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태연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부산시에서는 무덤마을의 이미지를 바꾸고자 2008년 문현 안동네 벽화거리 시범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현재는 개성 넘치는 마을의 특성과 시각적인 감흥을 돋우는 벽화들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마더'를 촬영했던 홍경표 촬영감독에 의하면 영화 속에 등장했던 건물은 실재 주택이 아닌 오픈세트였다. 세트가 있던 자리는 현재 풀과 나무가 무성해져 버렸지만, 영화 속에서 재현된 분위기만은 아직 그대로이다. 해질녘 벽화마을에서 보이는 문현동의 소박한 전경이 노을빛으로 물들면 63층으로 완공될 문현 금융단지 내의 부산국제금융센터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절경으로 비추어진다. 이러한 벽화마을의 모순되는 풍경을 넋 잃고 둘러보면 저 멀리 부두쪽 문현동 끝자락에 곱창골목이 눈에 들어온다.
문현동 곱창골목에서 촬영된 '친구'의 한 장면. |
문현동의 곱창은 부산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문현동의 이름을 빌어 간판을 걸고 운영하는 곱창집이 흔하게 눈에 띄일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영화 '친구'(2001)의 한 장면을 촬영하였다. 영화 속 준석(유오성 분)이 친구 상택(서태화 분)과 함께 소주 한 잔 걸치며 건달 이야기를 꺼내는 곳이 문현 곱창골목 내에 있는 칠성곱창이다. 문현동 곱창골목은 과거 부산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의 애환과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꽤 많은 곱창집들이 새벽까지 불을 밝히고 있었으나, 지금은 '친구' 촬영지인 칠성곱창만이 3개 지점으로 확장되었고, 많은 곱창집들이 문을 닫은 상태이다. 칠성곱창 본점은 아직도 영화 속 모습 그대로 보존·운영되고 있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문현동 곱창골목이 이곳에 형성된 것은 일제 강점기이다. 지금의 배정고등학교 근처에 도살장이 있었는데 근처 문현시장에 돼지곱창을 공급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앞서 언급된 문현금융단지는 지하철 2호선 문전역이 있는 전포대로와 매우 인접해 있다. 부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미래부산발전 10대 비전 사업 중 다섯 번째가 바로 부산 금융 중심지 조성사업인데, 부산 금융단지하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곳이 이곳 문현동이다. 하지만 부산시의 포부와는 달리 문현금융단지 부지는 10년 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공터 형태로 남아 있다 최근 들어서야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풀과 나무만 무성하던 공터 시절, 이곳은 오히려 완벽히 통제된 로케이션 대상지로 주목받아 '가을로'(2006)와 '6월의 일기'(2005)가 촬영됐다. 현재는 이곳에 한국은행 부산본부, 부산은행, 기술보증기금 본점과 부산국제금융센터가 들어설 전망이다. 부산에서 자금의 순환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질 이곳이 또 다른 영화의 촬영장소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글=정승언 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jabsd@hanmail.net
사진=박종현 사진가 newyorker57@hanmail.net
후원: 부산영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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