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부산 매력 공간] 원도심 '오색길'에서 도시를 매만지다

금산금산 2015. 4. 22. 21:30

원도심 오색길에서 도시를 매만지다

 

 

 

 

'진짜 부산'으로 들어가는 5개의 관문…시간을 거슬러 걷다

 

 

 

광복동 패션거리 크리스마스 트리 축제

 

 

 

 

부산 사람은 '냄비 기질'이 강하다.

그 성향은 야구장에서 가장 확연하다.

일사불란한 응원문화는 야구 경기보다 더 흥미롭다.

파도타기 응원은 열 바퀴를 돌아도 끝날 생각을 안 한다.

군중이 되어 누구 하나 빠짐없이 소리를 질러댄다.

말도 길게 하길 귀찮아한다.

그냥 "마!" 한 마디면 충분한 의미 전달을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6회가 끝나면 오렌지색 봉투(쓰레기 배출용)를 각양각색으로 머리에 뒤집어쓴다.

이런 분들이 최근 몇 년간 팀성적이 좋지 않고, 구단의 운영방식에 마음을 잃자 경기장을 외면하고 있다.


좀 괜찮다 싶으면 전폭적 반응을 보이지만, 아닌 것에 대해서는 뒤끝 없이 돌아선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 요인에도 이런 부산 사람의 기질이 기실 큰 부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원도심의 부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후락 일변도였던 원도심에 몇몇 이슈거리가 생기자, 다시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영도대교의 도개, 부평깡통야시장, 크리스마스트리축제 등이 연속해 이슈를 만들어 내면서

이 지역 일대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매일 저녁과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

야구장을 떠난 사람들이 여기로 다 모이는 것 같다.

 

 

 



■  자갈치시장 건너 비프거리로

이 지역의 가장 대표적이고 유명한 곳은 아무래도 '자갈치시장'이다.

외지에서 찾은 누구나 부산하면 가장 먼저 찾는 장소임에 틀림없다.

확고한 지명도를 가진 원도심의 대표 주자이다.

복잡하고도 질펀한 길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붉은색 다라이의 각종 해산물들은 분명 일상과는 다른 이색적 풍경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비릿한 바다냄새와 부산아지매들의 걸쭉한

호객소리에 흥건히 취한다.


여기서는 회를 시켜 먹는 것도, 생선구이 집에서 고기를 발라먹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된다.

자갈치현대화빌딩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다에 떠 있는 작은 광장을 만난다.

사람보다 갈매기가 더 많은 이곳에서는 가끔 난장이 열리기도 한다.

좀 더 가다 보면 영화세트장 같은 독특한 분위기의 상가 골목이 나온다.

실제로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 유오성이 친구들과 책가방을 들고 뛰었던 바로 그 골목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을 법한 적산가옥(敵産家屋)이 즐비한 이곳은 현재 '건어물도매시장'이며, 어망과 어구 등의 수산 관련 제품들을 판다.

자갈치 시장 공판장

이 시장의 역사는 1934년 개통된 영도다리와 함께하고 있으니

80년의 세월을 버티고 있는 셈이다.

젊음을 되찾은 영도대교와 더불어 이 구역에 대한

지혜로운 재정비(상업과 관광이 공존할 수 있는)가 필요해 보인다.

시간을 잘 맞추어 하루에 딱 한 번(낮 12시) 도개하는

영도대교를 보는 것도 좋은 구경거리이다. 그

런데 왠지 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자갈치시장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부산국제영화제의 태동지인 '비프(BIFF)거리'다.

지금은 영화의전당의 건립으로 영화제 행사의 중심축이 해운대권으로 이동하긴 하였으나, 초기 몇 년 동안에는 이 거리에 구름 인파가 몰려들었다.

문화 불모지의 땅에 국제영화제라는 문화행사가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비프거리를 가득 메웠던

시민의 호응 때문이었다.

달랑 표지석과 핸드 프린팅밖에 남은 건 없다지만, 장소의 정신만은 기억되어야 한다.

 

 

영화제가 없는 평상시의 광장에는 노점상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해 안 갈 정도로 긴 줄을 기다려서 사먹는 씨앗호떡이 그 중심이다.

그 외에도 떡오뎅, 비빔당면, 팥빙수, 단팥죽, 완당 등 셀 수 없는 주전부리로 연인과 식도락가들을 유혹한다.

방송에 여러 번 노출되면서 전국에 입소문이 자자하다. 

 

 

 



■  패션거리를 지나 책방골목까지

남포동 비프 거리

광복로 패션거리에는 지금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한창이다.

겨울 이맘 때면 썰렁하던 이 구역이 몇 해 전 거리환경이 개선되고,

축제가 유치되면서부터 완연히 되살아났다.

보행자 중심의 거리를 조성하기 위해 도로는 유선형으로 만들어져

차량의 속도를 떨어뜨렸고, 곳곳에 벤치와 조각상을 설치해 두었다.

여기에 성탄절을 전후해 해마다 다양한 모양의 불빛 조형물들이

거리를 화사하게 밝혀준다.


연인이나 가족 단위 관광객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사진을 찍으며, 밝은 웃음이 피어난다.

20m 높이의 대형 트리를 중심으로 길을 따라 갖가지 모양의 장식물이 있고, 인공눈까지 뿌려주니

낭만적 데이트 코스로 제격이다.

유동인구가 많아지니 자연스레 상권이 살아났고, 지역 상인들은 이 행사를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윈윈 효과를 만들고 있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

족발골목까지 연이어진 불빛 조형물을 계속 따라 가다 보면, 부산이 낳은

최근의 가장 핫한 명소인 '부평깡통야시장'으로 연결된다.

1910년 상설로 영업을 시작한 국내 최초의 '공설 1호 시장'인 이 시장은

근현대 부산의 터줏대감이다.

여기에 한 평 남짓한 판매대를 길 한가운데 늘여 놓고 야시장의 불을

밝히자, 기다렸다는 듯 전국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베트남 치킨쌀국수, 일본 니꾸마끼, 중국식 냉면구이, 인도네시아

미고렝(볶음국수), 베트남 짜요(튀김만두), 필리핀의 카모테큐(고구마튀김) 등등 이국적 음식이 즐비한 이곳에 외국인 관광객도 줄을 잇고 있다.


마지막 코스로는 부평시장에서 다시 길을 건너서 만나게 되는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대단히 잘 꾸며진 골목은 아니지만, 전국 유일하게 남은 헌책방 밀집거리라는 문화적 상징성이 크다.

단순한 헌책 상가가 아니라, 지역 정신문화의 흐름을 간직한 문화사적 가치가 있다고나 할까. 좁은 폭의 골목을 걷다보면 시대를 훌쩍 넘어 살아있는 빛바랜 책들과 촌스러움을 자랑하는 LP판이 정겹다.

뒤적뒤적 과거로의 추억 여행을 하던 중 때론 정말 소중한 자료를 득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어린이도서관이 개관하고, 아기자기한 카페들도 생겼다.





■ 투박하고 날것 그대로의 길, 오색길

부평깡통야시장

자갈치시장, 비프거리, 광복로 패션거리(트리축제), 부평깡통시장 야시장, 보수동 책방골목, 다섯 가지의 색다른 이 길을 '오색길'이라 칭하면 어떨까. 걸어서 투어 할 수 있는 코스이며, 투박하지만 도시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다양하게 담고 있으니 잘만 엮으면 지금보다 훨씬 재미난

부산만의 관광 콘텐츠가 되지 않을까 싶다.

먹거리 볼거리가 왁자지껄하면서도, 부산의 근대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이 거리들을 걷다보면 부산의 결을, 부산사람들의 기질을 자연스레

접하게 될 것이다.


"결을 거슬러 도시를 솔질하기."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한 말이다.

반듯하고 정돈 잘 된 것만이 도시의 전부는 아니다.

거슬러 솔질하여 보이는 이면의 감추어진 것들, 파묻혀 잊힌 것들

역시 도시의 또다른 진면목이다.

이것을 찾아내고 되살려 획일성을 탈피하고 다양성이 살아 넘치는

도시야말로 건강한 도시이다.

길 위에서도 부산의 결을 더듬고 매만져 보자.


동명대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