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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주의 광장&골목] <7>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보카'

금산금산 2014. 2. 20. 21:21

 

[이랑주의 광장&골목] <7>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보카'

탱고의 발상지 라보카… 그곳에는 휴식까지 모두 원색이었다

 

 

▲ 의류, 잡화, 가구 등 다양한 가게가 줄지어 선 라보카 거리. 큰 건물들 앞쪽으로 자리잡은 포장마차 형태의 노점들에서 라보카 특유의 활력이 느껴진다. 이랑주 씨 제공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퇴역장교 역의 알 파치노가 아름다운 여배우와 관능적이고 섹시한 탱고를 추는

 장면을 본 뒤 언젠가 저런 멋진 춤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춤의 고향에 왔다!

 

아르헨티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첫날, 우리 부부는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탱고 공연장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찾아갔다.
공연은 식사와 함께 제공돼 입장료가 비쌌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식사가 없는 뒷자리가 몇 석 남아 있었다. 휴∼.

탱고남녀 간의
호흡이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의 심장과 네 개의 다리'로 표현된 예술이라고 흔히 말한다.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탱고쇼는 숨소리조차 섬세했다.
남녀가 서너 곡을 잇따라 췄는데, 남자가 리드하고 여자는 호흡을 따르는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남자보다 여자가 더 쉽게 배울 수 있지만, 한편으로 탱고라는 것이 꽤 가부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화려한 의상, 힘찬 스텝 '아찔'

아르헨티나해서 탱고를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도시라면 대극장에서만 탱고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남쪽에 위치한 항구도시에서는 허름한 카페나 길거리에서도 기타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무명 댄서들의 탱고 공연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항구 이름이 바로 라보카다! 

탱고발생지다.

매일 밤 부두 노동자들은 땀에 흠뻑 전 작업복을 벗어 던진 뒤 화려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춤을 췄다.

그것이 이성을 유혹하는 기술, 탱고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탱고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곳을 벗어나 고급 극장의 무대에 올려졌고, 곧바로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라보카 거리의 탱고 공연.

 

그러나 라보카에서는 여전히 고급 극장이 아닌, 부두와 카미니토(좁은길)에서 탱고를 추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화려한 의상, 힘찬 스텝, 아름다운 율동….

간혹 댄서들이 포즈를 취해주면 관광객들의 사진기 플래시가 쉼 없이 터진다.


■ 붉고 푸르고 노란 원색 도시

라보카에는 탱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탱고에 앞서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거리의 원색 향연이다.

 

빨간색 함석지붕, 파란색 공중전화, 노란색 쓰레기통이 죄다 원색을 뽐낸다.

라보카에서는 태양도, 바다도, 건물도, 음악도, 심지어 휴식조차 원색의 옷을 입고 있다.

 

이 화려한 원색 쇼는 과거 부두 노동자들이 배에 칠하고 남은 페인트를 가져다 가난의 얼룩을 가리기 위해

담장과 벽, 지붕에 칠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 원색의 향연을 느긋하게 즐기며 찾은 곳이 골목상점가다.

번듯한 건물은 단 한 채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낡고 오래된 건물을 덧칠한 원색과 초기 생활상을 구현해 놓은

벽화만이 눈에 띄었다.

 

가난의 얼굴을 감추기 위해 덧칠을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라보카를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근대 보존에 소홀한 부산 반성을

만약 탱고의 발상지에 옛 모습은 없고 새 건물만 잔뜩 들어서 있다면 관광객들이 라보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역사와 전통, 이 두 가지는 모든 도시가 유념해야 할 삶의 가치다.

 

특히 부산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100년 이상의 개항도시를 표방하지만 정작 근대 건축물 하나 제대로 남겨두지 못하는 도시가 아니던가.

부디 라보카에서 그 '오래된' 지혜를 배워와야 한다.

카페골목으로 나오면 익숙한 세 인물을 미니어처 동상으로 만날 수 있다.

축구의 전설이 된 마라도나, 대통령 후안 페론, 그리고 그의 아내였던 에바 페론이다.

 

이들 세 사람은 아르헨티나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한다.

세 사람이 모두 자신의 신체와 신분의 한계를 딛고 성공했기 때문이리라.

 

특히 에바 페론은 첩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는 처지였으나

그런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결국 영부인의 자리에 올랐다고 라보카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마라도나라보카 출신이다.

이런 라보카를 들르지 않았다면, 탱고와 원색의 향연을 즐기지 못했다면, 그것은 필히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에 대한 모독이고 범죄가 아닐까 싶다.

 

이랑주VMD연구소 대표 lmy73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