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부산 매력 공간] '등대', 다른 세상 넘나드는 경계

금산금산 2015. 7. 8. 11:55

등대, 다른 세상 넘나드는 경계

 

 

 

 

뭍과 바다, 자연과 문명, 동양과 서양…그 경계의 접점을 밝힌 빛

 

 

오륙도 등대섬에 위치한 오륙도 등대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동요 '등대지기'의 가사다.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닿을 듯 말 듯한 아련함의 정서가 전해진다.

세상 모든 등대는 뭍의 가장 끄트머리 혹은 외떨어진 섬에 홀로 서서, 대면하는 것이라고는 망망대해와 칠흑 같은 어두움뿐, 달그림자와 파도소리, 갈매기 비행을 위안 삼아 외로움을 달랜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오늘도 같은 자리를 지키며 한 줄기 빛을 밝히고 있으니

참으로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이다.

등대에 가 본 적이 있는가. 젖병등대, 야구등대, 장승등대와 같이 희화화되어 기념사진의 배경으로 전락한

그런 가벼운 조형등대 말고. 인적 없이 오로지 바다의 밤길만을 책임지는, 뭍과 바다의 혹은 자연과 문명의

경계지점에 의연히 서 있는 묵직한 등대 말이다.

 

 


■ 일백 년 역사 품고 선 가덕도등대

가덕도 구등대(왼쪽)와 신등대

부산에서 가장 큰 섬 가덕도.

거가대교로 인해 이제 쉽게 넘나들게 되었지만, 등대는 섬에서도

뭍의 길이 끝날 때까지 꾸역꾸역 더 들어가야 한다.

해군 작전지역에 있기에 무턱대고 갔다가는

철문 앞에서 되돌아 나와야 한다.

사전 견학신청을 했음에도 두 번의 확인 과정을 거친 뒤에야

겨우 등대의 속살을 만나 볼 수 있었다.



가덕도등대는 1909년 12월에 첫 빛을 밝혔으니,

이미 100년 세월을 훌쩍 넘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뾰족하게 돌출된 지형으로 인해 바다를 향한 시야각은 300도 이상이며,

기암절벽 위에 우뚝 서 있기에 먼 해역에서도 발광 불빛을 감지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한반도의 침입과 수탈을 위한 요지로 여긴 일본군의 요청으로

등대가 건립되긴 하였으나, 지금은 마산항, 진해항, 부산 신항만을 왕래하는

수많은 선박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가덕도등대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근대양식의 등대 중에서도 원형을 상당 부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부산시 유형문화재 제50호이며, 국가문화재 신청도 검토 중)를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

특히 등탑과 등대원 관사가 한 건물에 결합되어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사례로서 희소성도 가지고 있다.

옛 등대 건물은 외형 자체부터 매우 독특하다.

일본식, 한국식, 서양식의 형태적 특징이 절충되어 있다.

 완성도 높은 혼합은 아니라 할지라도, 흔치 않은 시도 자체가 일단 흥미를 끈다.

건물의 상단부는 프랑스 낭만주의풍 양식인 반면, 하단부와 창문열은 전통 일본식 형태가 버무려져 있다.

건물에 덧붙여진 목조 현관은 르네상스식 캐노피에, 박공장식은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오얏꽃 형상을 새겨 넣었다.

한국·일본·서양 건축양식이 절충된 가덕도등대 관사(위), 가덕도 신등대 등탑에 설치된 계단

전체 공간의 정중앙에 팔각형 등탑으로 오르는 홀을 두었고,

관사의 방들은 홀 주변으로 빙 둘러서 배치해 놓고 있다.

방에서 방으로 연이어지도록 한 것이나 다다미 바닥은 일본식인 반면,

구들을 넣은 바닥난방은 한국식이다.

그런가 하면 등탑에 오르는 계단은 그야말로 서양의 신고전주의식 장식이 가미된 멋스런 철제계단으로 되어 있어 깜짝 놀랐다.

듣도 보도 못한 이런 과감한 조합은 가히 시간적, 공간적 경계

접점이었기에 가능한 결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옛 손길이 남은 흔적이 반가워 한참을 매만지다 나왔다.


신설한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다(높이 40.5m).

팔각 등탑 내부를 나선형으로 돌고 돌아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니

아찔하였다.

눈앞에는 아무런 막힘 없이 푸르른 하늘과 푸르른 바다가 수평선을

사이에 두고 장막을 맞대어 펼쳐놓았다.

이따금 구름과 배들의 움직임으로 거리감을 조금 느낄 수 있을 뿐,

여기서는 시간도, 공간도 일시 정지된 듯하다.

내려오는 긴 길이 심심하여 단수를 세어본다.

몇 단이나 될까. 별 하나 별 둘, 시간이 잠들기를 바라는 잠자리 습관처럼 그냥 세어본다.

 

 



■ 순백의 섬 지킴이 오륙도등대

 

오륙도 등대를 오르는 계단

이기대공원에서 내려가 승두말 유람선선착장에서 배 시간을 기다린다.

파도가 심하지 않은 날씨 좋은 날 한 시간 간격으로 있는 배라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관광차 온 이들과 낚시꾼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통통배 수준의 유람선이긴 하나, 선장은 나름 유창한 멘트로

안내를 시작한다.

뭍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방패섬과 솔섬의 틈 사이가 1m 남짓.

그러니 멀리서는 붙어 보이며, 썰물 때도 하나의 섬처럼 보인다.

그래서 '오륙도'라 부른다.

이것 확인만으로도 뱃삯이 아깝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수리섬과 송곳섬, 굴섬, 등대섬이 일렬로 서 있다.

어찌나 가지런한지 이것은 필시 창조주께서 떨어뜨려 놓은

 표식(실제로 우리 한반도의 동해와 남해를 나누는 경계 위치다)이지 않을까 상상이 들 지경이다.

배가 등대섬에 잠시 접안하자 섬으로 뛰어올랐다.

등대가 서 있는 곳까지 암벽을 오를 수 있도록 만든 지그재그의 하얀 철제 난간과 계단이

 외지인을 친절히 맞아준다.

오르다 중간 즈음 섬의 절반을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이 있다.

바닷속 억겁의 시간을 휘두른 채 솟구쳐 오른 절리는 그 자체로 절경이다.

세상천지 비견할 것 없는 태고(太古)의 장관이다.

파도의 물보라에 아랑곳하지 않는 강태공은 시간을 낚고 있다.


여기에, 이 땅 위에 감히 인공의 건물을 하나 얹는다는 것은 대단한 신공이 아니고서는 힘겨운 일이다.

우리나라 등대 최초 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건축가 정연근(경성대 건축학과 교수)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

 27.5m 높이의 수직 등탑은 직원 숙소인 수평 매스(덩어리)와 'ㄱ'자의 형태로 결합돼 있다.

짙은 회갈색 기암절벽 섬 위에 순백의 구조물이, 그것도 일부가 공중에 떠 있는 날렵한 형태로 돼 있어

절묘한 대비를 이루면서도 서로서로 붙들고 있는 조화미가 느껴진다.


여기서는 어디 서더라도 눈맛이 장쾌하다.

가까이 이기대와 멀리 해운대 영도, 아주 더 멀리 일본 대마도까지도 풍경 액자가 되어 보인다.

새벽 첫배로 들어오면 지상 최고의 일출 장관을 볼 수 있으며, 저녁녘 방문객에게는 도시로 해넘이 하는

붉은 하늘의 장관을 보여준다.

거센 바닷바람을 타고 나는 새의 비행이 신기하고, 철새 가마우지가 만든 하얀 배설물 자국마저 이채롭게 보인다. 등대는 경계의 접점 너머를 보여주는 창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은 등대의 역사를 보여주는 아주 자그마한 전시실 외에는

명승지를 찾은 관광객을 위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 경계의 문지방인 등대

거센 바닷바람과 파도와 맞서는 절벽산 정점에 뿌리내리고,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밤바다 어둠을 홀로

지켜내고 있는 것이 등대다.

뭍이면서 바다이고 문명이면서 자연인 혼재의 땅. 여기도 저기도 아닌 경계의 접점. 거기에 등대는 서 있다.

꿈인 듯 현실인 듯, 닿을 듯 말 듯 아스라한 바로 그 지점에서 등대는 오늘도 묵묵히 불을 밝히고 있다.

등대는 다른 세상을 넘나드는 문지방이다.

접점의 두 세계를 나누기 위함이라기보다 오히려 쉽게 건널 수 있도록 하는 '손 내밈'이다.

고요함의 수면 저 아래에는 마그마와 같은 생명의 힘이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등대는 묵직하고도 심연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풍파 심한 세상 속에서 외로이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등대는 한줄기 빛을 비추어 준다.

동명대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

오륙도등대

위치

부산시 부산 남구 오륙도로 130(용호동)

최초 점등

1937년 11월

신등탑 개축시기

1988년 12월

설계자

정연근(경성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용방법

오륙도유람선선착장에서 배로 이동(배 시간 및 운임 문의 051-626-8953)

문의

017-564-2062
http://portbusan.go.kr/index.do


가덕도등대

위치

부산시 부산 강서구 가덕해안로1237(대항동)

최초 점등

1909년 12월

신등탑 증축시기

2002년 6월

이용방법

군 작전지역으로 4일전 출입신청 필수(해군 055-549-4317)

문의

051-971-9710
http://portbusan.go.kr/index.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