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형' 박태민 대표
토요타·GM도 기술력 인정·납품 요청…"나는 아직 배 고프다"
박태민 신한금형 대표가 부산 강서구 지사과학단지에 있는 생산공장에서 뿌리산업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업체간 협력과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그에게서 미래 먹거리 창출 의지가 뿜어져 나온다. 강덕철 선임기자 kangdc@ |
- 뿌리산업인 금형제작 38년 외길
- 6000곳 넘는 일본기업과 견줘도
- 정밀기술 수준 '톱10 반열' 평가
- 글로벌기업 맞춤형 매뉴얼 개발
- 대기업들도 벤치마킹 일화 유명
- 항공용 탄소섬유금형 시장 도전
- 공장 신·증축 마치고 출정 채비
같은 업종은 원수지간이라는 말은 참이다.
상대를 이기지 못하면 내가 몰락하기에 죽기살기로 경쟁해야 한다.
같은 업종은 친구지간이라는 말 역시 참이다.
서로 돕는 게 성장하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시장을 놓고 서로 싸우기만 하면 피해를 볼 밖에.
'윈-윈(win-win)'이 여기서 나왔다.
파이를 키워 동반 성장하자는 전략 말이다.
라퐁텐의 우화 '말과 당나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당나귀가 말과 함께 짐을 싣고 길을 떠났다.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가 말에게 도움을 호소했지만 단박에 거절당했다. 결국 견디지 못한 당나귀가 쓰러지자 그 짐은 몽땅 말에게 맡겨졌다.
심지어 죽은 당나귀 가죽까지 짊어진 말이
그때서야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말과 당나귀의 관계는 자동차 업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상호 협력이 아니라 일방적인 갑을 관계가 그것이다.
부품 단가 후려치기가 난무하는 업계에서 납품 업체들은
생존에 급급한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는 미래가 없다.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경쟁과 협력을 배타적인 개념으로만 봐선 안 된다.
경쟁이 기본적으로 효율성을 높여주기에
'너 죽고 나 살자' 식일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경쟁을 협력의 또 다른 형식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부산 강서구 지사과학단지에 있는 신한금형이 바로 그러한 업체다.
박태민(64) 대표는 경쟁과 협력의 원리로 38년 간 기업을 이끌어 왔다.
뿌리산업인 금형에 올인했다.
관련 열처리와 용접, 소재, 소성, 가공 등 기초가 되는 부문들을 섭렵해
강소기업을 일궈냈다.
"상품을 만드는 근간인 뿌리산업을 궤도에 올리지 않고서는 선진국이 될 수가 없어요. 금형을 시작한 1세대로서 나라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의 말대로 신한금형은 대단한 위치에 올라섰다.
관련 업체만 6000개가 넘는 일본에서도 정밀기술 수준이
탑10에 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박 대표는 일본 시장에서
넘버 원인 토요타와 손을 잡았다.
여기에 GM과 국내 모든 자동차
생산업체에 범퍼와 내외장재를
납품하고 있어 든든하다.
1980년대에 그는 일찌감치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금형 선진국을 둘러본 그는
장인정신을 불사르기로 작심한다.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금형산업을 끌어올리기로.
엔화 차관을 끌어들였다가
외환위기때 된통 당했지만
쌓아온 기술력으로 극복해 냈다.
그리고 다음해 극적인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토요타와 납품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당시 내한한 토요타 부사장과 끈질긴 줄다리기를 벌였다.
별로 볼 것도 없는 무명의 부산 업체가 어디 눈에 들기나 했겠나.
하지만 박 대표는 진정성으로 승부했고
마침내 퀀텀점프(대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하지만 부사장은 저의 '쟁이'정신을 높이 샀고 믿어줬습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의 시대가 열린 게지요."
물론 굴지의 토요타가 뒷조사를 하지 않았을리 없다.
박 대표와 신한금형의 정보를 1년간 뒤졌다고 한다.
심지어 그의 가족 관계와 성격, 취미까지
샅샅이 파악했을 정도였으니 알 만하지 않나.
박 대표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토요타와 계약을 맺은 지 5년 만에 품질만족도를
50%에서 95%로 확 높였다.
엄청난 결과였다.
실적을 보고 놀란 토요타 부사장이 다시 부산을 찾은 건 말할 것도 없고. 협력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기술력에 영업망을 더하기로 하고 일본의 빅3 금형업체와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당장 연간 수주액이 10억 원 이상 늘었다.
후광효과라는 경제용어가 있다.
권위자나 전문가를 내세워 상대방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는 것으로 마젤란이 당대 최고의 지리학자를 대동해
세계 일주 항해의 정당성을 역설함으로써 뜻을 관철시킨 건 유명하다.
박 대표도 마찬가지.
토요타라는 굴지의 협력 업체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후광효과를 통해 금형을 항공산업으로 확대시키려 한다.
기술력은 이미 갖췄다.
복합소재인 탄소섬유 금형에도 일가견이 있다.
국내에선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에 올라섰으니 조건은 무르익은 상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도 반색한다.
올해가 그 첫 해가 될 것이다.
항공기 부품을 만들기 위한 금형에 도전하는 박 대표의 표정은 자신감에 차 있다.
공장 신·증축도 이미 착수했다.
성공을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 있다.
바로 장인 정신.
박 대표는 글로벌 품질기준에 주목한다.
정상급 기업이 되려면 잘 만들어야 하고(생산), 잘 팔아야(마케팅) 하는 건 상식.
생산에선 기술 설비와 인적 자원이 중요하다.
제품에서는 디자인과 소재가 분수령이 된다.
그는 사람을 아끼는 기업인이다.
10년 이상 현장근무를 하고 직원이 절반에 이르고, 20년 이상 장기근속자도 수두룩하다.
하드웨어는 됐다.
문제는 소프트웨어.
그러자면 고객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국산 자동차가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선 한참 뒤처집니다.
그건 타보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글로벌 품질에 못미친다는 얘기지요."
같은 자동차지만 토요타와 혼다, 닛산 등도 요구조건이 모두 다르고 까다롭다.
박 대표는 여기에 착안해 자체 매뉴얼을 만들었다.
토요타를 끈질기게 설득해 시방서를 손에 넣었다.
당신네가 원하는 바를 알아야 입맛에 맞게 만들어줄 게 아니냐는 논리를 내세운 게 주효했다.
이후 무려 2억 원을 들여 신한금형은 표준업무 매뉴얼과 설계 매뉴얼, 그리고 금형기초 실무를 다졌다.
강소기업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이를 지켜본 현대자동차가 벤치마킹해 따라온 건 업계의 유명한 일화가 됐다.
이제 박 대표의 신한금형은 터널 속의 어둠을 뒤로 하고 터널 끝의 밝은 빛을 바라보는 지점에 와 있다.
그 어려웠던 외환위기와 금융대란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기술력으로 버틴 저력을 보여줄 참이다.
암중유광(暗中有光)이랄까.
금형 하나만 파고든 박 대표의 시선은 "아직도 배 고프다"고 말하는 듯하다.
■ 박 대표의 경영 철학
- 회사 덩치 키우기보다 내실 중시…기업 미래는 인적투자가 결정
박 대표의 신한금형은 규모로 보면 그리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다.
연 300억 원 매출이 일차 목표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그는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에 밑거름이 될 결심으로 뿌리산업인 금형 하나만 파고들었다.
곁눈질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회사가 단단할 밖에.
물렁살이 아니라 튼실한 근육질이다.
그래도 자만은 금물.
발묘조장(拔苗助長·싹이 빨리 자라라고 위로 당긴다)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뚜벅뚜벅 황소걸음으로 걸어간다. 준비 없이 성급하게 기업을 키우려 하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
빠른 성장속도에 못지 않게 순이익을 비롯한 경제효용이 뚝 떨어질 가능성이 무척 높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겉으로 드러난 몸집이 아니라 내실을 중시한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압도적인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기업철학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비록 성장 속도는 느릴지라도 신기술로 무장해서 돌다리 두드리듯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술력은 인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교육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동의과학대와 직무능력대회를 열고, 기업현장 분위기와 수준을 학교 교육에 접목시키려 부단히 노력한다.
중소기업청 지정 인재육성중소기업이기도 하다.
그는 기업의 미래가 인적 투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현재가 미래의 여건을 만든다는 얘기다.
그들이 성장해서 협력의 뜻을 깨친다면
기업과 나라의 밝은 미래가 활짝 열릴 것이라는 말에 장인정신이 진하게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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