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에서 '가야'까지
바깥세상 시계가 멎은 여기, 아직 따뜻한 가슴이 뛴다
경로당 평상에 앉아 할머니가 웃으신다. " 늙은이는 머 할라꼬 찍노. 감이나 하나 무라!"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신암 안동네). |
- SNS 명소로 떴다는 도심 속 오지
- 빌딩과 겹쳐져 더 묘한 추억의 풍경
- 텃밭 감나무…빨랫줄에 말린 생선…
- 단감 하나 건네는 경로당 할머니
- 그래, 이게 사람 사는 맛이지
신문사 사진기자를 하던 시절이었다.
초겨울 날씨가 춥다 싶으면 찾는 곳이 안창마을이었다.
겨울에 접어들어 첫 얼음 스케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외진 고지대이면서 추운 곳이다.
사는 사람들 아니고는 굳이 찾을 일이 없던 소외의 상징 같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사람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도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벽화를 그리고, 환경을 개선하고 그러한 것이 SNS를 통해 바깥으로 알려지면서
지금은 부산 사람은 물론 외지인에게까지 알려진 꽤 유명한 마을이 되었다.
안창마을 전경. 호리병처럼 오목한 지형 속에 마을이 폭 들어앉았다. 부산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
무엇보다도 도심 가까운 곳에 아직 60 ,70년대 흔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안창마을을 찾게 하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
오늘은 낮은 산 하나를 두고 안창마을과 행정구역이 나뉘는
신암을 거쳐 가야까지 걷는다.
마을 위부터 내려오는 방법을 택했다.
먼저 범내골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안창마을 맨 위쪽 회차지에서 내린다.
10여 분 골목을 걸어 마을 맨 꼭대기에 올랐다.
고갯마루를 경계로 동의대학교와 마을이 구분된다.
안창마을 넘어 서면을 중심으로 왼쪽은 부산진구, 오른쪽은 동구,
저 멀리로 동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숨을 고른 뒤 동의대학교 기숙사 방향으로 내려오자 텃밭에 감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잎은 다 떠나보내고 앙상한 가지에 노랗게 잘 익은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올해는 정말 감이 풍년이다.
조금 내려와 마을버스 회차지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주황빛 양철지붕에 고양이 한 마리가 늦가을 오후의 빛을 즐기고 있다.
카메라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딴 곳을 본다.
햇볕을 받아 환한 담벼락에서 빨래가 말라간다. (부산 동구 범일동 안창마을) |
마을 오른쪽 길을 돌면 안창마을과 바깥세상의 높은 건물이
오버랩되어 눈에 들어온다.
삶의 극명한 대비다.
골목 아래로 오면 작은 벽화, 빨랫줄에 걸린 생선, 늦가을 긴 그림자가
만든 구성을, 아기자기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버스길 옆으로 흐르는 호개천(동구와 부산진구의 경계선이다)을 건너
신암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숲길을 따라 아래로 10여 분 가면 왼쪽에 관음사란 자그만 절이 나온다.
목을 축이려 잠깐 들렀으나 공사가 한창이다.
관음사에서 3, 4분 내려서니 마을 경로당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몇 분이 평상에 앉아 감을 깎아 드시면서 담소를 나눈다.
가벼운 인사로 양해를 구하고 몇 컷 찍었다.
"이 늙은이는 머 할라꼬 찍노",
농담 섞인 꾸지람을 하시며 "사진 찍지 말고 마~아 감이나 하나 무라"면서 단감 하나를 건넨다.
90세를 넘긴 나이시라는데 정정하시다.
이런저런 대화에 가끔 큰 웃음도 보이신다.
경로당을 지나 내려오자 작은 텃밭에 아주까리(피마자) 몇 그루가 가을빛을 받고 있다.
역광의 빛은 이렇듯 별것 아닌 것을 멋진 풍광으로 바꿔줄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큰 길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가을꽃 국화가 주인의 관심을 못 받았는지 시들시들하다.
아이 키울 때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다시 골목을 따라 30, 40미터 가자 영락없이 중세 성곽 같은 건물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마침 신암과 가야를 경계 짓는 언덕 정상에 있고, 낮은 주위 건물 때문에 더 위엄 있어 보인다.
그 건물 틈 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다.
따라가 보니 가야가 눈앞에 펼쳐진다.
2개 구 3개 동을 촬영하며 걸었는데 늦가을 오후의 해는 아직 여유 있어 보인다.
포토스페이스 중강 대표
주황색 지붕 위의 고양이. 셔터 소리가 나도 눈길 한번 안 주는 깍쟁이 같으니라구. (안창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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