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시간' '신비'를 간직하다
을숙도·외양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생명의 갯벌 빚어낸 태고를 거슬러…침략의 역사 박제된 100년 전으로…
부산 사하구 을숙도 남단 내 공원으로 조성된 탐방체험장. 예전에 해양투기용 분뇨를 모아두던 시설이었다. |
자신이 사는 일상과 전혀 다른 흐름의 세계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대체로 신비감을 느낀다.
'히야~ 이런 세계도 있었구나.'
'동물의 세계'나 '정글의 법칙', '세계의 오지를 가다' 등의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는 몰랐던 세계가 참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감추어져 있던 세계에 대한 발견은 극적인 호기심과 더불어
일상에 대한 넓은 시야각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부산에도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내던 신비의 땅들이 있다.
100년 전 멈춰진 과거의 시간으로 한순간 '백투더 패스트(back to the past)'하는 곳이 있다면
어찌 신기하지 않겠는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원시 자연의 생태환경이 살아 숨쉬는 바로 그 현장 앞에 선다면 어찌 신기하지 않겠는가. 현대 도시의 일상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별천지 두 곳을 소개한다.
■ 자연의 신비 담은 을숙도 남단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은 온통 신비의 세상이다.
강한 파도의 바다는 강물의 잔잔히 밀려 내려옴을 이기지 못하고 뒤섞인다.
강이 실어 나른 모래나 자갈은 한톨 두톨 쌓이고 쌓여 수면 밖으로 거대한 새 땅을 만들어 낸다.
이 연안사주와 넓은 갯벌에는 온갖 생명이 서식하며, 그것을 먹이로 하는 철새들이 겨울이 되면
추운 북지방으로부터 떼를 지어 날아온다.
브이(V)자를 형성하며 나는 철새떼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한 무리가 오는가 싶더니 연이어 셀 수 없이 많은 철새들이 하늘을 가득히 메운다.
선두의 비행에 따라 대열의 흩뜨림이 없이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날아간다.
또 보금자리를 찾아서 내려앉는다.
많을 때는 100여 종의 수만 마리 조류를 관찰할 수 있으니 가히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라 할 만하다.
다름 아닌 새(乙)가 많고, 물이 맑은(淑)은 섬이라 이름 붙인 '을숙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을숙도는 부산이 소중히 간직해야 할 신비의 땅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의 어느 광역도시가 이만한 규모의 철새도래지를 가지고 있던가.
억만금을 주고도 인공적으로는 도무지 조성할 수 없는 귀하디귀한 자연의 선물이다.
이곳에 이미 건립된 을숙도대교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더는 인위적 개발행위로 인해
자연의 자정능력을 잃게 해서는 곤란하다.
그나마 '낙동강하구에코센터'에서 이곳의 소중함을 알리고, 지키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구지역의 자연생태에 대한 전시와 체험교육은 물론, 이 지역 환경보전을 위한 관리의 업무를 맡고 있다.
가끔 조류독감(AI·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이 발생할 때에는 즉각 탐조대의 출입을 차단한다.
에코센터의 2층 탐조전망대에서는 전면 유리창 너머로 습지와 조류들의 생태환경을 망원경으로 감상할 수 있다. 자태가 빼어난 왜가리나 텃새인 흰뺨검둥오리 등을 만날 수 있다.
을숙도의 신비를 더 깊숙이 느끼려면 남단 끝지점에 있는 '탐방체험장'엘 들어가야 한다.
에코센터 옆길에서 하루에 몇 차례 운행하는 전동카트를 타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편하게 방문할 수 있다. 이 곳 탐방체험장은 예전에는 도시에서 발생한 분뇨를 해양투기하기 위해 모아두었던 '저류시설'이었다.
일종의 대규모 똥통인 님비시설이 바로 여기 천혜의 철새 낙원 바로 곁에 떡하니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분뇨의 해양투기가 금지되고, 한강의 '선유도공원'을 참조하여 탐방체험장으로 재생시켜 놓았다.
오염 떼가 그대로 흔적으로 남아 있는 콘크리트 벽을 존치시키고, 나머지 남은 주변 환경은 멋진 조경으로 꾸며서 하나의 작은 공원으로 변신시켜 놓았다. 여기에 서 있다 보면 기묘한 기분이 든다.
탐방체험장에서 시간을 잘 맞추어, '낙동강 생태탐방선'을 탈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묘미다.
모래섬 연안사주(도요등-백합등-맹금머리등-신자도-장자도-대마등)를 둘러보는 코스랑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 화명생태공원까지 왕복하는 코스 등이 개발되어 있다.
단순한 유람선 수준이 아니라, 하구의 지형, 조류, 식물, 서식환경 등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아직은 시작 단계라 콘텐츠 개발과 해설의 수준을 향상시켜야 하는 실정이긴 하지만,
앞으로 부산관광의 매우 의미있는 한 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수탈의 역사 남은 외양포
강서구 대항동 외양포의 옛 일본군 포진지 터 전경. |
대륙 침략의 야욕을 품은 일본은 러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대비하여
한반도 동남단에 위치한 부산 및 진해만 일대에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중에서도 서쪽으로 진해만 요새사령부와 동쪽으로 부산항을 끼고 있는
가덕도가 방어기지로서 적격이었다.
일본군은 주민들로부터 토지를 강매한 후 쫓아내고는 자신들의 기지를
구축하였다.
광복 전까지 일본 군대의 전초기지로 사용되었다가, 광복 이후
모든 가옥과 전답이 국방부의 소유로 귀속되었다.
그 이후 원래 살던 주민들이 귀향을 하였으나, 국유지를 함부로
증개축할 수 없다 보니 낡은 상태로 지금껏 살고 있다.
일본 군대가 사용하던 막사나 무기창고, 장교 사택 등을 약간의 내부수리만 했을 뿐이다.
그 덕에 100여 년 된 건물들이 박제된 듯 그대로 남아 있다.
이것은 침략과 수탈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가덕도 '외양포'에 대한 이야기이다.
외양포는 전쟁과 평화의 메시지를 후세에 보여주기 위해 반드시 원형 보전되어야 할 마을이다.
100년 전의 시간을 바로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비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이만큼 역사의 현장이 마을 통째로 보전되어 있는 도시가 또 얼마나 있겠는가.
억만금을 들이더라도 만들어내기 어려울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니 괜시리 역사관을 추가로 만든다 어쩐다 하는 개발의 형식보다는,
원형 보전에 우선적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다.
현재 마을에는 20채가량의 집이 있다.
함석기와를 얹은 박공의 형태나 지붕기와를 받치고 있는 서까래는 언뜻 봐도 우리의 전통적인 집짓기 방식과는 다른 모양새다.
겹겹이 나무를 겹쳐 벽을 바른 양식이나 사각형 격자무늬로 된 창문도, 햇볕이나 비를 막기 위해 설치한
창문 위 눈썹지붕 등 분명 일본식이다.
마을 곳곳에 있는 우물터도 특이하다.
당시 많은 일본 헌병들의 식수를 섬에서 해결하려다 보니 마을 여러 군데에 우물을 파게 된 것이다.
우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지붕 구조물은 붉은 벽돌을 한땀한땀 쌓아 올려 아치 형태로 틀을 잡았다.
철물을 덧대어 구조를 보강한 디테일한 부분까지 살펴보면 대개 정성 들여 지으려 했음을 느낄 수 있다.
외양포의 일본 건물 중 가장 압권은 마을 뒤 언덕에 은폐시켜 조성한 포대진지이다.
수풀로 가려져 있는 요새의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라게 된다.
한쪽에는 포를 설치할 수 있는 발사대터와 반대쪽으로 충분한 탄약의 비축이 가능한
창고시설 2동이 땅에 묻혀 있다.
길이 80m 가량의 바닥은 시멘트로 평탄하게 정리되어 있고, 양 사방에 축대를 쌓고 또 그 위에
흙을 덮고 대나무 따위를 심어 밖에서는 전연 볼 수 없는 엄폐부를 구축해 놓았다.
거의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는 군용시설에는 전운(戰雲)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잠시 군사들이 자리를 비운 듯 한
긴장감이 여전히 감돌고 있었다.
다급히 움직이는 군사들의 발걸음 소리와 대포 쏠 방향으로 매섭게 노려보는 눈매가 수풀 사이사이에서 느껴져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이런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지금까지는 그냥 방치 상태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하지만 장차는 여기에 스토리텔링과 멋진 기획을 첨가함으로써, 둘도 없는 훌륭한 역사 교육장
혹은 체험공간으로 잘 조성되어지기를 기대한다.
동명대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
'부산 이바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 도심 여행] 나만의 '스페셜 에디션'을 찾아서 (0) | 2015.07.30 |
---|---|
역설의 공간Ⅱ[현대사와 부산의 장소성]'고리원전'과 부산, 그리고 우리의 '안전'과 '생명권' (0) | 2015.07.25 |
[부산 도심 여행]부산 ‘매축지의 현장’과 역사를 찾아서... (0) | 2015.07.22 |
이야기 공작소[부산진 '野史野談']‘신발공장’의 추억 (0) | 2015.07.18 |
역설의 공간Ⅱ[현대사와 부산의 장소성] '부관페리' (0) | 2015.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