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산기업 스토리] '태화쇼핑'

금산금산 2015. 4. 11. 11:28

'태화쇼핑'

 

 

 

 

 

태화쇼핑은 현 쥬디스 태화의 전신이다.

 1982년 창업주 김갑진 회장이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에 세운 향토 최대 백화점이었다.

1945년 거제리에서 선일직물사를 창업해 크게 성공을 거둔 김 회장이 개관한

태화극장 자리에서 문을 연 토착 백화점이었다.

김 회장 일가가 1970년대 서울 마포극장을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가장 관객이 많다는 태화극장을 접고

백화점 사업에 나설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장남 김정태 회장이 1970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부터였다. 

 


재벌 그룹에 맞섰던 향토 백화점
골리앗 위세에 IMF겹쳐 파산 불운



미국 위스콘신 대학을 졸업한 장남 김 회장은

1974년 태화쇼핑 건너편 옛 천우장 인근 부지에 태화슈퍼마켓을 열면서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8년 만인 1982년 극장사업이 사양세에 접어든 것을 계기로 '유통업계의 꽃'이라고 불리는

백화점 사업에 투신한 것이다.


그렇게 출범한 태화쇼핑은 개장 첫날 매출 5천200만 원을 기록하고 6개월 만에 고객 3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연속 대박을 터뜨렸다.

1995년에는 전국 백화점 중 '객단가 최고액'을 기록했을 정도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런 태화쇼핑에 검은 그림자가 몰려오기 시작한 것은

1993년 롯데와 현대백화점이 부산 진출을 시도하면서부터였다.

막강한 자본력과 최첨단 영업 전략을 앞세운 재벌 그룹 소속 백화점들에 정면 대결을 선언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으로 돌아온 것이다.

 

 

기존 본관 건물 인근에 초현대식 신관 건물을 신축한 데 이어 울산 울주군에 대형 물류 창고를 짓는 등

과감하게 투자를 것이 무리수였다.

 여기에다 넥센과 공동출자로 삼성자동차 부품업체인 태흥산업(현 넥센테크)을 설립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추진한 것이 자금 압박을 가져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사태까지 터진 1997년 태화쇼핑은 부도 처리되는 운명을 맞았고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2세 경영인 김 회장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후 태화쇼핑은 2001년 8월 파산절차를 거쳐 텐커뮤니티로 넘어가는 등 수차례 파란을 거듭하면서

점차 부산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골리앗처럼 거대한 재벌사들의 위세에 다윗이 되고자 했던 향토 백화점이 있었다는 전설만 남긴 채...

 

정순형 논설위원

junsh@busan.com

 
정순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