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 재생…[해외서 배운다] <1>
파리 '비에브르'천의 신중한 선택
청계천의 모델된 파리 소하천, 문제점 살펴 차근차근 자연형 복원
파리 시내를 흐르는 쌩 마르텡 운하. 수문 9개로 수위를 조절해 배를 띄운다. 부산 동천에도 이같은 운하를 검토할만 하다. 박창희 선임기자 |
오염과 복개 하천의 대명사처럼 돼 있는 [동천].
부산 도심의 얼굴인 동천은 과연 복원, 재생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안고 본지는 프랑스 파리의 상징인 세느강과 비에브르천,
일본 나고야의 호리천과 오사카의 도톤보리천, 사카이의 도이천 등을
탐사했다.
지난해 본지가 불을 지핀 동천 재생의 희망 물줄기를 찾아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취재는 지난해 12월 4~13일 이뤄졌고,
부산발전연구원 양진우 황영순 박사, 부산시 하천정책과 김춘근 계장, 옥창민 주무관이 동행했다.
현지 탐사 내용을 4차례 연재한다.
- 총 연장 36㎞, 세느강에 합류
- 환경오염 심화로 1875~1935년 복개
- 지속적 시민운동, 복원 공감대 넓혀
- 2000년 5월 1차 복원, 축제 열어 사업 촉진
- 10여 년 고심 끝 상류 물길만 되찾아
- 무조건 모방보다 취사 선택 지혜 필요
■ 문화가 흐르던 소하천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가 '물의 도시'라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안다.
도심 가운데 천혜의 세느강을 끼고 있는 파리시는 일찍부터 치수(治水)·이수(利水)에 눈을 떴고,
시내 곳곳에 인공 운하를 뚫어 배를 띄웠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하천오염은 피할 길이 없었고, 일부 지류는 복개되는 운명을 맞았다.
취재진이 찾아간 파리 인근 비에브르(Bievre) 천도 그 중 하나였다.
비에브르천은 파리 남서부 이블린(Yvelines) 기양꾸르(Guyancont)에서 발원해
파리 시내의 세느강으로 들어가는 소하천이다.
총 연장은 36㎞, 유역에 약 50만 명이 산다.
현재 하천의 상류 20㎞ 구간은 앙또니(Antony)까지 미복개 자연상태지만,
하류 11㎞ 구간은 복개돼 있고 파리 시내 5㎞ 구간은 매립되어 존재가 지워진 상태다.
비에브르천은 원래 역사와 문화가 흐르던 강이었다.
일찍이 오베르깡프와 고블랭 같은 세계적인 직물 제조 및 염색 산업가를 탄생시켰고,
루이 14세의 사냥터로도 이용됐다.
프랑스의 저명 예술가, 문인, 정치가들의 거처 상당수도 비에브르천을 끼고 있었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넘쳐 나는 공장 쓰레기와 마구 흘러든 공장 오폐수로
비에브르천은 서서히 죽음을 향해 달려갔다.
악취와 오염을 참지 못한 유역 주민들의 잇따른 청원으로 1875년에 하천 복개 결정이 내려졌고,
파리지역에는 1877년부터 구간별로 복개 공사가 시작되어 1935년 켈레르만 공원 공사를 끝으로
파리 시내 5km 구간이 완전 복개되었다.
■ 비에브르 르네상스 운동
복개천에서 자연하천으로 되살아난 프랑스 파리 인근의 비에브르천. 전체 36㎞ 중 상류 20㎞는 자연하천으로 거듭났지만(사진 위), 하류부는 여전히 복개(아래) 상태다. 박창희 선임기자 |
환경오염 때문에 복개된 비에브르천은
약 1세기만에 다시 한번 세인의 주목을 받는다.
환경단체들과 언론인 등 뜻있는 시민들이
'기억 속 비에브로' 문제를 끄집어냈고, 시도 의원들이 가세하여
지방자치단체에 압력을 가했다.
뜻이 모이자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2000년 5월 드디어 마시(Massy)와 브리에르 르 뷔송(Verrieres-le-Buisson) 간 약 1100m가 햇빛을 보게 되었고,
이어 2005년에는 프레쓴(Fresnes) 지역의 195m 구간이 오픈되었다.
프레쓴 지역에서 만난 주민 앙리 프랑수아(78) 씨는
"몇년 전만 해도 어디에 강이 있는지 어떻게 흐르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보다시피 물길과 함께 산책로가 조성됐다.
이건 지역 변화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복원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파리 시민들은 시민운동과 청원, 전시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이러한 요구에 따라 당국도 대주민 사전 협의회를 열고
여론조사, 공청회 등을 통해 공감대를 넓혀갔다.
뜻하지 않은 법적 문제로 공사가 중단된 때도 있었다.
1차 복원 사업 성공 후 지역 의회와 주민들은 2001~2002년 두 차례
'오! 물, 삶, 그리고 놀라움(Oh! L'eau, la vie, l'etonnement)'이란 주제로 지역축제를 열기도 했다.
1차 1100m 구간의 복원 비용은 약 90만 유로(약 13억원), 뒤이어 진행된 프레쓴 지역의 195m 복원 공사비는
57만 유로(8억3000만원)라고 한다.
저비용 복원 원칙이 적용된 결과였다.
복원 사업은 가능한 원상태로의 회복을 지향했으며, 복원이 불가능한 곳에는
별도의 물길을 내고 산책로를 조성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 청계천의 반면 교사
비에브르천 르네상스는 현재진행형이다.
중·상류 일부 구간의 복개를 걷어내 자연형으로 되살리긴 했지만, 파리 시내 구간은 당초 계획과 달리
아직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복개 오픈에 따른 사회적·환경적 문제를 푸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진도 비에브르천의 세느강 복개 부분 합류점을 찾다가 포기해야 했다.
파리시청 하천담당 샤비에르 쟈크 씨는
"파리 구간 복원은 복개 상태, 하수 정화, 공사비, 주민 협의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다"라며 "그렇다고 복원의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고 했다.
서울 청계천 물길 복원 과정에서 파리 비에브르천을 참고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지난 2002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어
2003년 7월부터 2년2개월만에 완료한 대역사(사업비 3800억 원)였다.
그 모델이 된 비에브르천은 10여 년 고심 끝에 상류부 일부 물길 만 열어 청계천 복원과 뚜렷이 비교된다.
청계천 복원에 대한 파리시청의 반응은 대체로 "놀랍고 또한 무섭다"는 것이었다.
블도저 같은 강한 추진력은 놀랍지만, 인공형 복원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중·상류 구간이 대부분 덮혀 있는 부산 동천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선행 사례를 무조건 벤치마킹할 게 아니라 다소 늦더라도 미래를 보고 취사선택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 쌩 마르텡 운하
- 유람선 띄운 도시형 운하의 모범
- 수문 9개 달아 수위 조절
유럽의 도시들은 일찍이 도심에 운하를 뚫었다.
운하는 수운 교통을 트고 친수공간을 제공하는데 효과적이다.
파리 세느강 북서쪽에 위치한 쌩 마르텡(Canel Saint Martin) 운하는
나폴레옹 1세에 의해 1769~1825년 사이에 건설됐으며 총 길이는 4.5km다.
원래는 물건을 나르는 단거리 교통수단 혹은 수송로로 사용되었으나
1960년대부터 고속도로 개통 등으로 수송로 기능은 사실상 사라졌다.
지금은 레저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운하 주변에 주택, 공장, 카페 등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쇼핑과 산책로로도 인기가 높다.
매월 첫째 일요일은 운하 양 옆길이 차 없는 도로로 운영되고 있다.
이 운하에는 2개의 다리, 6개의 구름다리, 2개의 움직이는 다리가 있다.
바스티유 광장에서 리버블릭 광장까지 2㎞는 지하구간으로 연결된다.
운하의 수위 차가 20m 이상으로 엄청나서 9개의 수문을 달아 수위 조절을 통해 배를 통과시킨다.
수문 개폐는 매우 번거러운 일이지만 노림수가 있다.
유람선을 띄워 수문 개폐 장면과 수위 조절 과정 자체를 즐기게 하여 관광수입을 얻는 것이다.
20명이 탈 수 있는 유람선은 어른 16유로(2만3000원)이며 한번에 두시간 반 정도 운항한다.
이같은 도심형 운하 관리는 부산 동천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현장을 함께 돌아본 부산발전연구원 양진우 박사는 "동천은 바닷물의 영향을 받는 감조하천이므로 하구에 수문을 설치해 유람선을 띄울 수 있을 것"이라며, "중상류의 비복개 구간에도 수량만 확보되면 유람선을 띄워 관광 혁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 되었습니다.
파리=박창희 선임기자 chpark@kookje.co.kr
'환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천 재생…[해외서 배운다] <3> 나고야 '호리천'의 재생 (0) | 2014.09.06 |
---|---|
동천 재생…[해외서 배운다] <2> '세느 강변길 되찾기' 프로젝트 (0) | 2014.08.31 |
동천 재생 4.0 [부산의 미래를 흐르게 하자] <4-16> 동천의 기억- '결산 좌담회' (0) | 2014.08.16 |
동천 재생 4.0 [부산의 미래를 흐르게 하자] <4-15> 동천의 기억- '기억의 비판적' 재구성 (0) | 2014.08.09 |
동천 재생 4.0 [부산의 미래를 흐르게 하자] <4-14> 동천의 기억- '자연형 복원' 머나먼 길 (0) | 2014.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