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칠 '트렉스타' 대표
역발상으로 뭉친 '삐딱이'…"신발의 진화 내 손안에 있소이다"
- 억지로 떠안다시피 시작한 회사
- 세차례 화재피해 시련 속에서도
- 매출액 절반 연구개발 쏟아부어
- 손 사용 않고 신고 벗는 신발 등
- 제품 출시때마다 혁신기술 장착
- 세계 최대 박람회서 2관왕 쾌거
- 등산화 역사 새로 쓰며 승승장구
- 글로벌시장 1위 등정 당찬 포부
- "이번엔 온도조절 신발에 도전장"
좋은 제품은 여럿 있다.
하지만 사랑받는 제품은 특별하다.
오직 하나뿐일 수도 있다.
고객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마케팅이 최고의 경지로 여겨지는 이유다.
'예쁜 디자인'으로 소비자 눈길을 끌 수는 있으되, 사랑을 독차지하기에는 부족하다.
고객을 먼저 생각하고, 편의를 배려하는 착한 디자인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마디로,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는 디자인 철학이 통하는 시대가 왔다.
'트레킹(아웃도어)의 길을 환히 밝혀주는 별'.
국내 최고 등산화브랜드 트렉스타의 지향점이다.
권동칠(60) 대표가 꿈꾸는 미래가 여기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는 신발에 미친 아이디어맨이다.
그것도 고객들의 욕구를 정확히 간파해 상품화하는 데 천재적인 기질을 보여준다.
2차대전의 명장 조지 패튼이 말했다.
전장에 나가면 이기거나 지는 정도가 아니라 생과 사가 갈린다고.
비즈니스계에서도 마찬가지.
무수한 제품과 서비스의 총성 없는 전쟁에서 지면 자멸을 피할 수 없다.
한 제품의 성패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패=죽음'이란 공식에서 벗어날 방도는 단 한가지. 무조건 팔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팔리는 제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권 대표는 승자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격, 그 이상의 가치로 사랑을 받기에...
트렉스타는 차별화로 승부를 건다.
시장에서 '그들의 룰'에 따르는 게 아니라 '나의 룰'을 내세운다.
그게 차별화다.
일찍이 미국 경제학자 슘페터는 자본주의 역동성이 창조적 혁신에서 비롯된다고 갈파한 바 있다.
혁신이 되려면 창조적 파괴는 필수적이다.
권 대표는 '지금까지의 신발은 다 틀렸다'는 역발상에서 시작한다.
창조적 파괴는 비움을 통해 채운다는 점에서 결코 파괴적이지만은 않다.
권 대표가 세계 신발업계를 호령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그는 가난에 찌들었던 어린 시절부터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기질로 거친 세파를 헤쳐나가는 요령을 터득했다.
오히려 불행을 미래의 행복으로 바꿔놓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경북 예천 출신 안동 권씨 가문이지만 빈농으로 허덕이느라 하루 세끼를 먹어본 기억이 없네요.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건 물론이고, 수업료를 마련하느라 어머니가 무려 스물하고도 여덟집을 돌아다니며 돈을 빌려야 했던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꿈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부산에서 어렵사리 야간대학을 나온 그가 처음 입사한 곳이 부산을 대표했던 신발기업 세원이었다.
대기업에서 열심히 뛰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일감을 맡겼던 영국 업체에서 임금 상승과 노사 분규가 계속되자 권 대표에게 회사 설립을 권유한 것이다.
30만 달러 무상 지원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면서.
고민 끝에 그는 자립의 길을 택했다.
동료들이 "빨리 망하고 돌아오라"고 말했을 정도니 엄청난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1988년 8월 8일 오전 8시 8분.
권 대표가 성호실업 문을 연 시각이다.
8이 4개 겹쳐 100년에 한 번 온다는 길일에 시와 분까지 2개를 더했다.
부인까지 포함해 직원 5명을 향해 무려 2시간 동안 열변을 토했다.
"박세리도 우승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일이 뭐 있나. 신발로 세계를 제패해 국민을 감동시키자"고.
하지만 성공에는 항상 시련이 따르는 법. 세 번이나 화마를 당했다.
공들여 만든 완제품들이 잿더미로 변하는 걸 지켜봐야 하는 심정을 어찌 필설로 형용하겠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는 말끔히 치워냈다.
납기일을 맞추려면 한시라도 빨리 공장을 돌려야 했다.
"다른 바이어들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거지요.
일은 이미 저질러진 것이니 수습만이 최선이라 여겼습니다."
권 대표에게 도약의 계기는 인라인 스케이트였다.
'롤러블레이드'라는 제품이 대명사로 통하던 시절, 그는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신기 힘들고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 점에 주목했다.
말랑말랑한 제품을 만들어보겠다며 미국 업체에 제의했고, 정주영 왕회장처럼 선금을 받고 개발에 들어갔다.
매출액의 절반을 쏟아부으며 신제품 개발에 매진했지만 자금 압박으로 직원들이 동요했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다니며 직원들에게 보약까지 달여 먹이며 몇달간 밤샘 작업을 한 결과 꿈이 이뤄졌다.
불티나게 팔려나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현재 트렉스타의 소프트 인라인 스케이트는 전 세계 시장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에게 남은 건 대도약.
1994년 OEM(주문자상표 부착방식)을 버리고 자체 브랜드를 키우기로 결단했다.
트렉스타의 탄생 순간이었다.
"기술 평준화가 이뤄지는데다 공급 과잉도 심각한 상태에서 남 좋은 일만 해주는
OEM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필패의 상황이었어요."
차별화는 권 대표의 숱한 아이디어가 도화선이 되었다.
끈을 손으로 묶어야 하는 불편함에서 다이얼만 돌리면 해결되는 혁신적인 제품으로 진화했다.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신발 뒷축을 당기는 것으로 끈이 매어지고 풀리는 '핸즈프리'가 2탄으로 나왔고,
지난달 신발 전방위로 땀을 내보내고, 비는 막아주는 고어텍스 서라운드가 출시됐다.
무려 2만 명에 달하는 방대한 발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해서 만들어낸 땀의 결정체다.
자동차 서스펜션(수평유지) 기능을 적용하기도 했다.
첨단등산화 시리즈의 융단폭격에 세계가 놀랐다.
올해 초 세계최대 아웃도어 스포츠용품 박람회에서 황금상과 대상 등 2관왕을 거머쥐면서
등산화 역사를 새로 썼다.
스마트신발에 대한 권 대표의 갈증은 계속된다.
그의 시선은 신발 내부의 온도 조절까지 바라보고 있다.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한 그야말로 온 세상을 경악케 할 '무기'가 완성될 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
연매출 1조원, 아웃도어 부문 세계 1위라는 수식어도 자연히 붙게 될 터이다.
독일 패션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내 인생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했듯이
트렉스타 최고의 날 역시 오고 있는 중일 게다.
# 권 대표의 경영철학
- 뭔가 달라야 통한다…혁신·차별화가 살 길
세계 최대 아웃도어 스포츠용품 박람회에서 2관왕을 차지한 '핸즈프리' 신발. |
권 대표의 꿈은 오직 하나,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다.
발이 건강해야 삶의 질이 올라가고, 장수를 누릴 수 있기에 혁신,
또 혁신하는 것만이 인류에 기여하고, 기업이 사는 길이라 확신한다.
그러자면 미래의 불확실성을 헤쳐나가야 한다.
사업은 생물이라 위험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잠시라도 한눈 팔다간 곤두박질 친다.
그래서 항상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다.
위기를 예측하기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인식의 전환만으로도 그 가능성을 확 줄일 수 있다.
바로 위기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다.
권 대표는 끊임없이 미래를 상상한다.
50년 후 사회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말이다.
그는 시기를 당기길 원한다.
왜냐면 현재는 그 때와 비교하면 현저히 처져 있을테니까.
시장에서 앞서 나가자면 앞날을 예측하고 하루빨리 현실화하는 게 급선무다.
날아다니는 배와 기차 등 지금도 상상력을 현실에서 시도하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가 가장 아끼는 책이 있다.
'보랏빛 소가 온다'.
여기서 보랏빛 소는 차별화를 뜻한다.
누렁이와는 전혀 다른 소를 혁신을 통해 찾아내거나 만들어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권 대표에게 차별화는 '뭔가 새로운 것'이다.
그 가치가 원가 절감이나 생산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
그의 머리속에 담긴 아이디어들은 차별화에 거름이 된다.
책에서 얻는 지식과 지혜를 그는 사업 성공을 위한 투자로 여긴다.
직원들에게 매달 한 권씩 책을 선물하고, 독후감을 받는 전통을 26년 째 해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렉스타를 아이디어공작소라 칭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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