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진을 재발견하다 신진작가 포트폴리오] ⑧ '마을버스', 사람의 자리 / 남정문
'느림보' 탐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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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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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다랗고 구불구불한 길과 구석진 골목 그리고 가파른 샛길. 마을버스는 안 다니는 곳이 없다. 게다가 어느 한 곳 그냥 지나치는 법도 없다. 어느새 솟아올랐다가 금세 허물어져 버리고 또다시 생겨나는 건물들. 마을버스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바뀌는 도시의 공간을 느리게 탐사한다.
남정문은 마을버스를 타고 사진을 찍는다. 이 작업을 시작한 것이 2003년 부산 흑백사진연구회 기획전을 준비하면서부터니까, 그는 햇수로 10년째 마을버스를 타고 있는 셈이다. 마을버스는 도시가 구획한 지점 외의 장소를 왕복한다는 점에서 일단 흥미로운 사진 소재다. 마을 구석구석을 훑는 버스처럼 그는 카메라 파인더로 마을버스 안과 밖을 들여다본다.
남정문이 마을버스를 통해 포착하는 것은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다. 마을버스는 도시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비켜나 있다. 중심에서 주변과 세부로 향하는 노선이 그렇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삶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지는 속도 역시 그러하다. 모든 것이 1년도 채 되지 않아 옛날 것, 촌스러운 것이 되어버리는 도시에서 느리다는 것은 최고의 죄악이다. 그러나 그는 버스의 움직임과 속도를 최대한 배제한 채, 사람들의 시선과 표정을 사진에 담는다. 도시의 속도와 아랑곳없이 살아가는 느리고 차분한 삶이 갖는 의미를 말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사선으로 기울어지거나 수평이 맞지 않는 버스의 창틀이 프레임과 프레임 속 프레임을 만들어낸다. 버스 창틀은 전체 프레임이 되어 창틀의 경계선과 분할되는 공간을 구성하거나 대상의 배경으로 사용된다. 남정문은 그 속에서 사람들의 자리를 확보한다. 버스 창유리에 비친 버스 내부의 사람 흔적과 버스 외부의 모습이 겹쳐져 예기치 못한 분위기가 생겨난다. 그것은 마치 익숙한 대로(大路)에서 벗어나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장소를 문득 만나게 되는 것과 같다. 남정문의 사진은 사소하고 시시한 것, 속도에 떠밀려 사라지려 하는 것을 담담하게 불러낸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카메라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즉, 카메라가 그들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고 다가간 느낌이다. 사진 속의 사람들 시선에 주목해보자. 그들은 주변보다는 자신의 세계에 몰입해있다. 물론 그들이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는 저마다의 시선을 통해,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인 사람들을 보여주는 카메라의 시선을 읽는다. 그 시선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느낌을 성급하게 말하기보다 오히려 침묵한다.
사람들은 살면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간다. 남정문은 마을버스를 통해 숨 막히는 도시 속에 숨어있는 여백을 찾아낸다. 스쳐 지나지만 어김없이 다시 돌아오고, 더불어 가지만 각기 다른 곳을 향하는 마을버스. 마을버스에 희망이 있을까?
글=이미정 사진평론가
남정문
◇약력=1953년 경남 밀양 출생. 현 건국고등학교 교사. 사진집-'남정문의 江'(2009년,디자인스튜디오 31), '낙동강'(2002년, 동천당(공저)), 개인전-'남정문의 江'(2009년, 갤러리 영광), '동굴 Fantasy'(2005년, 갤러리 영광), 단체전-'낙동강 10인 10색 사진전'(2002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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