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작소 <10-7> [新 강서별곡]- '자운영꽃 필 때'-북섬나루 이야기(엽편)
용구 엄마야, 내 그 여자랑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다 소원이다
북섬나루 청둥오리 울음인지 엄마의 울음인지 가느다란 비명이 방안에 퍼졌다
부산 강서구 대저동 서연정마을에 자리한 북섬나루는 한때 나룻배와 뱃사공, 주모 3박자가 갖춰진 나루터였다. 지금은 모두 떠나고 낚시꾼들만 간간이 찾고 있다. 봄날, 강 건너 북섬(치등섬)에 자운영 꽃이 피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국제신문 DB |
'뱃사공은 싫다'며 오빠는 집을 나가고
아빠는 '그 여자' 곁으로 가버렸다
송장같이 허얘진 얼굴로 엄마는
며칠이고 곡기를 끊고
노만 저었다. 그리고 어느 날
미역국을 끓이고 팥밥을 지어
입안 가득 밥을 밀어넣었다
오빠의 생일이었다
차르르 차르르. 갈대숲을 스치는 강물소리는 꼭 오라비의 웃음소리 같다고 순정은 생각했다.
달도 없는 그믐밤, 갈대숲은 의외로 고요했다.
그믐밤이면 참게를 잡으려고 너나 할 것 없이 횃불을 들고 갈대숲을 뒤지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허연 횃불
몇 개만 비칠 뿐이었다.
순정은 축담에 놓인 고무신을 찾아 신었다.
발바닥에 와 닿는 촉감이 얼음처럼 차가워서 몸이 오싹해졌다.
주막 앞 강가에 청둥오리며 기러기, 고니 떼들이 움직임도 없이 앉아서 목 안쪽에서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들을 꾸럭꾸럭 시부렁대고 있었다.
겨울밤이면 집 앞까지 걸어 들어와 지저귀는 철새 소리에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순정은 화가 나서 돌멩이 하나를 주워 어둠 저쪽으로 휙 날려버렸다.
"에이씨, 빌어먹을 새."
푸다닥 한 떼의 새들이 날아오르는가 싶었는데, 순정의 보골이라도 채우려는 듯
새떼는 다시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머니는 벌써 사흘째 밥 한 숟가락 안 뜨고 있었다.
아침에 손님이 와서 물 건너가자, 라고 하면 어머니는 텅 빈 몸을 이끌고 삿대를 잡았다.
그러기를 벌써 사흘째라는 거다.
노 젓는 일이 얼마나 힘든데, 밥을 안 먹고 하나?
내일도 그러면 어머니는 아마 삿대를 잡고 쓰러지고 말 것이다.
기순이 아버지가 배 삯으로 갖다 준 쌀 포대를 풀어 보리도 섞지 않고 하얀 이밥을 했는데, 밥 냄새를 맡고
순정이 창자는 걸신들린 거지처럼 아우성인데, 어머니 코에는 닿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고사리나물도 볶고 콩나물도 무쳤는데 어머니는 벽 쪽으로 돌아누워 본 체도 하지 않았다.
막배를 몰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허옇게 뜬 얼굴이 귀신 얼굴이었다.
그걸 보는데 가슴이 덜컥 했다.
저러다 죽겠다싶어 쌀 포대를 푼 것이었다.
외지 사람들은 배 삯을 돈으로 주지만 동네 사람에게는 1년에 한 두 번씩 쌀이나 보리로 받았다.
쌀을 푸러 창고에 들어갔다가 순정은 창고가 텅 비어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도둑이 든 것인가.
오라비와 아버지에 이어 도둑까지...
이건 또 뭔 일인가 싶어 순정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흘전 땔감을 구해와야겠다며 대동으로 건너간 아버지는 돌아오는
막배를 타지 않았다.
순정이 살고 있는 서낙동강 삼각주는 평야만 있을 뿐 산이 없었다.
겨울이 되면 땔감을 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이 죽으면 묏자리를 쓸 곳도 없었다.
사람들은 대동으로 건너가 땔감을 마련해 오고, 초상이 나면 시신을
나룻배에 싣고 강을 건너야 했다.
북섬나루는 대저와 김해를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겨울이 오거나 명절 때에는 손님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명절 때면 성묘객이 한꺼번에 몰려서 번호표를 발행해 배 타는 순서를
정하여야 할 정도였다.
순정은 강바람에 손이 곱는 줄도 모르고 설날이나 추석때에는 나루에
서서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나누어 주었다.
손님이 많을 때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번갈아가며 노를 저었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순정이 주먹밥을 만들어 막걸리 두 세 병과 함께
배에 실어주면 그걸로 끼니를 때웠다.
나룻배는 하루종일 강의 이쪽과 저쪽을 오락가락했고, 배를 기다리면서 사람들은 주막에 들어가서 술을 마셨다. 북섬나루 주막은 오랜만에 명절빔을 입은 말끔한 입성의 사람들로 흥청거렸고, 주모는 신이 났다.
주막에 허드렛일 하는 중노미의 발바닥은 불이 났고, 달걀 삶는 냄새는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순정의 코를 간질였다.
순정은 번호표를 나누어주느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번갈아가며 노를 젓느라 바빠서 추석날 성묘는 늘 오라비
차지였다.
오라비는 올 추석날 성묘를 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오라비는 늘 북섬나루를 떠나고 싶어했다.
"두고 봐라. 나는 여길 뜨고야 말끼다. 여기 있어봤자 내가 뭐 하겠노? 뱃사공밖에 더 하겠나? 노 젓는 거 생각만 해도 언성시럽다."
늘 푸념처럼 그런 말을 했지만 정말 이 곳을 그렇게 훌쩍 떠나버릴 줄은 몰랐다.
이눔의 자식 들어오기만 해 봐라 하고 부아를 내는 아버지와 달리
강 너머에 눈길을 준 채 어머니는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도 그러지 않았소. 이놈의 삿대 부러뜨리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용구 아부지, 쪼매만 기다려 보입시다. … 우리 용구 곧 올낍니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오라비라면 신고 있던 신발도 벗어주던 어머니였다.
아버지도 그랬다.
아버지가 바쁘거나 아플 때에는 단단히 한 몫을 하던 오라비가 없어졌으니 얼마나 속이 상할까 싶었다.
그래도 오라비가 뱃사공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으니 두 분 다 그럭저럭 넘기려나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추석 이후로 아버지가 이상해진 것이었다.
처음엔 그게 오라비 때문인 줄 알았다.
북섬나루에 겨울이 와 강바람에 찬기운이 냉랭하게 묻어나고 어머니의 한숨도 조금씩 줄어드는데, 아버지의 얼굴은 갈수록 점점 더 야위어져만 갔다.
아버지는 자주 멍하니 강 너머를 바라보았고, 사람을 태우고 노를 잡은 채 정신을 놓기도 했다.
북섬주모가 몇 번이나 어머니를 찾아왔다.
"용구 아부지 요새 무슨 걱정거리 있나? 오늘은 강 한가운디서 노를 놓칠뻔 해가꼬 큰일날뻔 했다더라.
물 건너 동자네 여편네가 민물새우 사가면서 아까 그카더라."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아무리 물어도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걱정이 뭐요? 용구 아부지."
어머니는 말이 없는 분이었다.
눈이 작고 광대뼈가 튀어나와 여자얼굴로는 박색이라고들 했지만 순정의 눈에는 선녀보다 고운 이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니 어무이는 마음이 비단결이다.
사람들은 늘 순정에게 그런 말을 했다.
"몸도 이리 바짝바짝 말라가고, 무슨 일인지 말을 해 보소. 말을!"
아버지가 벽 쪽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
"시끄럽다. 불 꺼라."
순정은 다른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이젠 오라비 방도 비었으니 그 방에 가서 자고 싶었다.
하지만 겨울에는 땔감을 아껴야 해서 모든 가족이 한 방에서 자야했다.
순정이 눈을 뜬 것은 오라비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오라비가 배를 저어 북섬나루로 돌아오고 있었다.
순정은 오라비에게 손을 마구 흔들다가 눈을 떴다.
밖으로 한 번 나가보고 싶었다.
정말 오라비가 왔을지도 몰랐다.
"용구엄마야, 내 이래가꼬는 몬살겠다. 한 번만 내 소원 들어도. 한 번만."
"소원이라니? 그기 무신 소리요?"
"그 여자랑 결혼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가시나가 북섬나루댁으로는 몬살겠다 카더라."
"나도 아요. 그 여자, 시집 오니 소문이 자자 합디다. 얼마나 동네 소문나게 연애를 했는지.
당신이 그 여자 김해로 시집가고 난 뒤에 쥐약 묵은 이야기도 내 들었소."
"솔직히 다 말하께. 내 이라다가 속이 터져서 죽을 것 같다. 그래 다 말하께. 추석 때 봤다.
큰소리치면서 내 버리고 부자집에 시집갔는데 친정나들이 한 번 못하고 그 시집살이가 보통이 아니었다더라.
근데 작년에 남편이 죽었단다. 남편 죽고 난 뒤 그 집에선 도저히 못살겠더라고, 그래서 죽일 년 살릴 년 소리
들으면서 큰맘 묵고 시집에서 나왔다고…. 근데 대저 이쪽에서는, 여기서는 남부끄러워서 몬살겠다고…,
김해에서 장사하면서 산다더라. 혼자서 장사하는 기 너무 힘들다꼬."
"그런데 와요? 내보고 그런 이야기를 와 하는데요? 와요? 내보고 우짜라고 그런 이야기를 하능교?"
"용구 엄마야."
"됐소. 내 못들은 거로 할끼니까네, 없던 일로 할끼니까네 씰데없는 소리 말고 그만 자소."
순정은 숨소리라도 새어나갈까봐 손으로 입을 더욱 세게 틀어막았다.
방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허우적거리는 강물이 나루에 매인 배 밑바닥을 철썩철썩 때렸다.
청둥오리와 고니떼들의 소리가 방안에 가득 들어와 앉았다.
그 소리들을 밀치며 아버지가 용구엄마야 하고 다시 엄마를 불렀다.
"내 한 번만 살아보고 싶다. 그 여자랑 한 번만."
윽. 비명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왔다.
청둥오리의 울음인지 엄마의 울음인지 가느다란 비명이 방안 가득 퍼져나갔다.
땔감을 적게 넣은 탓인지 방이 식어가고 있었다.
순정은 몸을 더욱 작게 웅크리고 이불을 입 속으로 틀어넣었다.
"어무이 한 숟가락만 뜨이소. 그래야 아부지를 찾던가 할꺼 아입니꺼."
어머니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순정을 보았다.
어머니 눈이 그림에서 본 해골처럼 푹 파인 듯 퀭했다.
"니는 걱정 안 해도 된다. 보리쌀 팔아가꼬 사람 시켜서 찾으라 캐놨다."
거스러미가 인 어머니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순정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막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켰다.
"니가 쪼매만 컸어도 배를 맡기고 가보는 긴데. 사람들 발을 묶어놓을 수야 없제."
자글자글 참게가 마당을 기어다니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 위로 청둥오리, 고니 기러기들이 날아다녔다.
삐걱삐걱 철퍽철퍽 삿대가 물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물 좀 건너 가입시더. 사공요!"
물 건너편에서 뱃사공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배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어서 강 건너에서 손님이 부르면 언제든지 일어나서 배를 부려야 했다.
어머니가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순정도 밥그릇을 들고 함께 일어났다.
기어이 밥을 한 숟가락 먹이고 보내야 했다.
밥그릇을 들고 나루까지 따라나갔을 때 나루터에서 민물새우를 잡던 주모가 배를 푸는 어머니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사람들을 보고 웃었지만 말은 누군가가 싹둑 잘라먹은 듯 없어졌다.
나루엔 갈대가 지천이었다.
갈대 사이로 물결이 찰랑거리고, 비바람 따라 갈대도 일렁였다.
사흘째 비가 왔다.
내일까지만 비가 더 왔으면 좋겠다 라고 순정은 생각했다.
그러면 어머니가 하루 더 쉴 수 있다.
큰비가 오면 나룻배 운행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비가 많이 와서 나룻배를 묶어 놓을 때에는 북섬주막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아버지 몸에서는 막걸리 냄새와 비냄새가 하루종일 섞여 있었다.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마치 술이 그러는 것처럼 아버지에게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주모는 아버지의 노래가 슬프다고 비까지 오는데 청승이라며 면박을 주었다.
오늘처럼 비가 오면 주막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아침에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았던 탓이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볼 셈인지 아예 방에 들어가서 자리를 펴고 누운 사람들도 있었다.
다른 방에서는 노름판이 벌어졌는지 중노미가 마루 끝에 앉아 연신 방을 기웃대고 있었다.
순정은 주막집 마당을 건너다보다 말고 비를 온전히 맞고 있는 죽림강을 보았다.
나룻배는 바람에 연신 건들거렸다.
새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빗소리 때문인지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빗줄기가 너무 세어서 밖에 나가볼 수도 없었다.
방안에 누워만 있던 어머니가 일어나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더니 벽에 걸린 달력에 멍한 시선을 주었다.
오늘은 오라비의 생일이었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후에 미역국과 팥밥을 올린 밥상을 가지고 들어왔다.
"니 오래비는 어디서 미역국이라도 얻어먹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팥밥을 숟가락 가득 퍼서 입에 넣고 미역국을 후루룩 마셨다.
어머니의 볼이 터질 듯이 미어졌다.
어머니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대신 눈이 낙동강물만큼 깊어졌다.
밥상을 치우고 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어머니가 묶여있던 나룻배를 풀기 시작했다.
오라비 생일이 지나면 물 건너 치등섬(북섬)에 붉은 자운영꽃이 만발했다.
그 꽃을 보러 연인들이나 가족들이 배를 타러 또 나루로 몰려들었다.
아버지는 자운영꽃을 좋아했다.
저 꽃이 필 때면 온 가족이 함께 아버지가 젓는 배를 타고 치등섬으로 놀러가곤 했다.
돌아오는 어머니의 나룻배에 오라비와 아버지가 꼭 타고 있을 것만 같아 순정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멀리서 숨 막힐 듯한 자운영꽃 향기가 강을 건너고 있었다.
박향 소설가
▶필자 약력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제9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
제5회 현진건문학상 수상
작품집 '즐거운 게임', 장편 '에메랄드궁' 등
※공동기획 :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 강서구
'부산 이바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新 문화지리지 부산 재발견] <1> 부산의 또 다른 무늬, '설화 지도' (0) | 2014.02.01 |
---|---|
신 영도다리…[만남과 부활] <중> 영도다리 '사람들' (0) | 2014.02.01 |
역설의 공간-[부산 근현대의 장소성 탐구] <21> 산동네 (0) | 2014.02.01 |
신 '영도다리'…[만남과 부활] <상> 금순이를 찾아서 (0) | 2014.01.25 |
이야기 공작소 <10-6> [新 강서별곡]- '허왕후의 첫날밤'-가상 인터뷰 (0) | 2014.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