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이야기 공작소 <12-1> [기장 해안 100리 五感 스토리]- '프롤로그'-오감도를 걷다

금산금산 2014. 3. 15. 09:13

 

이야기 공작소 <12-1> [기장 해안 100리 五感 스토리]- '프롤로그'-오감도를 걷다

'은빛 파랑' 임 부르고 '푸른 송림' 날 품으니… 굽이굽이 유혹이다

 

 

 

 

부산 기장은 옛것과 옛멋, 헌것과 새것, 날것과 익은 것들이 결합되어 새로운 멋과 흥취를 만드는 지역이다.

위풍당당한 바다, 사람을 품어주는 , 산골 색시처럼 흐르는 , 그리고 해안가의 산해진미들….

고리에서 송정까지 해안 100리 길.

구석구석 오감이요 굽이굽이 유혹이다.

그 길을 이름하여 '기장 오감도(五感道)'.

 

조선의 가인 윤선도 식으로 말하면 '내 벗이 몇인고 하니 시·청·각·후·촉 다섯 길'이라 말할 수 있다.

감성과 추억이 숨쉬는 오감도 속으로 들어가본다.

- 해안 5개·강변 2개 총 7개 코스
- '낭만에 대하여' 배경 소라다방
- 윤선도 문학 혼 어린 황학대
- 국내서 가장 오래된 남산봉수대
- 용녀와 스님의 이루지 못한 사랑
- 지역사 아로새긴 각양의 비석 등
- 이야기 옷 입혀 '감성 충전'
- 산해진미·흥취 더해져 힐링 명소

 

■ 걸으면 젊어지는 길

제주에 올레길이 있다면 부산엔 갈맷길, 기장엔 오감도(道)가 있다.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와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가 지난 연말 공동으로 설정한 오감도는

천혜의 기장 해안길에 이야기를 입혀 감성 충전, 생활 속 힐링이 가능하게끔 한 탐방로다.

 '오감도'는 물론 시대를 앞서간 천재시인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에서 따왔다.

이것이 기장에서는 다섯가지 벗, 즉 오감 스토리로 변한다.

이 구간의 부산 갈맷길과 해파랑길(강원도 고성~부산 오륙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속살을 보여준다.

기장의 재발견이다.


이번에 설정된 기장 오감도는 해안길 5개, 강변길 2개 모두 7개 코스.

해안길은 위로부터 ▶임 만나는 길(길천항~동백, 6.5㎞) ▶낭만노래길(동백~일광~기장군청, 7.8㎞) ▶윤선도 유배길(기장군청~죽성~대변, 7㎞) ▶봉대산 둘레길(기장군청~남산봉수대~죽성~대변, 10㎞) ▶용궁가는 길(대변~공수~송정, 9.5㎞)이 이어진다. 별도 코스인 두 개의 강길은 ▶장안천 원효길(장안사~은진사~월천교, 10㎞) ▶좌광천 백로길(모전교~좌천역~임랑, 11㎞)이다.

구간별 코스 명칭이 암시하듯이, 코스마다 스토리를 발굴해 옷을 입힌 것이 특징이다.

 (사)걷고싶은부산 최대현 사무처장은

"제주 올레길과 영덕 블루로드가 좋다고들 하는데, 기장 해안길에는 이들 길의 장점이 두루 녹아들어 있다"면서 "앞으로 접근성과 안내체계를 개선하고, 도보 관광 프로그램이 갖춰지면 국내외의 많은 관광객들이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기장의 이야기 창고를 열다

   
철강왕 박태준의 자취가 스민 임랑해수욕장의 세기로.

기장 오감도에는 '원님도 울고 갈' 이야기들이 즐비하다.

'임 만나는 길'의 포인트는 임랑이다.

임랑(林浪)은 아름다운 송림(松林)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波浪), 두 글자가 결합된 지명. 옛 지명은 '임을랑(林乙浪)'.

백사장의 순한 모래처럼 부드럽고 혀 끝에 운치가 돈다.

해변엔 철강왕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생가가 있다.

인근의 묘관음사는 고 성철 스님이 출가 전 두었던 딸 수경이 찾아오자 "만날 필요 없다"고 일갈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이 일화는 1949년 성철 스님이 향곡 스님과 함께 이곳에서 수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수경은 교사생활을 하다 이후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는데, 법명을 불필(不必)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불도를 얻는데 필요없는 딸이라는 뜻이다.

일광면 문동하납선창도 얘깃거리다.

하납은 한양에 조세를 올려보내지 않고 대신에 동래부에 내려보냈다는 의미.

조선 후기 조선일본 사이의 쌀 교역과 관련이 있다.

조일 간 공무역을 통해 수출된 쌀이 공작미(工作米)다.

이 쌀을 싣고 부산으로 가던 배가 죽성리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기장 주민들이 겪은 소동은

두호마을 어사암 이야기로 이어진다.

낭만노래길로 접어들면,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의 무대인 이천과 학리를 만나고, 가객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의 배경이 되었다는 삼성리 소라다방을 지난다.

소라다방은 '그야말로 옛날식 분위기'를 간직한 시골 다방.

최백호는 일광초등학교 34회 졸업생으로, 입대 전까지 일광 등지에서 기타를 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윤선도 유배길은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 3대 가인으로 불리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자취와 문학혼을 따라걷는 길이다.

고산은 1616년 당시 국사를 전횡하던 집권세력의 죄상을 밝히는 병진소를 올린 것이 화가 되어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어 1년뒤 기장으로 이배되었다.

죽성리의 황학대 일대에서 그는 7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우후요' '아우를 보내며' 등 주옥같은 시가를 남겼다. 윤선도는 마을 뒤 남산봉수대가 있는 봉대산에 올라 약초를 캐어 병마에 시달리는 죽성 사람들을

보살피곤 했는데,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서울에서 온 의원님'이라 불렀다는 말도 전해진다.

봉대산 둘레길 꼭대기의 남산봉수대는 고려시대에 초축된 국내 최고(最古)의 봉수대다.

조선시대 동남부 변경의 봉수는 가덕도 또는 석성→ 황령산→ 간비오→ 남산→ 임랑포를 거쳐

북상해 서울 남산까지 전해졌다.

용궁가는 길로 들어가면 적선대죽도, 오랑대, 해동용궁사, 시랑대 등 명소들을 지난다.

시랑대는 1733년 이조참의였던 권적이 좌천되어 기장현감으로 재직하던 중 이곳 바위에 시랑대(侍郞臺)

글과 시를 새긴 이후 시랑대로 불리고 있다.

이곳엔 용왕의 딸인 용녀와 스님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기장의 남단 공수마을짚불꼼장어로 유명한 곳.

짚불로 구워내는 독특한 조리법은 미식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 강길 따라 바다로

   
이주촌인 기장 효암리 풍경.

강 길인 장안천 원효길과 좌광천 백로길에도 조붓조붓 이야기가 흐른다. 장안천을 따라 기룡리 팽나무, 불광산 금수동계곡, 장안사를 구경하고, 길가에 듬성듬성 늘어서 있는 비석군을 탐방할 수 있다.

이곳에는 장안읍 월내리 보수상비, 남방소보수보 기념비, 장안면장 정인주 기념비, 신기솔배기 비석군, 장안사 부도탑비

각양의 비석들이 세워져 있어 지역사 탐방코스로 제격이다.

좌광천 백로길은 신개발지인 정관을 지나 자연미가 살아있는

옛 강길을 거쳐 좌천장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1919년 4월9일 좌천장날에 맞춰 일어난 만세운동은 기장의 살아있는 정신이요 의로운 행동이다.

일제의 발포를 뚫고 만세를 부른 그날의 함성을 되살려 장안읍 좌천리 좌천시장~좌천 주재소 터~ 옛 정관초등학교 3.1운동 의거비까지 3.1운동의 발자취를 따라 테마걷기를 하는 것도 좋겠다.

길에서 발견하는 기장 정신은 오감도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 옥녀가 베틀을 차려 비단을 짠 곳, 동방 팔로 제일의 땅 '기장'

■ 다시 부르는 차성가

- 지역 명소·마을 140여 곳 노래

   
기장군청 입구에 세워진 차성가비. 베짜는 청동여인이 말을 걸어올 듯하다.

'아! 동방 팔로에, 명산대천 허다하다 태백산 낙동강이, 우리 영남 제일이라 지령(地靈)이 이러하니, 인걸(人傑)이 없을 손가….'(기장 '차성가' 중)

차성가(車城歌)는 기장의 명소·마을 등 140여 곳의 아름다움을 풍수지리에 맞춰 호방하게 노래한 기행가사다.

창작 연대는 1800년대 중반, 작자는 미상이다.

차성은 고려시대부터 불린 기장의 옛 이름.

차성, 즉 수레(車)성(城)은 나라의 해안 변경 군사상의 요충지를

 암시한다.

기장군청 광장에 '차성가' 노래비가 우뚝 서 있다.

노래비 앞쪽에 베짜는 청동여인상이 조각돼 있다.

차성가에 나오는 '옥녀직금(玉女織錦)'의 전설을 형상화한 것이다.

옥황상제의 옥녀가 하강하여 '베틀(機)'을 '차려서(張)' 물레질을 하며 비단을 짠 곳이라 한다.

'베짜는 청동여인'은 기장(機張)을 일컬음이니 차성가의 상징이 실로 의미심장하다.

일설엔 현 기장읍의 일광산을 배산으로 하여 '베틀(機)을 차린(張)' 형국이라서 기장이라 이름했다는 말도 있다.


기장향토문화연구회 공태도(80) 명예회장은

"기장은 예로부터 품질 좋은 베를 짜서 신라 조정(경주)에 공물을 올렸다고 한다"면서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철마 정관 일광 등지의 촌노들 중에는 '베틀가'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많다"

설명했다.

기장은 삼국시대때 갑화양곡(甲火良谷)이라 불렸으며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 이래 기장이란 이름을 얻었다. 갑화양곡은 우리말을 한자음으로 적은 이두식 표기로 '첫마을' '첫째 마을'이란 의미.

즉, 바다에서 육지로 들어올 때 처음으로 닿는 지역이란 정감어린 표현이다.

그러니 기장은 '이 나라 변경의 요충지로, 베짜는 여인들이 살아온 터전'인 것이다.

기장 스토리텔링의 씨줄과 날줄도 이렇게 엮어야 할 것 같다.


※ 공동기획 :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