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산기업 스토리] '건설 화학'

금산금산 2015. 5. 9. 11:33

건설화학

 

 

 

 

 

건설화학은 8·15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 창업주 황학구 회장이 남선도료상회라는

구멍가게 수준의 페인트 가게로 시작한 회사다.

'제비표페인트'라는 상표로 더 잘 알려진 건설화학은 1952년 5월 부산 동구 범일동에서

일본인이 두고 간 적산 가옥을 사들인 부지에 공장을 차리면서 본격적으로 제조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건설화학의 첫 번째 히트 상품은 '닭표성냥'이었다.

부싯돌로 땔감에 불을 붙이던 시절에 출시한 가정용 성냥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건설화학은 단숨에 우량기업 반열에 올랐다.

전력 사정이 어려워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곤 호롱불을 켜던 당시 시장수요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제비표페인트로 더 알려진 알짜기업
구멍가게로 출발한 강남그룹 모태

 

 

 


이후 건설화학은 6·25 전쟁이 끝나고 복구 사업이 시작되면서 주력 상품인 페인트를 중심으로

성장의 발판을 다져 나갔다.

그 여세를 몰아 선박 및 자동차용 특수 페인트를 개발하는 등 R&D 분야에 집중 투자한 것이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과 조화를 이루면서 사세가 수직 상승하는 계기를 맞았다.

같은 시기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된 새마을운동이 주택개량사업으로 이어지면서

건축용 페인트가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행운도 누렸다.

 

 



 

 

그 무렵 비키니를 입은 미모의 여성을 앞세워 "잘 벗겨지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다소 선정적인 광고문구가 '제비표페인트'라는 상표 이미지와 더불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건설화학은 준재벌급 회사로 위상을 굳혀 나갔다.

 

이후 1980~90년대에 추진한 사업다각화 전략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문화연필, 강남건영(건설), 케이피아이(유리 섬유직물), 강남화성(페놀수지), 강남(조선)

중화학공업 전반에 걸쳐 10개 계열사를 거느린 강남그룹으로 우뚝 서는 쾌거를 이뤘다.


2000년대에 들어선 황 회장의 둘째 아들 성호 씨를 중심으로 2세 경영체제가 출범하면서

케이블 TV에서 건강보조식품에 이르기까지 투자를 확대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모태 기업인 건설화학은 부산 본사를 고집하면서 서울·대전·광주 등

전국 10개 지역 사업장들을 컨트롤하는 향토기업으로 자부심을 키워 가고 있다.

 

 

 

논설위원

정순형 기자

 jun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