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예술]

[부산 영화지도를 그리다] <3> 중구 ③

금산금산 2013. 8. 31. 19:42

[부산 '영화 지도'를 그리다] <3> 중구 ③

'부산 영화'의 본향…자갈치·국제시장·짠 바닷바람이 있는 공간

 

▲ 영화 '신세계'에서 이자성(이정재 분)에게 조직 형님으로서의 우애를 과시하는 정청(황정민 분)이 건배를 제의하는 장면과 실제 이 영화가 촬영된 화국반점(작은 사진).

"우리 친구 아이가", "마니 묵었다 아이가, 고마 해라", "살아 있네" 등으로 대표되는 유행어를 퍼트린 한국영화들은 어디서 만들어졌을까. 그 중심에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압축하고 있는 공간,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상존하고 있는 부산 중구가 있다. 중구는 부산에서 해운대구 다음으로 많은 영화가 촬영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영화가 촬영되고 있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공간이다.

한국영화에서 부산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과거를 회고하는 형식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로 사용되는 것이고, 둘째는 마약, 밀매, 조직폭력 등 범죄의 온상으로 표현되는 방식이다. 그만큼 부산의 거친 사투리는 호소력 있고, 부산 '싸나이' 특유의 끈끈한 의리, 피보다 짙은 우정은 짠 바닷바람 위에서 매혹적으로 비춰진다. 이러한
이미지들로 영화 속에서 부산을 규정짓는 것에 대해 일부 우려하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만큼 부산이라는 공간이 역동적이고 활발한 도시라는 반증이 아닐까.

영화는 볼거리에서 시작한 예술 장르이다. '열차의 도착'을 찍은 뤼미에르나 '달세계 여행'을 찍은 멜리에스로 대표되는 영화사 초기부터 영화는 볼거리를 보여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영화산업은 그 점을 부각시켜 '필름 느와르'라는 장르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이제 한국의 '조폭영화'는 최소한 한국 내에서는 단순한 소재를 넘어 일종의 장르가 되어 가고 있다.

해운대구 다음으로 영화 많이 찍어
한국 근현대사가 압축된 곳


황정민이 중국집서 "부라더" 외치고
하정우 '소주
가글'이 어울리는 곳
부산 특유의 '싸나이 의리' 있는 곳

'친구' 부산 정서 가장 많이 담아
'아트시어터' 중구 영화 역사 명맥

■깡패영화의 중국집

비교적 최근에 촬영된 영화 '범죄와의 전쟁'이나 '신세계'를 본 관객이라면 기억에 남을 만한 장소가 있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극 중 배신자로 낙인 찍혀 얻어터진 몰골로 찾아온 최민식의 구구절절한 사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폼 나게 탕수육을 먹고 있는 하정우가 마무리로 소주로 가글하는 중국집, 최민식이 10억짜리 전화번호부라며 상대편 두목이자 새로운 동맹자인 조진웅을 안심시키는 중국집, '신세계'에서 황정민이 "부라더"를 외쳐 대며 그들 특유의 끈끈한 우정을 확인하며 건배를 외쳐 대던 중국집. 이곳은 모두 중구에서 촬영된 중국집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그 많은 중국집 중에 중구에 있는 중국집이 촬영장소로 로케이션 된 것일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영화들이 촬영된 동광동의 '화국반점'과 중앙동의 '동궁중화요리'는 중구에서도 지리상으로 비교적 가까운 초량 차이나타운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일대는 1876년 개항 이후, 그리고 본격적으로 중국인들이 드나들기 시작한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일본인 못지않게 많은 화교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이들은 개항부터 시작해 중일전쟁을 거쳐 광복 등 굵직굵직한 근현대사의 결과에 따라 조선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고, 초량왜관을 중심으로 이곳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설명해 주는 역사적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장소가 되어 갔으며, 그 결과 그 주변에는 화교가 33년째 운영하고 있는 '화국반점' 외에도 많은 중국집, 일본식 카레집 등을 볼 수 있다. 
 
자갈치시장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촬영지로서의 중구 그리고 '친구'

짙은 근현대사의 역사를 압축하고 있는 중구에서 가장 많이 촬영된 장소는 어디일까? 단연 중구의 중심지인 용두산 공원 일대로 난 좁은 골목길들 사이로
이름도 다양한 국제시장, 깡통시장, 부평시장과 부산항 근처의 자갈치시장일 것이다.

용두산 공원과 더불어, 그곳을 배경 삼아 끝을 보려면 머리를 어디까지나 젖혀야 하는 부산타워는 '사생결단'에서 황정민이 류승범을 미끼 삼아 마약 밀매책을 잡아들이는 작전에 공간적 배경이 되었다. 국제시장은 일본 영화 '히어로'에서는 극 중 검사 기무라 타쿠야가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으로 와서 다양한 먹거리들을 즐기는 장소로 촬영되었으며, '무방비도시'에서 손예진이 자신의 부하를 데려와 상대 조직에 복수하는 장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공간을 역사적 기억의 장소로 소환한 영화는 '친구'일 것이다. 
`친구`에서 자갈치시장을 배경으로 내달리는 네 친구들.

한국 조폭 영화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영화에서 이 남포동 시장 일대는 한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철저한 고증의 소품들에까지 신경 쓴 결과 학창 시절의 기억의 소환 장치로서 70년대부터 90년대를 아우르는 한국의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그 기억을 끄집어낸다는 것이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나 아픔을 이야기하거나 부산의 파란만장한 질곡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본 관객들이 다들 자신의 추억을 끄집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추억을 이야기하고 과거를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친구'는 게토가 되었다. 중장년층들은 다들 지나간 시절에 대해 너 나 할 것 없이 회고했고, 그 회고들은 곳곳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게 했으며, 그 이야기들은 복장, 두발 단속에서 시작해 어느덧 야간 통행금지와 계엄령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기에 이르렀다. '친구'는 부산이 아니면 성립하지 않는 영화이다. 현재까지도 한국의 많은 영화들이 조폭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지만, '친구'만큼 지역적 정서를 독특하게 잡아낸 영화는 없었다. 이 영화는 부산 특유의 짠 바다 내음과 특유의 구수하고 맛깔난 사투리가 만나 감정의 기폭제 역할을 단단히 했다. 더구나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곽경택 감독 스스로가 자서전 같은 영화라고 말했듯, 부산의 장소에 대한 기억의 세밀함은 결국 이후 많은 사람들이 남포동 일대를 방문하게 하는 관광지 상품의 역할을 독톡히 해냈다. 그래서 '친구'는 한 편의 영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영화 `국화꽃 향기`에 등장한 보수동 책방골목의 한 서점.
■역사가 살아 숨쉬는 보수동 책방골목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국화꽃향기'의 초반부 장진영과 박해일이 동아리 선후배 사이로 만나는 장면은 보수동 책방골목의 한 고서점에서 촬영되었다. 신입생 박해일과 동아리에서 잔뼈 굵은 회장 장진영의 에피소드로 시작하는 초반 장면은
대학교 특유의 활달함과 풋풋함이 서려 있으면서도 오래된 자료를 찾는 학구적인 공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불시의 습격으로 무방비 상태에서 북한이 쳐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났을 때 전국의 피난민들이 부산에 오밀조밀 모여 살기 시작했을 무렵, 미군부대에서 버린 잡지, 만화책과 각종 헌책들을 모아 팔기 시작한 것이 모태가 되어 그 주위로 우후죽순 모여들어 형성된 골목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본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상징적인 거리이다. 당시 학생들은 이곳에서 저가에 참고서를 사기도 하고 쌈짓돈이 필요해 각종 책들을 집에서 몰래 슬쩍해 와 팔기도 하는 거리였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 바빠 배움에 목말랐던 중장년층들에게는 학문의 결집소이자 항상 결핍된 그들의 앎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공간이었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상징적이고 신화적 존재인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Jean Luc-Godard)의 회고에서조차 집에 있던 고서적들을 할아버지 몰래 팔아 영화제작금을 마련했을 정도라고 하니 헌책방 골목에서의 비밀스런 매매는 어느 국가에서나 일어나는 빈번한 현상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것이 일반화되었지만, 아무래도 책은 손맛인지라 헌책뿐 아니라 새 책까지 구비해 있는 이곳은 지금도 많은 학생들의 왕래가 잦은 장소이며 타지인들에게는 중구에서도 꼭 둘러봐야하는 첫 번째 여행코스로 꼽히고 있다. 
책방골목 실제 모습.



가톨릭센터에 입주해 있는 `아트 시어터 C+C`.
■중구 영화 역사 명맥 잇는 '아트시어터 C+C'

한국영화사의 상징적인 장소라 할 수 있는 중구의 맥을 이어 나가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의 성지인 대청동 가톨릭센터가 있다. 이 센터 내에 중구 유일의 예술 영화 전용관 '아트시어터 C+C'가 있다. 압도적인 규모의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시네마테크 사이를 빈틈없이 메워 주며 그들의 가교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예술영화 전용관이다. 2009년 6월 설립되었으며 가톨릭센터에 입주해 있는 'C+C'는 최근 관람층이 다양해지고 있다.
프로그래머인 김창수 씨는 "설립 초기 20대 중반~30대 중반 여성관객층이 많았는데 요즘은 가족과 커플 단위 관광객이 느는 추세"라고 말한다. 소극장이지만 6.1채널 서라운드 음향 시스템, 지역 단관 극장 최초로 영화 몰입도를 높여주는 곡면 스크린을 채택, 아나몰픽 렌즈조화를 이룸으로써 멀티플렉스도 구현해 내기 힘든 화면을 볼 수 있다. 이 영화관은 부산의 중구가 한국영화의 역사적인 장소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일본·중국 관광객 등 유동인구 증가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작지만 강한, 관객 중심의 극장'이라는 슬로건 아래 영화 관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C+C'가 앞으로의 중구 영화 역사의 명맥을 잇고, '영화 도시 부산'의 전망을 더 밝게 해 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

글=강동호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영상매체협동과정 재학생

stiller83@naver.com

사진=박종현 사진가 newyorker57@hanmail.net

후원: 부산영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