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이야기 공작소 <11-3> [남구의 숨겨진 스토리들]- 우암동 '소막' 이야기

금산금산 2014. 3. 1. 12:07

 

이야기 공작소 <11-3> [남구의 숨겨진 스토리들]- 워!~워!... 우암동 소막 이야기

저기 소바위가 보이느냐 그래서 우암, 우암포지

지금은 흔적도 없어,

일본인들이 바다 메워서 소막사를 만들겠다고 박살내버렸거든

 

 

부산 남구 우암2동 주민센터 인근에는 일제시대 소막사를 개축한 가옥들이 남아 있다. 푸른 페인트로 칠한 특이한 삼각형 지붕(오른쪽 사진)과 지붕 위의 환기창(왼쪽)이 옛 소막의 흔적이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

- 노인이 시킨대로 눈을 감았더니
- 오래된 어촌 풍경이 나타났다
- 할아버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예요

- 소막을 세우든 말든 상관없었지
- 어느날 사라져버린 우리 소가
- 일본인들 소유로 바뀌기 전까진


무작정 걸었다.

걷다가 보니 목이 말랐고, 콜라 생각이 났다.

아버진 왜 캔에 든 콜라만 드세요?

언젠가 아버지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건 묘한 스릴 때문이지, 뚜껑의 손잡이를 잡고 힘을 가하는 순간 딱,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쏴아, 하는

소리는 마치 온몸을 바위에 퍽, 하고 부딪히게 하는 느낌이랄까. 뭐 하여튼 죽여주는 맛이야.

 

아버지의 이 엉뚱한 대답이 나를 콜라에 빠지게 했는지 모른다.

그러니 아버지는 내게 몹쓸 버릇 하나만 남겨주고 떠난 셈이다.

바보같이 운전도 제대로 못하면서.


   
1950년대 남구 우암동 일대 전경. 바닷가에 들어선 건물들이 소막사일 것으로 추정된다.

빈 캔이 손에 쥐어져 있는 건 집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머니처럼 나 또한 제 정신이 아닌가.

깡통을 발 앞에 내려놓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제 깡, 소리가 날 것이고 연이어 통, 하는 소리가 터질 터였다.

, 그리고 ! 그래서 아마 깡통이라 불리게 됐는지 모른다.

한데 이게 웬일이람. 발로 차자 깡, 소리는 났는데 통, 소리가 일지 않았다.

대신 어이쿠! 소리가 뒤를 이었다.

나는 재빨리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벽 쪽에는 사람은커녕 그림자조차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애꿎은 귓구멍에 손가락 저주를 가한 뒤 돌아서려 했다.

그때였다.

이런 몹쓸 놈을 봤나, 어른을 치고 도망가다니!

소리가 난 건 분명히 캔이 부딪힌 벽이었다.

그런데 벽에 얼룩 같은 것이 생기더니 점점 범위를 넓혀가는 게 아닌가.

내 입에서 저절로 어어, 소리가 터졌다.


하, 할아버진 누, 누구세요?

예끼, 요 녀석! 어른을 때렸으면 사과부터 해야지, 누구라니!

 

할아버지는 내 머리통에 알밤이라도 박을 듯이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그 바람에 난 얼떨결에 사과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화가 풀리는지 천천히 이마를 쓰다듬었다.

난 그런 할아버지만 지켜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그나저나 여기가 우암포가 맞긴 맞냐?

그때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우암포'가 아니라 '우암동'인데요.

그럼 제대로 찾아왔구먼.

할아버지, 혹시 여기 안 사세요?

옛날에 살았지.

우암동에요?

아니, 우암포에...

 

이상한 할아버지였다.

언제 사셨는데요?

백 년 전에...

 

나는 할아버지가 확실히 맛이 간 노인이라고 단정 짓고 말았다.

 

할아버지 연세는 정확히 기억하고 계신 거죠?

요 녀석, 내가 노망이라도 든 줄 아나보네.

그럼 정확히 말해보세요.

정확히 말해주마, 백하나닷!

뻥치지 마세요, 백한 살이나 되는 노인이 어떻게 살아 있어요?

여기 있지, 왜 없어?

 

아무리 평균수명이 연장되었다고 하더라도

투미한 눈이 아닌 총총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간직한 백년을 넘긴 노인이 버젓이 살아 있다니.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재차 물었을 것이다.

그럼 혹시 사는 곳이 어디세요?

여기지, 소바우 아래.

소바위는 내 평생 13년에 걸쳐 듣도 보도 못한 바위였다.


내가 묘한 표정만을 짓고 있어서일까.

 할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잠깐 눈 좀 감아봐라.

왜요?

잠깐이면 돼.

 

황당한 요구였지만 속는 셈치고 일단 눈을 감기로 했다.

내가 눈을 감자 할아버지는 '레드선' 비슷한 주문을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눈을 떠봐.

 

눈을 떴을 때, 사방은 안개에 뒤덮인 듯 흐릿했다.

할아버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쉿,

할아버지가 말했다.

 

눈앞의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듯싶더니 성당 건물이며 바닷가에 위치한 부두건물들도 사라지고

오래된 어촌 풍경이 나타났다.

 

우와, 할아버지 여기가 대체 어디에요?

여기가 어디긴 여기지.

 

발 아래엔 파란 보리밭이 펼쳐져 있고 아늑한 바닷가에는 작은 목선들이 떠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봐.

할아버지가 말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정말 쇠로 만든 소 같은 바위가 언덕배기에 놓여 있었다.

저게 소바위, 우암이란다.

 

그래서 알았다, 이곳이 왜 우암동이란 지명이 붙었는지를.

 

근데 할아버지, 저 바위는 어디 갔어요?

그야 일본 놈들이 박살내버렸지, 바다 메운다고.

바다를 메워요?

바다 쪽을 보거라.

 

그곳에는 특이하게 생긴 집이며 철선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어, 저건 또 뭐예요?

일본 놈들이 세운 검역소와 소막이란다.

소막요?

일본 놈들이 소를 자기 나라로 싣고 가기 위해 잠시 매어놓던 외양간인 셈이지.

그렇담 이곳은 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네요.

그렇지, 그런 흔적이 아직 많이 남아 있더구나.

 

그제야 세모꼴의 특이한 건물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때였다.

 

 철우야,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지금 들어가요!

대답을 하고 돌아보니 눈앞의 초가집과 소막이 사라지고 원래 풍경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새 온데간데없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그 괴상한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내가 아무래도 헛것을 본 것 같았다.

 

부러 할아버지가 있던 곳으로 나왔다.

벽 앞을 몇 번을 두리번거려도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내가 귀신을 본 게 분명해. 집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운동장으로 몸을 틀었다.

집으로 돌아가봤자 어머니의 늘어진 어깨만 지켜봐야 했으니까.

 

운동장으로 들어서니 저절로 철봉대 쪽으로 눈길이 갔다.

아버지가 철봉에 매달려 있을 것만 같았다.

언젠가 물었다.

아버지는 매달리는 것보다는 오래 달리기가 건강에 좋다는 거 모르세요?

난 이게 좋다, 오래 사는 것보단.

 

그렇게 철봉에 매달리던 아버지가 철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요즘은 왜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 하지 않으세요?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깐.

 

그땐 몰랐다.

아버지가 직장에서 짤렸다는 것을.

회사에서 휘두른 구조조정의 칼날이 아버지의 옆구리를 찔러 집구석에 주저앉힌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아버지는 다시 일어섰다.

비록 오토바이 택배였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했다.

아버지는 다시 철봉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곱게 단풍이 들자 너도나도 나들이였다.

아버지를 졸랐다.

그래? 그럼 얼른 타라.

 

아버지는 택배 일을 다른 직원에게 부탁한 뒤 나를 오토바이 뒤에 태웠다.

손님, 어디까지 배달 갈까요?

땅끝까지요!

알겠습니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달린 것,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이 될 줄이야.


벤치 앞 모래흙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귀를 기울였다.

마치 뭐뭐, 하는 게 꼭 낮게 우는 소 울음 같았다.

 

다시 한 번 내 귀를 후벼 파는 저주를 감행했다.

한데 그 소리는 멈추지 않고 들려왔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조심스레 흙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오마이갓!

거기 백하나 할아버지가 드러누워 있을 줄이야.

그러니까 뭐뭐, 소리는 할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였던 것이다.

할아버지!

이 녀석, 귀청 떨어지겠다, 소리 좀 작작 질러라.

아니 왜, 여기 누워 있어요?

내가 어디에 누웠든 뭔 상관이냐?

 

할아버지가 정신 나간 노숙자란 걸 몰라봤던 것일까.

잠시 머릿속이 뒤숭숭했다.

노숙자라도 그렇지, 어떻게 이 추운 날씨가 모래를 이불삼아 잠들 수 있담.

누워 있던 할아버지가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내 곁에 스르륵, 다가와 앉으며 물었다.

근데 넌 왜 그리 똥 씹은 표정만 하고 다니냐?

할아버지가 뭔 상관이에요!

상관 있으니깐 묻는 거지.

무슨 상관요?

네놈이 우리 집에 살고 있으니까.

할아버지 댁이라구요?

응, 옛날에.


백하나 또라이 할아버지의 옛날 타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신은 저승길을 잃고 헤매는 중이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입구를 발견했고 막상 들어가려니 망설여지더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고향이나 둘러보고 싶어 온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해 나와 할아버지는 같은 곳에 사니까 상관이 있다는 얘기였다.

거짓말치고는 썩 괜찮은 거짓말이었다.

그래서 물었을 것이다.

 

할아버진 왜 고향을 둘러보고 싶었어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들이 보고 싶었으니까.

아들요?

응, 하며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였다.

 

아들이 왜 보고 싶은 거예요?

나보다 일찍 죽었으니까.

할아버지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그리고 한동안 고개를 꺾고 있더니 사연을 길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가난했지만 행복했단다.

물때 맞춰 바다로 나가고 계절에 맞춰 소를 부려 농사를 지었어.

그런데 어느 날, 일본인들이 몰려와 소막을 세우더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상관하지 않았단다.

해를 끼치지 않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했거든.

어느 봄날이었단다, 언덕배기에서 풀을 뜯던 소가 없어졌어.

한밤중이 될 때까지 소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지.

근데 어떤 양반이 비표도 없는 소가 소막에 묶여 있더라는 거야.

우리는 놀라 기겁을 했단다.

당장 찾아가지 않으면 놈들이 배에 싣고 가버릴까 싶어서 말야.

넌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당시 소는 우리 가족에겐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단다.

게다가 한 식구이기도 했고.

그래서 예부터 소를 '생구'라고 불렀던 거지.

 

근데 세상에, 단걸음에 달려갔더니 놈들이 비표를 붙여놓고 생떼를 부리는 게 아니야.

뿔이 하트 모양으로 생긴 게 우리 소가 분명하다고,

판 적이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어.

그 바람에 허탈하게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단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이었을 거다.

아들 녀석이 소를 찾아오겠다는 거야.

너랑 똑같은 나이의 어린 녀석이 말이다.

그때 말렸어야 했는데, 어휴...

 

길게 읊조리던 할아버지가 탄식을 내몰았다.

그러더니 이내 말을 이어갔다.

 

찾아간 아들한테도 우격다짐을 하자 아들이 화가 치민 모양이야.

사고를 쳤군요.

그래, 우리 소인 걸 증명한다면서 자기 배를 찔러버렸지, 미리 준비해간 부엌칼로...

그래서 즉사했나요?

응, 여기 이 자리에서.

그럼 여기가?

할아버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소는 어떻게 됐나요?

되찾았지, 녀석의 희생 덕분에. 따지고 보면...

 

할아버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녀석이 소만 살린 게 아니라 우리 가족까지 모두 살린 셈이란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할아버지는 또한 아들 생각이 깊은지 무연한 눈길만 바다 쪽으로 보내고만 있었다.


할아버지, 제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내가 입을 열자 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부탁을 하려구?

우리 아버지 한 번만 만나게 해주세요.

그건 곤란하다.

왜요? 할아버진 그런 능력이 있잖아요.

네 마음을 안다, 하지만 그것만은 곤란하단다.

아버지한테 꼭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단 말예요.

그날 사건에 대해서 말이냐?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할아버지가 입을 연다.

그건 아비가 택할 수 있던 최선이었단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래야만 널 살릴 수 있었으니까. 난 그날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뒷자리에 탄 나는 야호 소리를 내지르며 온몸으로 속도감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중앙선을 침범한 트레일러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걸 눈치 챈 아버지는 당황한 채, 꽉 잡아!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이어진 퍽.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가 나를 살리기 위해 트레일러와 부러 정면으로 충돌했다는 거였다.

아버지의 몸이 모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그 길만이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면서.

 

괴짜 할아버지의 말이 나를 울렸다.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왜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아버지를 바보라고 했는지 후회스러웠다.

그렇게 한동안 펑펑 울다가 옆을 봤을 때,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곁에 있는 건 어머니였다.


   

어, 엄마! 저 사실은….

어머니는 울먹이는 내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알고 있어, 네 마음을.

엄마, 죄송해요!

죄송할 필요가 없다, 외려 아버지한테 고마워해야지.

 

어머니는 얼룩진 나의 눈을 부드러운 손으로 닦아주었다.

그리곤 내게 속삭였다.

우리, 곰장어 먹으러 가지 않으련?

밥맛이고 입맛이고 아무것도 없다던 어머니였기에 내 눈이 저절로 커졌다.

곰장어는 껍질을 벗겨놔도 아주 오래오래 버티잖니.

말을 마친 어머니는 내 손을 꼬옥, 움켜쥐었다.



이상섭 소설가

※ 공동기획 :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광역시 남구


# 소바위 동네 우암동

부산 남구 우암동소(牛)와 관련 깊은 동네다.

우암동(牛岩洞)은 바닷가에 소 형상의 늠름한 바위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

이 바위는 1930년대 적기만 매축(제7부두 일대)때 부서져 버렸다.

이곳에서 일본으로 소를 수출하면서 소 검역소와 2400마리까지 수용하는 소막(牛舍, 외양간) 40동이 생겼다.

당시 목부로 근무했다는 정진석(1918년 생) 옹의 증언에 따르면, 소막은 총 20개로 한 개의 막사를 2칸으로 질러 한쪽에 소 60마리씩 넣었고, 10여일에 걸쳐 검역을 하여 이상이 없으면 일본으로 실어갔다고 한다.

 

해방 후 부산에 20여만 명의 귀환동포가 몰려들고 우암동이 그들의 집단거주지가 되면서 일제가 남겨둔 소막들이 판잣집으로 바뀐다.

남구 우암2동 주민센터 인근 골목에는 푸른 페인트로 칠한 특이한 삼각형 지붕과 환기창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이것이 옛 소막의 흔적이다.

한국전쟁 때 우암동은 7만여 명의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또 한번 크게 변한다.

이때 '소막 판잣집' 동네가 확장된다.

2009년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우암2동 주민센터 앞에 '수출 소 검역소 옛터' 표지석을 세웠다.


우암동의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초량왜관 시절에는 표류하던 일본인을 수용·인도하던 '표민 수수소(漂民 授受所)'가 있었고, 1960년대에는 '뻘배'라 불리던 통선이 영도를 오갔다.

우암동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우우~'하는 소울음이 들릴 것도 같다.


박창희 선임기자 chpar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