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쌓인 애환', 이야기가 되다
이러쿵저러쿵 이바구로…지나갈둥말둥 골목길, 오르락내리락 달동네가 숨쉰다
'유치환의 우체통'에서 보이는 전경. 부산항 북항을 조망할 수 있다. |
부산에는 소위 '달동네'가 여러 군데 있다.
산이 많다 보니 경사 지형에 뿌리를 내린 집과 마을이 곳곳에 형성되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민족의 아픈 역사를 통과하는 동안
부산은 노역자 혹은 피란민의 임시 거주처가 되어 주었다.
몸을 기댈 수 있는 땅 한때기 확보하고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잇고 이어서 허름한 판잣집을 지어 살았다. 겨우겨우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지붕을 뜯어고치고, 금 간 흙벽을 벽돌벽으로 바꾸어 가며 지금껏 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낡아 허름하고 불편한 달동네 마을에 최근 외지인의 발길이 잦다.
한두 명이 겨우 지나 갈 둥 말 둥한 좁은 골목길, 삶의 온갖 체취가 퀴퀴하게 묻어나는 동네에
사람들이 왜 방문하는 걸까.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싹 쓸어버려야 할 재개발 대상이던 이곳을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둘러보는 데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 산복도로 이야깃거리를 덧입은- 이바구길
'김민부전망대' 일대. |
'산복도로'는 부산의 주요 간선도로 중 하나로 '산허리(山腹)'를 따라서
구불구불하게 이어 달리게 만든 2차로 도로를 말한다.
산 중턱까지 다닥다닥 집 지어 사는 경사지 마을 주민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도로이다.
도심지 빌딩들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형성된 길이기에
저 너머 바다의 멋진 풍광까지 덤으로 볼 수도 있다.
그중 가장 좋은 뷰를 자랑하는 곳이 동구 수정동에서 초량동을 거쳐
중구 영주동까지 이르는 구역이다.
이 길 곳곳에서 북항과 부산항대교, 그리고 먼바다까지의 파노라마 조망을 볼 수 있다.
푸른 하늘과 바다, 대교와 지나는 배들, 빼곡한 도심지 건물들과 복잡한 거리가 켜켜이 겹쳐져 보이는 장면은
뭐라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동이 있다.
점점이 불빛 밝히는 야경 또한 부산이기에 가능한 독특한 이미지를 표출한다.
이 구역 곳곳에 도시재생 프로그램의 개발이 한창이다.
이름하여 '산복도로 르네상스'가 그것인데, 역사와 문화적 인자를 발굴하여 스토리텔링함으로써,
단순 조망만이 아니라 흥미로운 지역 체험이 되도록 유도한다.
지역민을 위한 도로 정비와 마을 활성화는 물론이거니와 방문객의 흥미 유발을 진작하기 위해 전망대,
전시공간, 체험공간, 식음공간, 숙박공간 등을 신설하고 있다.
여기에 이러쿵저러쿵 이야깃거리까지 덧입히니, 그 어떤 소설책보다도 더 감성적인
시간여행의 일번지로 급부상한다.
현재 하나의 관광루트로 정착된 곳이 바로 '이바구('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길'이다.
부산역 길 건너편에서 시작한다.
부산 최초의 사설병원이었던 '옛 백제병원'이 옛 모습 그대로를 거의 간직하고 있으며, 부산 최초의 창고시설인 '남선창고'는 마트에 몸통을 모두 내어주고 담벼락만을 흔적으로 남겨두고 있다.
지역 출신 유명인들을 소개하는 '담장 갤러리'를 거쳐 조금 오르면, 수직으로 곧추서서 끝이 까마득하게 보이는
'168계단'과 맞닥뜨린다.
오르다 옆길로 빠지면 시야가 탁 트여 북항 전체를 구경할 수 있는 '김민부 전망대'에서 잠깐 쉬었다 갈 수 있다.
동네의 허름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만든 '6·25 막걸리집'과 '168도시락·국집',
게스트하우스인 '이바구 충전소'를 구경하고서 또 경사로를 따라 오르면,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인술을 펼쳤던 장기려 박사 기념 '더나눔센터'를 만난다.
또 근처 '이바구 공작소'에서는 이 지역의 역사와 삶의 이야기들을 글과 영상으로 전해 들을 수 있다.
산복도로인 망양로를 따라 수정동 쪽으로 10여 분 걸어가 '유치환의 우체통'에서는 문학편지의 낭만에 잠깐 빠져보고, 야경 체험에 딱 좋은 게스트하우스 겸 카페인 '까꼬막'에도 들를 수도 있다.
한편 '이바구공작소'에서 반대로 영주동 쪽으로 200m가량을 걸어가면 '역사의 디오라마' 구조물에서
또 다른 각도의 바다 조망을 만끽할 수도 있다.
더불어 부산역 건너 차이나타운에서 출발하는 '이바구 자전거'도 체험 전 미리 챙겨야 할 정보다.
건너편 마을을 보고 있는 '어린왕자' 조각상. |
■ 색동 집과 문화로 짜깁기한- 감천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에 방문객 수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2014년 한 해 동안 80만 명가량 다녀갔다고 하니 하루 평균 2000명씩은 꾸준히 외지인으로 북적였다는 얘기다. 그것도 대다수 여행자는 삼삼오오 젊은 층이며,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의 외국 관광객도 어렵잖게 만날 수 있다. 이제는 꼭 가볼 만한 부산의 대표 관광지로 곳곳에 소개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아무도 찾지 않던 소외된 달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오갈 데 없어 겨우 정착하여 사는 산비탈 판잣집에 무에 볼 것이 있다고 사람이 이리도 몰려드는 것일까.
주민은 벽에 페인트칠하고, 지붕 일부를 고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2009년 국고 지원 환경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동네 곳곳에 벽화와 조각품을 설치하고, 폐가를 활용한 공방을 만들면서부터 '문화마을'로 서서히 알려졌다.
감천문화마을 전경. |
오르락내리락 골목을 따라가며 벽화를 찾아내고, 흥미로운 주제의
조각품과 전시공간을 둘러보는 즐거움은 차별화된 매력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였다.
마을 초입의 지붕에 앉아 있는 사람 얼굴의 새 조각품, 지역 노인분들이
제작한 거대한 물고기 모양 입체벽화, 그리고 건너편 마을을 바라보는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조각상 등이 특히 인상에 깊이 남는다.
거기에 '어둠의집', '바람의집', '빛의집', '평화의집', '감내어울터' 등의
전시체험공간은 하루쯤 방문하기 좋은 훌륭한 투어 코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 살고 계신 지역민에게는 조금 죄송한 말이긴 하나,
외지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독특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땅과 밀착되어 거주하는 투박한 듯 정겨운 삶의 모습이 그렇고, 집들
사이사이 샛길에서 동네의 오랜 속살을 만질 수 있다는 신비감이
더욱 그렇다.
거기에 새로운 문화 인자들을 덧대어 짜깁기하자 마을 전체가 통째로 살아난 것이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 '폴 포츠'의 사건과 같이 어두운 회색빛의 동네가 일순간 달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화혜장 안해표 선생의 작업 모습. |
그와 동시에 그간 모르고 지냈던 이 마을만의 지형적 잠재력 역시
엄청난 장점으로 다가왔다.
투어코스의 정점에 있는 '하늘마루'의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도심과 바다,
산과 하늘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장쾌감이 있다.
미로와 같은 골목을 빠져나와 마을 전체를 관망하는 묘미도 있다.
또 감천문화마을 자체가 반원형 골짜기로 된 계곡 지형이기에
이쪽 능선에서 반대쪽 능선의 집들을 볼 수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어깨와 어깨를 서로 걸고 산자락을 따라 연이어져 있는 건너편 집들의
알록달록한 모습이 마치 작은 블록들이 조합된 장난감과 같은
낭만을 느끼게끔 한다.
돌아가는 길목에 우연히 기와를 지붕에 얹은 집이 있길래, 빼꼼 문을 열어 보았다.
여러 기회로 말로만 들었던 화혜장 안해표(부산시 무형문화재 17호) 선생의 작업장이 아닌가.
염치 무릅쓰고 들어가 둘러보았다.
작업공간과 함께 멋스러운 전통꽃신(화혜)이 진열되어 있다.
신의 모양도 모양이려니와 각 색상의 조합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기절할 지경이었다.
오랜 시간을 감천을 지키고 있는 진짜 소중한 '지역문화'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보다 더 훌륭한 이야깃거리(문화유산)가 또 뭐가 있을까 싶으나
실상 방문객 대다수는 이곳을 모른 채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린다.
감천문화마을이 더욱 멋진 세계적 관광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난잡한 벽화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이런 참 문화를 더욱 발굴하고 부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동명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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