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지리산' 만복대
억새 춤추는 고갯길 지나…
백두대간 능선 호령하다
산죽 도열, 계곡엔 시원한 물줄기
가을 솜털억새 여유와 정취 만끽
정상 서면 지리산 명봉 파노라마
상위마을 길 통제 정령치로 하산을
부산서 구례행 시외버스 타야
콧노래를 부르며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억새 군락지를 지나면 닿게 되는 만복대 정상의 돌탑. 이 곳에 서면 저 멀리 노고단과 반야봉, 그리고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억새는 변신의 귀재다.
에메랄드빛 높은 하늘에 솜사탕 닮은 흰구름을 배경으로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하다가도
시나브로 찬기운이 느껴지면 뼈에 사무칠 정도로 스산해진다.
역광에 반사되면 찬란한 금빛 억새로 금세 옷을 갈아입고 저녁 노을에 반사되면 수줍은 듯 홍조를 띤다.
달빛에 젖으면 이내 푸근한 솜털억새로 한 줌 바람에 하늘거린다.
이번 주는 이 가을 뭇산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억새산행.
산행팀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지리산으로 떠났다.
혹자는 지리산에도 억새군락지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다행히 한 군데 남아 있다.
구례에서 남원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의 만복대 주변이 바로 그곳이다.
평소 뜸하다가도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이 되면 유독 산꾼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만복대는 '억새산행'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옛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입이 딱 벌어질 만큼 광활한 신불평원이나 화왕산을 머릿속에 떠올린다면 솔직히 말리고 싶다.
만복대를 비롯한 서부능선은 지금 싸리 등 키가 작고 여린 관목들이 웃자라
식생이 변하는 천이과정을 보이고 있다.
한국전쟁때 황폐해진 이곳이 억새군락지를 거쳐 본격 숲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약간의 과장을 덧붙인다면 '지리산 만복대 억새산행'이란 말은 머지 않아 '역사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창녕 화왕산이 매년 정월 대보름에 억새태우기 행사를 하면서 관광상품으로 억새를 관리하는 것과 달리
국립공원인 지리산은 생태보존 차원에서 대자연의 섭리를 있는 그대로 유지하기 위함이리라.
한 발 양보해서 꼭 억새가 아니더라도 만복대에 가볼 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환상적인 조망 때문이다.
묘봉치에서 바라 본 만복대. |
구례와 남원의 경계에 위치한 만복대는 성삼재(1090m)와 정령치(1172m) 사이의
부드러운 백두대간 능선 가운데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봉우리(1433m).
앉은 터가 이런 탓에 만복대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서북쪽에서 조망하는 가장 멋진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낙조가 특히 아름다운 반야봉과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주능선이 한 눈에 펼쳐진다.
이 만한 전망대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국토의 등뼈 백두대간 능선을 원없이 보고 또 볼 수 있다.
만복대(萬福臺)란 이름은 이 봉우리가 사방 팔방으로 복을 내려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멋진 조망에, 억새 춤추는 능선을 걸으며 복을 받으러 떠나보자.
산행은 구례 산동면 당동마을~지리산 국립공원 안내판(철망 펜스)~당동고개~(작은고리봉)~묘봉치~만복대~정령치·다름재 갈림길~정령치 휴게소 순. 순수 걷는 시간은 4시간30분 안팎이며 길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당동마을은 지리산온천랜드를 지나 계속 직진, 차가 올라갈 수 있는 맨 끝 마을.
들머리 입구까지 차가 올라간다.
들머리에는 '당동고개 2.5㎞'라고 적힌 팻말이 서 있다.
오른쪽 시원한 당동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오른다.
10분 뒤 계곡을 건넌다.
여기서 길찾기 유의! 작은 바위에 흰 스프레이로 표시한 화살표 방향을 따라
다시 지계곡을 건너 너덜쪽으로 가면 길이 없다.
조금 위로 가 주계곡을 왼쪽으로 다시 한번 건너면 그때부터 산길이 열려 있다.
이 길만 찾으면 산행 내내 길찾기는 일사천리.
계곡물소리도 시원하고 산죽도 도열해 있는데다 활엽수 일색이라 단풍철에 와도 좋을 듯하다.
들머리에서 30분.
철망펜스를 통과하면 국립공원임을 알리는 경계 안내판이 서 있다.
서서히 지그재그 오르막이 시작되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마침내 당동고개.
백두대간 능선이다.
확 트인 고갯마루가 아니라 평범한 삼거리 고개다.
철망펜스에서 대략 50분.
성삼재는 오른쪽으로 불과 300m,
만복대는 왼쪽으로 5.7㎞.
만복대로 향한다.
이때부터 쑥부쟁이 구절초 진범 산비장이 금방망이 등이 만개한
서정적인 가을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능선길이 이어진다.
산죽길을 헤치면 숲사이로 뾰족한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작은고리봉(1248m)이다.
숲을 벗어나 확 트인 지점에서 잠시 뒤돌아보면 성삼재 휴게소도 확인된다.
당동고개에서 30분쯤 뒤 정면에 V자 갈림길.
왼쪽은 작은고리봉 정상가는 길.
산행팀은 오른쪽 사면으로 횡단하는 길을 따라간다.
두 길은 곧 만난다.
이후 길은 비스듬히 뻗어내린 능선길로 내려선다.
'만복대 3㎞'라고 적힌 팻말 인근에서 억새가 제모습을 드러내고 5분 뒤 묘봉치에 닿는다.
당동고개와는 달리 시야가 확트이는 고갯마루다.
비로소 1시 방향으로 만복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날카로움이 전혀 없는 젖가슴같은 유순한 모습이다.
왼쪽은 산수유로 유명한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있지만 폐쇄됐다.
인근에는 야생화로 비교적 희귀한 물매화도 눈에 띈다.
본격 억새산행이 시작된다.
싸리 등 키 작은 관목들이 점차 늘어 온통 억새천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산사면의 우점종은 여전히 억새이다.
산들 부는 가을바람에 몸을 맡겨 누웠다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억새는 여유로움 그 자체다.
산죽길도 이따금 번갈아 나타나고 억새보호를 위해 말뚝을 박아 밧줄을 묶어놨다.
묘봉치에서 만복대까지는 대략 1시간.
정상석은 없고 대신 돌탑이 서 있다.
환상적인 조망 포인트는 돌탑 아래 바위전망대. 오른쪽엔 손에 잡힐 듯 노고단이,
왼쪽에는 육중한 무게감을 지닌 반야봉, 그리고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산은 정령치 방향.
외길이며 내리막의 연속이다.
10분 뒤 갈림길.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부착한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왼쪽 상위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있지만 영구 폐쇄됐다.
직진한다.
여기서 정령치 휴게소까지는 대략 40분 걸린다.
만일 산행을 좀 더 하려면 (큰)고리봉을 거쳐 고기매표소로 하산해도 된다.
약 1시간40분 더 걸린다.
# 떠나기전에
고백한다.
떠나기전에 산행팀은 당동마을에서 시작해 산수유로 유명한 상위마을로 하산,
거기서 택시를 불러 당동마을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산행팀은 묘봉치에서 상위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폐쇄된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만복대를 지나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부착한 플래카드 앞에서 상위마을로 하산하는 길이
영구적으로 출입통제된 사실은 몰랐다. 불찰이었다.
고민끝에 상위마을로 내려갔다.
억새군락지인 다름재를 거쳐 아름다운 계곡 엥골(지도엔 엔골로 표기돼 있지만 마을사람들은 오기라고 강조)을 따라 2시간20분정도 대장정을 끝내고 난 후 도착한 곳은 상위마을 이웃인 월계마을.
이곳 월계마을 도착 20분 전, 마을을 기준으로 한다면 본격 등산이 시작되는 지점에 철망펜스와 함께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 있었다.
예년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내려온 하산길이 몹시 후회가 됐다.
마을사람들은 반달곰 방생 이후 지리산은 주등산로 이외의 산길이 거의 폐쇄됐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때문에 정령치 하산길은 다녀온 경험있는 산꾼의 설명을 듣고 기록하였음을 밝혀둔다.
출입금지 안내판에는 허가없이 출입할 경우 자연공원법에 의거,
과태료(50만원) 이하 처분을 받게 된다고 적혀 있다.
반드시 정령치로 하산하길 바란다.
# 교통편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서순천IC~남원·구례 방향 17번 국도~지리산온천관광호텔 안내판~산동·지리산온천 우회전~지리산온천 지나 계속 직진~막다른 로터리서 우회전(당동솔밭가든 당골식당 양미한옥가든 간판 방향)~대나무집 지나 비포장로~당동 등산로 입구 순.
날머리인 정령치에선 대중교통편이 없다.
따라서 들머리인 당동까지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구례온천택시(061-781-5555, 1296, 017-620-5869).
다소 비싸다.
만일 승용차를 성삼재에 두고 산행을 시작했을 경우,
성삼재로 가기 위해선 '지리산온천' 방향으로 빠지기 직전 '노고단' 이정표를 보고 가면 된다.
이럴 경우 산행시간은 대략 1시간10분 정도 줄어든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구례행 시외버스를 탄다.
오전 7, 8, 10시. 3시간 소요.
구례터미널에서 지리산온천랜드행 및 성삼재행 버스는 각각 오전 10시20분에 있다.
각각 30분, 40분 소요.
지리산온천랜드에서 들머리까지는 구례온천택시를 이용.
날머리 정령치(휴게소·063-625-1172)에선 운봉개인택시(011-689-1477, 011-658-0446)를 불러 고기리로 간다. 고기리에서 남원시외버스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시15분, 6시10분에 있다.
남원에서 부산행 버스는 오후 4, 6시(막차)에 있다.
막차를 놓치면 진주행 버스를 타자. 오후 6시35분, 7시5분, 7시15분(막차).
진주에서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행 버스는 10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밤 9시10분.
심야버스도 있다.
밤 10, 11시, 자정.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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