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예술]

[이미지의 모험]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남성 상징계 속의 흰 고요, 히파티아

금산금산 2015. 8. 19. 21:39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남성 상징계 속의 흰 고요, 히파티아

 

 

 

남성중심 질서에 반기…한 여성이 숨어있다

 

 

라파엘로가 바티칸 궁에 그린 벽화 '아테네 학당'(1501년께).

 

 

 

 

 

- 학당에 초대된
- 유일한 젊은 여인
- 순백의 옷차림에
- 고요한 침묵의 응시

- 당장 지우라는
- 주교의 압박에도
- 왜 굳이 고집스럽게
- 화면 속에 담았을까

- 남성들이 만들어낸
- 오만함과 요란함 속
- 라파엘로의 여성성
- 숨구멍 아니었을까


그건 경이로운 설렘이었다.

중학교 때던가?

새 교과서 속표지에서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 냄새와 함께 그 그림을 만났을 때,

소년은 금지된 어느 먼 세계의 문을 열어버린 것만 같았다.

소년은 문고리를 잡은 채 한동안 정체 모를 아우라의 광채 속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그것은 온통 전율이었지만 낯선 수수께끼들이었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과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그 그림은 만날 때마다 새로운 수수께끼로 재조직되곤 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바티칸 궁의 서명실 4개의 벽에 벽화를 맡겼을 때 25세 청년 라파엘로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당시 옆의 시스틴성당에서는 다른 거대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거장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로 유명한 바로 그 천장화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 라파엘로는 거장의 작업을 의식했지만, 결코 주눅이 들지는 않았다.

라파엘로는 한 벽에 그리스 로마 문명의 위대한 사상가를 모두 초대하는 대담한 기획을 한다.

이름만으로도 황홀한 당대 최고 철학자들이 기꺼이 라파엘로의 초대에 응하여

자신의 삶과 사상을 상징하는 포즈를 취했다.

천 년의 정신사를 풍미한 사상가들을 라파엘로는 르네상스 최고 교양의 수준에서 분류하고 세심하게 배치했다. 손가락으로 하늘(이상·이데아)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오른손을 내밀어 지상(현실)의 세계로 향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상하좌우 배치는 자못 정교하다.

등장인물은 소그룹을 지어 각각의 이야기를 이루는데 그들의 표정과 동작이 무척 실감 나서 보는 즉시

그들의 이야기와 대화를 구성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저 숱한 천재들에게 일일이 철학적 명찰을 붙이고자 하지 않는다.

좀 다른 수수께끼와 만나 볼 작정이다.



■ 알렉산드리아의 눈부신 꽃

히파티아와 스핑크스(추정) 부분을 확대한 것이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당신과 나는 밤낮으로 성서를 읽는다./당신은 검은색을 읽지만/

나는 흰색을 읽는다."

이제 우리도 아테네 학당의 흰색을 읽어보자.



너무나 당연한 듯해서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

아테네 학당을 가득 메운 등장인물들은 놀랍게도 모두 남자다.

그런데 저 남자들끼리의 오만한 지적 카니발 속에 한 여자가 숨어 있음을

우리는 경이롭게 발견해야 한다.

어디일까?

화면 왼쪽 하단, 앉아서 노트를 펴고 뭔가 쓰고 있는 사람은 피타고라스다. 그를 중심으로 한 그룹은 모두 낮은 자세로 구부리거나 몸을 비튼

곡선 구도를 이루고 있다.

그 곡선의 덤불 속에 수직선을 부여하며 서 있는 인물을 보라.

분명 여자이지 않은가.

그녀는 우리가 그녀를 발견하기 전부터 이미 우리를 보고 있다.

아테네 학당에 초대된 유일한 여자, 그녀의 이름은 히파티아다.

 

히파티아는 4세기께 알렉산드리아의 눈부신 꽃이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고전문화가 저물기 전, 마지막으로

찬란하게 물든 황혼이었다.

그 황혼 속에서 히파티아는 가장 황홀한 빛이었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으며, 뛰어난 지성과 미모로 학문의 뮤즈로 추앙받았다. '뮤즈 여신에게' 또는 '철학자에게'라고 주소를 쓴 편지는 당연히 그녀에게 배달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녀의 강의를 듣기 위해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타고 오는 마차가 매일같이 장사진을 이루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는 첨예하게 충돌하던 종교적 대립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로마제국흥망사'에서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성스러운 사순절 기간인 그 운명의 날"이라고 비장하게 서두를 쓴 그 날, 그 순백의 옷과 아름다운 몸은 광신도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겼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문화도 함께 몰락하고 말았다.

그 비극의 여인이 거기 있다.



■ 또 다른 묘령의 소녀 얼굴

저 여인을 보라.

순백의 옷을 입고 고요히 신비한 침묵 속에 싸여 우리를 보고 있지 않은가.

그녀의 침묵은 '아테네 학당'의 정교한 질서에 난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다.

모든 등장인물이 무리 지어 혹은 홀로 무언가 수행하며 각자 특유한 이야기 속에 있을 때, 그녀 혼자만이 아무것에도 관여하지 않고 그냥 거기, 아득히 서 있다.

수많은 인물이 만들어내는 주장과 담론의 떠들썩한 소란은 문득 여기서 사라지고 고요만 남는다.

등장인물은 제각각 다채로운 색채 속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있다.

예컨대 플라톤이 입은 옷의 보라와 붉은색은 각각 공기와 불을 상징한다.

그것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늘과 가까운 것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블루와 카키색은 대지와 가까운 물과 흙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플라톤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4원소론을 완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무대에서 홀로 순백이다.

그 흰색은 저 요란한 색채의 진동을 흡수하면서 색채가 구축한 상징을 무화시킨다.

멜빌은 소설 '백경'에서 "흰색이란 색이라기보다는 색의 부재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색의 완전한 융합이다. 바로 그 때문에 눈의 풍경 속에서 무언의 공허가 있고 가득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히파티아의 아득히 흰 공허에는 어떤 가득한 의미가 있을까?



그녀의 시선을 보는 일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일이다.

등장인물들이 각자 이야기 대상에 시선이 얽혀 있을 때, 그녀만이 대상에서 벗어나 화면 밖을 향한다.

그 시선은 화가 자신과 직접 교감하는 시선이며,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는 시선이다.

그런데 이처럼 정면을 향하는 시선이 둘 더 있다.

먼저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내인데 그는 라파엘로 자신이다.

그림 속에 자화상을 슬쩍 끼워 넣는 일은 당시 자주 있었다.

문제는 다음 하나의 시선이다.

왼쪽 하단, 월계관을 쓰고 책을 보는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 옆에 한 어린 소녀(?)가 고개를 쑥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 소녀가 실존했던 사상가일 리는 없다.

이 묘령의 얼굴은 몸은 사자이고 상반신은 여자인 신화적 존재, 스핑크스로 추정된다.

그녀의 몸은 가려져 있다.

도대체 라파엘로는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한 것인가?



■ 히파티아 애초엔 중앙에 배치

사실 라파엘로의 밑그림에는 히파티아가 중앙에 배치되어 있었다.

한 주교가 강력히 반대하며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자리를 옮기긴 했지만,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의 일관된 구도를 어기면서까지 기어코 그녀를 그린 것은 무엇 때문이며, 스핑크스는 왜 거기에 그려 넣었던 것일까?

'아테네 학당'의 정교하고 일관된 구도는 히파티아(그리고 스핑크스)에 와서 치명적인 균열을 일으킨다.

히파티아는 남성이 만들어내는 화면의 규칙과 질서를 벗어난다.

그녀는 남성적 상징계의 구멍이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흰 고요와 시선에 이르면 남자들이 구성하는 오만한 개념과 요란한 의미는 무화되고 만다.

그녀는 신비의 여성성인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거기 서 있다.

어쩌면 논리의 균열, 사유의 빈틈, 의미의 구멍 그 언저리에 라파엘로의 여성적 예술혼이 숨 쉬고

있었던 것일까.

히파티아는 수없이 반복해서 성모 마리아를 그릴 수밖에 없었던

라파엘로의 아니마(여성성)가 숨 쉬는 구멍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