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부산 매력 공간]'영화 같은 도시', 부산이 그립다

금산금산 2015. 7. 30. 20:14

영화 같은 도시, '부산'이 그립다

 

 

 

 

 

켜켜이 쌓인 숱한 결 만져주고 엮어내니…부산은 해피엔딩, 네버엔딩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 된 국제시장 '꽃분이네' 가게.

 

 

 

 

부산은 우리나라 지도의 동남부 모서리에 있다.

동해에 절반, 남해에 절반 몸을 걸치고 있어 도시 어디서든 바다 기운이 물씬 풍긴다.

그러면서도 태백산맥의 준령이 바다로 곤두박질치기 직전의 마지막 위세를 떨치는 곳이 부산이다.

금정산 장산 황령산 수정산 구덕산 등등 400~800m 구릉성 산지가 도심지에 산개(散開)해 있다.

거기에 1300리를 달려온 낙동강이 있고, 산에서 흘러 내려온 개천이 모여 온천천과 수영강,

동천과 같은 물길을 형성한다.


그런가 하면 땅만 팠다 하면 고대 유물이 발굴될 만큼, 시간의 결이 두꺼운 곳이다.

또한, 일본과의 역사 속 교류와 쟁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6·25 전쟁 통에 유입된 피란민과

후세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곳도 부산이다.

수영비행장도, 하야리아부대도 이제 나가고 없는 그 자리에 현대식 건물과 공원이 들어섰다.

바다를 매립해 만든 땅 위에는 초고층 빌딩이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바다와 바다를 건너는 멋진 대교들은 도시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영도 흰여울길의 '무지개 계단'. 해안 산책로 코스와 연결된다.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이 강하지만, 다른 한편 하수상한 시절에

울분을 토해내고 앞장서 시위를 주도한 곳도 부산이다.

어지간하면 해 왔던 대로 그냥 하지만, 암만 참아도 아니다 싶으면

불만을 강하게 표출하는 것이 부산사람 기질인 듯하다.

그것은 재래시장이나 야구장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아파트 분양 현장이나 축제가 벌어지는 곳에 떼로 몰려드는 현상도

유사한 맥락이다.



부산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이 있다.

다이내믹(dynamic) 부산이다.

최첨단 빌딩과 피란시절 하꼬방이 공존하며, 트로트 뽕작 힙합이 함께

 울려 퍼지는 도시이다.

시쳇말로 표현하면 '짬뽕', 좀 세련된 말로 포장하면

'혼종성(hybridity)'을지니고 있다.

필자가 지금껏 사용한 용어로 풀자면, 시간의 결과 장소의 결이

 다종다양하게 쌓여 깊은 정서의 결을 내포한 것이 부산의 제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이 숱한 결을 잘 엮어내면 곧 하나의 멋진 문화로 재탄생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도시 재생에 많은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나 도시의 스토리텔링을 발굴하는 시도도

궁극적으로는 결을 엮어내고자 하는 방편이다.

그 엮어냄의 가능성이 최근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지 않은가.

'삼진어묵'에서 시작한 새로운 먹거리문화가 재래시장 분위기를 바꿔놓고,

'감천문화마을'에서 시작한 마을투어가 관광의 새로운 지평을 넓히고 있다.

'더베이101'을 통해 워터프론터의 세련된 해양문화가 서울 사람의 부러움을 불러일으키고,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를 통해 구도심의 거리가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아직 잠재성이 충만한 장소와 공간이 한둘이 아니다.

좋은 결을 가진 소재가 널려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멋지게 엮어낼 것인가에 대한

상상력만이 우리 앞에 놓인 숙제다.


그 상상력을 통한 문화의 재조명에 발군(拔群)인 장르가 영화다.

한 컷 한 컷 필름을 이어붙인 영상은 잊고 살던 일상의 의미와 이유를 새롭게 재해석해 준다.

많은 사람에게 박수를 받고,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영화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바로 결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연출력이다.




◇ 아버지의 애환을 더듬어 알게 한 -국제시장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장소. 영화 대사가 하얀 담벼락에 새겨져 있다.

역대 관객 수 2위(1425만 명가량)에 등극한 '국제시장'이 그랬다.

잊고 살던 우리 시대 아버지의 고단했던 지난날을 재조명함으로써

오늘이 있게 한 내면의 에너지가 그분들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하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말로만 듣던 전쟁의 참혹함과 이별의 아픔, 못살던 시절의 팍팍함과

생계를 위한 치열함 등이 현재라는 시간의 저편에 얼기설기 얽혀 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목도(目睹)할 수 있었다.


한낱 타자(他者)의 머나먼 과거에 묻혀 있던 이야기에 공감의 정서를

일깨우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의 선택은 오히려 돌직구 방식이었다.

멀리 떨어진 시간의 간극과 장소의 간극을 한순간에 뛰어넘도록 간극 속으로 관객이 빨려 들어가게 한 것이다.

현재에서 어릴 적 기억으로, 다시 중간에 청년시절 때 기억으로, 과거와 중간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뒤섞어 놓았다.

장소도 흥남부두에서 국제시장, 독일의 갱도와 베트남의 어느 전쟁 현장으로, 그리고 화자(話者)의 위치를

남부민동 높은 지대의 주택 옥상에 두었다가 아파트에 두었다가 한다.

나열식 전개가 아닌 여러 시간과 장소의 이미지를 혼재시켜 복합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수월하게

그 간극을 뛰어넘어 당사자인 것처럼 마음이 공감되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연출의 힘이며, 편집의 능력이다.

그래서 영화에 빠져든 관객에게 덕수(영화 속 주인공 이름)의 아픔은 내 아버지의 아픔이며,

우리 민족의 아픔이며, 동시의 나의 아픔으로까지 여겨져 와락 눈물 흘리게 된다.

가슴으로 절절히 공감하였던 많은 관객이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국제시장 '꽃분이네'를 찾고 있다.

사실, 가 봐도 시장통의 한 가게의 모습, 그 이상을 볼 수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가게 앞에서 연신 기념사진을 찍어댄다.

가게 그 자체를 찍고자 함이 아니라, 지난 시간의 결을 더듬어 알고자 함이며

마음의 결을 빗겨 준 그 현장을 만지고 싶은 것이다.



◇ 영화 같은 그리움이 녹아있는-흰여울길

영도 흰여울길의 게스트하우스. 뒤편으로 남항대교와 바다가 펼쳐져 있다.

영화 '변호인'의 관객 수는 1137만 명가량으로 국내 역대 7위이다.

군정시대 부산의 한 법정 사건 전말을 다룬 시나리오로, 많은 부분

부산을 배경으로 하였던 영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시린 장면으로 꼽히는 씬이 영도 '흰여울길'에서

촬영되었다.

명대사 "니 변호사 맞재? 변호사님아 니 내 쫌 도와도"가 영화 속 그 집

하얀 담벼락에 새겨져 있다.

관객은 글귀 앞에서 영화의 전율을 다시금 느낀다.


이곳 흰여울길에는 높다란 절벽 위 넓게 펼친 대양을 앞에 두고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집들 사이사이로 좁은 골목이 나 있다.

길가에서 골목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골목 끝이 모두 시퍼런 바다다.

지대가 높다 보니 시야도 대양 저 멀리 가 닿는다.

피란시절부터 떠밀려 와 집 짓고 사는 이곳 사람들이 무한정 부러워지는 대목이다.

여기에 최근 벽화가 그려지고 지붕이 단장되면서 멋스러움이 더해졌다.

앞으로도 조금만 더 잘 갖추어 나간다면 '산토리니' 못지않은 특색을 가진 마을이 못 될 법도 없다.

왜냐하면 '바다'와 '경사지마을'이라는 부산의 대표적인 두 이미지를 모두 충족하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바다를 수평으로 끼고 길게 난 골목길은 여기가 전국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엔 카페도 생기고, 게스트하우스도 들어서고, 공방도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 방문객도 점차 늘고 있다.

40~50m 절벽 아래를 무지개 계단을 밟으며 내려가면 잘 정돈된 해안 산책코스를 거닐 수 있다.

또 다른 계단에는 암벽을 따라 아기자기한 타일로 길을 꾸며 의외의 매력을 만날 수도 있다.


◇ 영화창의도시, 부산

국제시장과 흰여울길 이외에도 부산 곳곳이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다양한 결을 내포한 부산의 혼종성 때문이다.

숱한 결로 이루어진 도시의 이미지들이 당장 보기에는 무질서하고 투박해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생동할 잠재성으로 인해 복합적 뉘앙스를 전하기에 매우 양호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유네스코(UNESCO)로부터 세계 세 번째(아시아 최초)로 '영화창의도시'로 지정받은 부산은

영화제나 영화시설 외에도 분명 이런 영화적 장소의 매력을 한껏 내뿜는 도시임이 틀림없다.

보전과 재생, 그리고 개발의 행위가 역동적으로 진행되는 도시의 생태계가 잘 관리되고 조성돼

더 많은 감동을 선사하는 장소로 가득해지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늘 그리운 도시, 다시 방문하고 싶은 도시로 자리매김하기를 응원한다. 



동명대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