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저1동 신촌마을 '일본식 가옥'들
역사 저편 사라진 '대저 배' 명성처럼…스러져가는 근대 삶의 추억
부산 강서구 대저동 이동철 씨의 일본식 가옥. 울타리는 없고 집 앞에 일본식 정원을 꾸며 놓았다. |
- 특산품이던 배
- 70년대까지 전국 생산의 80% 이상 차지
- 일제 배농사 위해 자국민 정착
- 적산가옥 남겨…지금은 10여 채만
- 역사 가치 높아 보존대책 세워야
부산 강서구 대저1동, 남해고속도로가 지나는 '대저중앙로' 부근을 거닐다 보면,
왜색풍의 주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지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은 일본 전통건축양식의 가옥들이다.
"일제강점기 대저1동 일대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낙동강제방공사로 확보한 농지를 '배 농사'에 활용했던
곳이지요. 그 시절 대저에서 재배한 '대저 배'는 구포장에 집산되어, 일명 '구포 배'로 전국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평생 대저에서 배 농사를 한 박홍목(77) 씨의 말이다.
일제는 배 농사를 위해 일본에서 이주한 자국민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하며 대저에 정착케 한다.
일본인 이주민은 그들이 살 집을 마련하려고 건축자재며 정원수까지 모두 일본에서 가져와
일본 전통방식 가옥을 짓는다.
이 일본식 주택을 우리는 '적이 남기고 간 재산', 즉 '적산(敵産)가옥(家屋)'이라 한다.
현재 대저동에 남은 일본식 주택은 10여 채.
그중 보존상태가 양호한 곳은 네댓 채 남짓.
아직 생활공간으로 사용되거나 식당, 별장 용도로도 활용한다.
■ 지금도 훌륭한 생활공간
동방유량 창업자 신덕균 씨 소유였던 일본식 가옥. 지붕부터 내려앉아 기둥이 휘고 골조가 드러난 상태다. |
대저중앙로를 중심으로 산재한 일본식 가옥들을
강서문화원 향토사연구소 배종진 연구위원과 둘러보았다.
우선 대저로 235번 길 135 이갑돈 씨 가옥에 들른다.
아름드리 노송들이 우리를 먼저 맞는다.
몇 년 전 타계한 이 씨 대신, 아들 기문 씨 내외가 집을 관리하고 있다.
가옥 구조는 지붕 위에 지붕을 얹은 것 같은 '중층 기와지붕'으로
부드럽고 유려한 우리 기와집과는 달리 지붕의 용마루가 직선으로 뻗어
엄격하고 고집스러워 보인다.
창문에는 '아마도(雨戶)'의 흔적이 남아있다.
'아마도'는 유리 창문 밖에 두꺼운 널빤지로 덧댄 덧문인데, 강한 비나 바람을 막고자 만들었다.
아침 무렵 햇볕이 있을 때 열어두었다가 저녁에는 닫는 구조다.
이기문 씨 안내로 안으로 들어선다.
방이 6개인 실내는 단아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복도와 안방, 다실을 겸한 응접실과 주방 및 식당 등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우리네 집과는 달리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데 미닫이문 뒤로 화장실과 세면대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정원을 편히 바라볼 수 있도록 배치된 복도, 안방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낮게 설치한 둥근 '월창(月窓)' 등이 집의 아름다움과 기품을 더한다.
집을 받치고 선 굵은 목재기둥이 윤기로 반들반들하다.
안방 뒤에는 또 다른 방이 '후스마(ふすま. 가벼운 나무틀에 헝겊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 제작한 일본 전통 미닫이문)'로 연결되어 있다.
손님을 맞을 때 다실을 겸한 응접실로 활용하는 '쇼인(書院)'인 듯하다.
부산 강서구 대저동 박흥목 씨의 가옥. 이 함석집은 일부가 2층 구조인데, 지붕 형태가 일본 건축양식을 따랐다. |
■ 관리에는 어려움 많아
다시 정원으로 나와 가옥 관리의 애로점을 물었다.
"집이 오래돼 지붕에 비가 새는데, 이를 잡기가 힘들죠.
특히 새들이 지붕 기와 속에 둥지를 틀다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보니 처마의 기와마다 비닐조각이 펄럭인다.
새를 쫓기 위한 고육지책이 눈에 밟힌다.
이렇게 가옥 관리를 위해 고심하는데도, 오래 전 뜻밖의 소동으로 집이 헐릴 위기가 있었다.
"최규하 대통령 시절, 이 마을을 지나던 대통령께서 '아직도 일본집이 있네'라고 혼잣소리를 하셨는데
근처 수많은 적산가옥이 애꿎게 뜯겨나갔죠. 우리 집은 다행히 무사했지요."
선친의 손때가 묻은 가옥 관리에 더욱 애정을 쏟는 이유는 살아 생전 선친의 유지도 있었지만,
방치하여 폐가가 된 주위 적산 가옥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
그 대표적인 것이 동방유량의 창업자 신덕균 씨 소유였던 일본식 가옥.
대저중앙로 299 한성식품 앞.
보기에도 웅장하고 미려함을 갖춘 일본 전통가옥이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
지붕부터 내려앉기 시작한 폐가는, 몇 달 새 기둥이 휘고 외벽의 대나무 골조가 훤히 다 드러나는 등
보는 이의 마음을 안쓰럽게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찾아간 대저중앙로 319번 집.
왜색풍 함석집이 눈에 들어온다.
일명 '도단집'이라 부르는 기와집 형식의 양철지붕 집.
특이하게도 이 함석집은 일부가 2층 구조로 되어있는데, 지붕형태가 일본 건축양식을 따랐다.
소유주 박홍목(77) 씨는 "이 도단집은 80여 년 전 선친(박명돌)께서 일본인 소유의 가옥을 사서
1960년 새로 지은 집입니다. 그 시절 대부분 집 짓는 목수들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배운 건축기술로
집을 지었어요. 그래서 이 집도 왜색풍이 남아 있지요"라고 설명했다.
박 씨는 대저에서 배 농사와 원예농업에 평생을 바쳐온 이로, 대저농협조합장과 강서문화원장을 지낸 바 있다.
지금도 소일 삼아 농사를 짓지만, 한때 2만여 평의 배 농사를 하면서 '대저 배'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그 마지막을 함께했다.
■ '대저 배' '구포 배'의 추억
박 씨의 집 입구에는 1.5m 높이의 방공호 같은 구조물이 있다.
전체를 돌로 쌓고 평평한 지붕을 콘크리트로 타설한 '배 저장창고'이다.
7, 8평 창고는 한때 월동 배를 저장한 곳.
"이 '배 창고'는 월동하는 배를 저장하는 곳인데 주로 이마무라(今村秋), 만삼길(晩三吉) 등
'일본산 월동 배' 품종을 저장했어요. 25kg 들이 궤짝으로 700~800 궤짝은 족히 저장했습니다."
'대저 배'는 추석 전 수확하는 품종과 겨울에 저장해 이듬해 출하하는 품종으로 나뉜다.
추석 전 출하하는 배는 크고 과즙이 많고, 월동 배는 작고 단단하지만 달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좋았다고 한다.
"전국 유일의 '배 협동조합'을 둔 '대저 배'는 1970년대까지 전국 생산량의 80% 이상을 공급했어요.
지금은 '대저 배' '구포 배'의 기억마저 가물가물하지만, 이곳은 우리나라 근대 배 농업의 발상지였습니다."
그의 말 속에 '대저 배'에 대한 진한 애정과 그리움이 배어 나온다.
대저중앙로 233번 길 38호 초입에 100여 년 된 일본식 가옥이 한 채 서 있다.
현재 소유주는 한때 김해배협동조합장을 지내며 '대저 배' 생산에 힘을 쏟았던 이동철(75) 씨이다.
따로 울타리는 없고, 집 앞에 노송 두어 그루 자리한 일본식 정원을 꾸며 놓았다.
해방 후 3대가 함께 일본에서 들어와 지금껏 세거하고 있다.
가옥 안에는 필요에 따라 손을 본 곳과 원형대로 남은 곳이 함께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양새다.
가옥 외형은 잘 보존돼 한눈에 봐도 매력이 있다.
그 외 부산시 근대건조물로 지정된 '낙동강 칠백리 식당'과 양덕운 씨 가옥도 찾아볼 만하다.
공항로 1347번 길 36에 자리한 '낙동강 칠백리 식당'은 일제강점기 1926년에 지은 일본식 목조 가옥으로,
지붕이 중층인 수려한 건조물이다.
집 앞의 잘 늙은 백 년 소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양덕운 씨 가옥도 다다미방까지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다.
■ 부산 근대를 보존하는 일
일본식 가옥은 지나간 '근대의 역사'가 '현재의 시간'과 공존하며 함께 세월을 보내는 곳이다.
이들 일본식 가옥들은 '대저 배의 역사'와도 궤를 같이한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에서 서서히 잊히고 있는 '대저 배'는 우리 부산의 귀중한 근대문화유산이다.
대저 배의 역사를 보존하려면 지역의 '일본식 가옥'과 '배 저장고'부터 보존해야 하겠다.
때문에 일본식 가옥의 보존은 근대 부산의 역사를 보존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직접 찾아가려면 도시철도 3호선 강서구청역 앞 버스정류소에서 마을버스 5번을 타고
'신촌회관'에 하차해 대저중앙로를 따르면 된다.
또는 강서구 문화유산 보존에 열정적인 강서문화원에 문의해도 되겠다.
동의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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