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업'인'스토리] 김형광 '고래사' 대표

금산금산 2015. 7. 2. 21:05

김형광 '고래사' 대표

 

 

 

 

뚝심으로 일궈낸 '나노공법'…어묵에 프리미엄 품격을 입히다

 

 

초밥과 고로케, 샐러드 등 어묵을 패스트푸드이자 슬로푸드 명품으로 끌어올린 김형광 고래사 대표가 지난달 문을 연 해운대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환한 표정에 '어식 100세시대'를 열어나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배어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

 

 

 

 

- 20여 년 전 어묵공장 맡자마자
- 비위생적 생산시스템 확 바꾸고
- 한국형 탈유기도 직접 만들어

- 숱한 좌절 시행착오 겪으면서도
- 어묵우동·초밥 등 200여 종 개발
- 오직 맛 품질로 소비자 매료시켜

- 직영점 체험관 만들어 고객 소통
- "서부산권에 어묵빌리지 조성 땐
- 관광코스로 훌륭한 아이템될 것"


 

'데미안의 스프'라는 서양우화가 있다.

데미안은 게살 스프의 명인이다.

하지만 친구는 그 맛있는 음식을 멀리했다.

데미안이 자신의 실력에 취한 나머지 끊임없이 스프를 강권했기

때문이다.

스프를 많이 먹어 이미 배부른 친구에게 자꾸 더 먹으라 하니

입맛이 날 리 없다.

 바로 한계효용의 법칙이다.

소비자가 한 단위의 물품을 소비했을 때

증가하는 만족의 정도가 한계 효용.

 

역으로 동일한 자극이 반복적으로 진행되면

만족감이 점점 더 떨어진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니 수요층이 필요로 하는 신제품들을 창조와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

그게 '열린 비즈니스'다.


'미스터 어묵'으로 불리는 고래사 김형광(53) 대표가 그러하다.

영화 국제시장이 그러하듯이, 바야흐로 부산어묵 전성시대를 맞았다. 어묵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대표의 고래사는 삼진어묵과 함께 그 정점에 서 있다.

그 비결이 뭘까.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어묵 생산 시스템을 청산한 게 그 첫 번째.

이어 다양한 소비 기호를 충족시킨 게 폭발적 인기로 이어졌다

.

김 대표의 성공은 눈물겨운 실패와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다.

20여 년 전 경남 창녕에 있던 장인 어른의 어묵공장을 맡았을 때

그는 코를 쥐어야 했다.

역겨운 냄새와 불결한 설비를 보고는 공장에 들어가기조차 힘들었다. "이런 시설에서 나온 어묵을 도대체 누가 사먹겠습니까.

왜 어묵공장은 위생적일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 불면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불결한 어묵이라는 고정관념을 어떻게든 부숴야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그는 16년 전 공장을 장림공단으로 이전하면서 실천에 나섰다.

그리고 10년을 준비했다.

이전부터 어묵의 본고장 일본을 주목했다.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샅샅이 훑은 결과

우리나라에서 본 적이 없는 탈유기에 '필'이 꽂혔다.

어묵에서 탈유, 즉 기름빼기는 생명과도 같다.

이게 제대로 안 되니 위생이 빵점일 밖에.

지금도 일부 어묵업체가 사용하는 스펀지와 부직포는 문제가 많다.

기름이 묻은 채 재사용하는 건 물론이고, 화학제품인 스펀지는 열을 받으면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생기기에 건강에도 매우 좋지 않다.

한국형 탈유기로 기름을 깨끗이 제거한 고래사 어묵우동.

그래서 일본 탈유기를 당장 들여와 가동했는데 아뿔싸, 제동이 걸려버렸다. 두툼한 일본 어묵에 적합한 기계가 얇은 사각어묵 만들기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어묵이 말려서 떡이 돼 버렸다.

 "여기서 포기하면 국내 수산물 가공산업 발전은 없다고 굳게 다짐했어요. 우리 실정에 맞는 탈유기를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렵사리 전문가를 대표로 영입해 경영을 맡긴 뒤, 자신은

공장장으로 내려앉았다.

1㎜의 싸움이 시작됐다.

당시 어묵시장의 30%를 차지했던 포장마차와 전통시용 얇은 어묵 생산을 포기했다.

간절히 구하면 하늘이 돕는 법.

장장 8년 6개월이 걸렸다.

일본을 능가하는 한국형 탈유기가 빛을 본 게.

 지난해 관련 특허 3개를 한꺼번에 땄다.

여기까지가 1라운드.



김 대표는 어묵의 질과 제품의 다양화로 눈을 돌렸다.

 불량식품 이미지에서 벗어나 프리미엄급 제품으로의 도약이 절실했다.

밀가루를 쓰지 않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잘 퍼지는 면과 달리 어묵은 뻣뻣해졌다.

마치 구운 삼겹살처럼. 식으면 피가 딱딱해져 식감에도 문제가 생겼다.

실패작 연속이었다.

부드러운 어묵우동 만드는 데만 무려 300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3년이 걸렸다.

"어묵우동은 면이 입에 닿을 때 첫 키스의 느낌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만족스럽지 않네요."

 

 

어묵초밥.

그가 내놓은 신제품만 해도 고로케와 어묵초밥 등 200여 종에 달한다.

머지않아 어묵도시락도 선보일 예정이다.

프리미엄 어묵의 꿈이 달성된 셈.

그렇다고 끝난 게 아니다.

판로가 남았다.

아무리 다양하게 개발해도 획일화된 제품을 요구하는 유통사와

대형마트로는 소비자와 만날 수가 없는 상황.

그래서 직영점 체제를 선택했다.

지난해 부전시장 직매장에 이어 올 2월 해운대점을 열었다.

 "단순히 어묵판매를 위한 곳이 아닙니다. 문화를 접목시키겠습니다.

해운대점의 2층을 오감만족 체험관으로 만든 것도 그 일환이에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술집을 차렸겠죠."



'미스터 어묵'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일화 한 대목.

지난해 8월 박근혜 대통령이 자갈치시장을 방문했을 때 그는 어묵고로케를 권하면서

"나노공법으로 만들었다"며 자랑했다.

'첨단 기법이 어묵에도?'라는 표정을 짓는 대통령에게

"'나'만의 '노'하우로 만든 겁니다"라고 재치있게 답했다나. 좌중에 폭소가 터진 건 말할 것도 없고.


'어식(魚食) 100세 시대'를 외치는 김 대표.

이제 수산가공업을 첨단 융·복합산업으로 도약시키려 한다.

농업과 수산업의 결합이 대표적인 예.

남아도는 농산물을 어묵 제품에 넣자는 거다.

"홍삼이나 백년초 등 몸에 좋은 것들을 어묵에 넣어 소시지처럼 만들면 얼마든지 윈-윈할 수 있습니다.

횟감으로 쓰는 광어만 하더라도 환율이나 적조 피해를 보기 전에 저장성 재료로 만들 수 있다면 리스크가 확 줄겠지요."


첫 발걸음은 뗐다.

지역 업체들로 어묵식품 전략사업단을 만들어 대대적인 정부 지원을 얻어낸 주역이 그다.

이를 바탕으로 부산에 수산 관련 공단이 들어섰으면 하는 강한 바람을 갖고 있다.

서부산권에 어묵빌리지를 조성한다면 관광코스에 넣어도 될 훌륭한 아이템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지난해 해수부가 그를 최우수 수산 신지식인으로 뽑은 이유를 알 만하다.

창의적 발상으로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공유하려는 '미스터 어묵'에게 어울리지 않나 싶다.


# 김 대표의 경영철학

- 사막에 홀로 선 거목은 절대 살 수 없어…"부산어묵, 같이 갑시다"


위생모를 쓴 고래사 김형광 대표는 젊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그만큼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그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쉬운 것부터 풀어나가야 미래가 열린다고 믿는다.

온갖 어려움이 있더라도 고객을 사로잡기 위해 난관을 뚫어 나간다.

그의 삶이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고객이 없으면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이기에.

 '오래 변함없이 찾아주신 분들을 마음에 두겠다'는 각오가 담긴 '고래사'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미래를 보고 준비하는 그의 뚝심은 대단하다.

어묵식품 전략사업단을 추진할 당시 그는 숱한 좌절을 겪었지만 보란듯이 이겨냈다.

탈락이 기정사실화됐는데도 무려 8차례나 정부를 찾아가 끈질지게 설득한 끝에 결국 지원을 이끌어냈다.

"담당자에게 보신탕을 드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밀도살 등 위생 문제를 들이댔습니다.

어묵도 더럽다고만 하지 말고 제도권 내에 품어줄 것을 요청했더니 마음이 변하더라고요."

선정 후에는 "부산 어묵업계가 성공해서 우리나라 전략식품 사업의 모범케이스가 돼달라"

당부까지 받아 가슴이 뿌듯했단다.



김 대표는 고래사에 앞서 업계 발전을 염두에 둔다.

 '사막에 홀로 선 거목은 절대 살 수 없다'는 신념이 확고한 까닭이다.

각개 전투를 하게 되면 진정한 경쟁은커녕 '너 죽고 나 살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

미래를 내다본다면 부산의 어묵이라는 큰 브랜드로 키워나가야 한다고 외친다.

지역 업계가 똘똘 뭉친다면 어묵의 오아시스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같이 갑시다"라고 말해 감동을 준 미국 대사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