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부산 매력 공간] '사각 프레임'에 풍경을 담다

금산금산 2015. 4. 15. 15:15

'사각 프레임'에 풍경을 담다

 

 

 

 

네모난 창으로 꿈꾸던 세상이 들어왔다

 

 

 

'크리에이티브센터'. 사진= PDM 파트너스 제공

 

 

 

 

창문에 충격을 받은 두 건물이 있다.

하나는 가로로 길게 찢어진 창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각으로 넓게 뚫린 창이었다.

충격이라 함은 그 사각의 창 프레임에 풍경이 내걸려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보는 바깥 장면이 아니라, 화폭이나 액자에 그려진

멋진 작품처럼 경치가 내부로 빨려 들어온다.

이를 두고 경치를 빌려왔다고 하여 '차경(借景)'이라 하기도 한다.

자연과의 조우를 중시했던 선조들의 한옥에서나 봤던

그 창을 현대건축물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배경이던 풍경에 눈길을 빼앗기는 것은 시선의 역전 현상이다.

널브러져 있어 흔하디흔한 것으로 여기던 것이 새롭게 보이고, 거기서

의미를 찾으려 더듬기 시작한다.

모든 존재자의 실체가 존재 그 자체만이 아니라, 존재자를 둘러싼

숱한 배경과의 관계에서 파악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배경이 가진 생동하는 가치를 언어로 표현한 것이 시요, 가락으로

표현한 것이 노래요, 물감이나 특정 재료로 표현한 것이 예술 작품이다. 건축 어휘로써 표현하기 가장 용이한 것이 바로 창문이다.

 


■  한옥의 공간 배치까지 닮은 '크리에이티브센터'

3층 회의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으면 영화 스크린만큼

큰 대형 사각 창 너머로 수영강과 센텀시티의 다양한 빌딩이

한눈에 꽂힌다.

두 개 층 높이의 창, 그러니까 대략 높이가 6m, 너비가 7m가량 되는 투명 유리창이

중간 프레임 하나 없이 말끔히 부착되어 있다.

넓게 펼쳐진 하늘 아래 잔물결 일렁이며 흐르는 강은 영화의전당, 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해 수직의 빌딩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날이 어두워져 강에 반영된 불빛 야경은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이다. 



그런데 이 창은 '크리에이티브센터'의 매력 중 일부일 뿐이다.

흰색의 벽과 육면체 덩어리 형태로 되어 있는 외관에서는 당장 차갑고 이지적인 모더니티의 맥락이 읽힌다.

하지만 에둘러 오르게 한 진입 경사로를 따라 대형 목재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예상치도 못한 중정을 만난다.

파릇파릇한 잔디마당을 감싸 안으면서 건물은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이쪽 공간에서 저쪽 공간을

서로 건네 볼 수 있도록 내벽 면을 유리로 마감해 놓았다.

은은한 빛이 떨어지는 계단을 통해 층과 층을 오르고, 실과 실을

이동하면서 공간이 나뉘고 이어짐이 반복되고 외부로 향한

시야가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한다.

전통 한옥 공간의 내밀함이 느껴진다. 차단과 개방의 적절한 배치로

내부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될 즈음, 두 개 층이 뻥 뚫린 회의실의

대형 창 앞에서 그만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감탄을 연발하며 따라 오른 옥상 정원에서 대면한 하늘은 전혀

또 다른 사색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인테리어와 건축설계 디자인사무소인 이 건물의 주인장은 바로

옆 부지에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유명하기로는 이 식당(엘 올리브)이 더하다.

박공의 지붕 아래 목자재, 벽돌 소재와 더불어 벽난로, 소품 등으로

친근함을 덧입힌 디자이너의 세심한 손길에 예약 없이는 자리 잡기 힘든 명소가 되어 있다.

주변 일대를 독특한 문화구역으로 바꾸어가겠다는 포부로 재밌는 공간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지켜볼 일이다.

 


◇ 크리에이티브센터

위치 : 부산 수영구 망미동

규모 : 지하1층, 지상4층, 연면적 1750㎡

시설 : 디자인사무실, 아츠홀, 커뮤니티홀

건축가 : 고성호(PDM 파트너스) 정재헌(경희대 건축학과)

문의 : 051-750-2100

www.pdm.co.kr


'쎄덱 부산전시장'


 

 

■  소통 외 모든 군더더기를 걷어낸 '쎄덱 부산전시장'

지인과의 식사 약속으로 처음 방문한 5층 레스토랑의 창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테이블에 앉았을 때 보이는 눈높이 위치에 벽면 전체를 가로로 길게 찢어 창을 만들었다.

유선형으로 휘어진 해운대해수욕장 해변과 불 밝혀진 건물들이 이루는 장관은 그동안 전혀 경험치 못했던

뷰(view)였다.

지금은 레스토랑이 철수하고 없어지긴 했지만, 공간이 주는 기억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 '쎄덱 부산전시장'이 된 이 건물은 원래 '코리아아트센터'라고 하는 갤러리로 만들어졌다.

가나아트센터와 인천국제공항 등을 디자인한 세계적인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셀 빌모트(Jean Michel Willmotte)의

작품으로 '도시 풍경의 내부화'라는 그의 평상시 개념이 잘 반영되어 있다.

바다와 산이 만나는 경계 지점에 땅을 벌여 인공의 건물 박스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는 순수한 콘크리트 물성 그대로인 벽면에 가로로 긴 창을 내어서, 대면하고 있는 바다와 도시의 원경을

내다보도록 한 것이다.

외벽에 더 이상의 장식은 없다.

그것만으로 장소에 대한 건축적 소임을 다했노라고 말하는 듯하다.

넓은 입구 홀을 거쳐 1층의 전시장(쎄덱홈)에 들어서면 각종 패브릭과

식기류 등 홈데코 제품들이 즐비하다.

많은 제품으로 인해 공간이 좀 묻혀버린 경향이 있긴 하지만, 4층

천장까지 한 방에 뚫어 수직 상승감을 주는 중앙부의 공간 밀도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상부로부터 자연채광이 은은히 떨어지는 계단실은 아니나 다를까,

최상층 넓은 광창을 통해 빛이 흘러내렸다.

상품성을 뽐내는 제품들과 뒤엉켜 있는 각 층 전시장에서 유일한 포인트

역할은 역시 차경 장치인 긴 창이다.

창으로 인해 이 집 제품들은 더욱 고급스러워 보인다.



갖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각종 가구, 소품들을 뒤로하고 옥상 테라스에 올랐다.

유리 난간으로 둘러쳐진 옥상은 그야말로 높은 하늘과 먼바다의 푸르름 앞에 발가벗겨져 있었다.

내려다보이는 해변과 도시의 모습도 내로라하는 세계의 어떤 장관에 뒤지지 않는다.

이런 천혜의 땅 위에 과연 그 어떤 장식이나 기교가 필요할까.

그냥 풍경을 담아낼 가장 간단한 프레임과 그릇만으로도 충분하다 싶다.

 

 



■  비워냄으로 더 풍성해지는

모든 명품의 조건은 비워냄에 있다.

시장의 물건에야 알록달록 색깔과 주렁주렁 장식이 별 연관성 없이 자극을 위한 수단으로 적용되어 있다지만,

명품으로 대접받는 제품들은 결단코 그렇지 않다. 작품성을 높게 인정받는 모든 예술품을 비롯한

창작의 결과물 역시 매한가지다.

쓸데없는 것을 걷어내고, 걷어내고, 걷어내어서 남은 순수 본질을 정립하여 보여줄 때 그것은 명품이요,

작품이 되는 것이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사각 프레임의 창 하나에도 정성을 듬뿍 쏟는다면 명품 풍경이 담긴다.

나아가 틀을 이루는 벽면도 군더더기 없이 담박한 질감만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그 내부 공간은

백자나 막사발의 깊이감 같은 풍성함이 더해진다.

 

나뭇가지와 잎의 빈틈 사이사이로 바람이 지나고, 빛이 머물고, 새들의 지저귐이 진동하듯,

비워냄의 공간에서 생명이 비로소 숨을 쉰다. 

 

 



 ◇ 쎄덱 부산전시장

위치 : 부산 해운대구 중동

규모 :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800평 가량

시설 : 전층 가구전시공간

건축가 : 장 미셀 빌모트(Wilmotte &Associates)

문의 : 051-747-6701

www.sedec.kr


동명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