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약자 노인' -그들을 편안하게 하라
"아프니까 노인인데… 난폭운전에 화나고 건널목은 무섭다"
▲ 부산진역 앞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는 바람에 미처 길을 다 건너지 못한 한 노인이 도로 중간에 서서 다음 신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
오늘도 시청 등대 광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내가 이곳에 거의 매일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한 지도 벌써 5년.
한데, 오늘은 내가 타고 온 버스 때문에 화가 치민다.
버스에 오르기 무섭게 차가 움직이는 바람에 평소 안 좋았던 허리 병이 도졌다.
승객이 자리에 앉은 후, 출발해도 될 텐데. 뭐가 그리 바쁜지.
이게 끝이 아니다.
난폭운전에 급정거까지….
'기사 양반'이라고 외치며 나무라고 싶었지만, 입에서만 맴돌았다.
말이 나온 김에 건널목 얘기도 좀 해야겠다.
도로를 건널 때 정지선을 넘어온 차들을 보면 불안하다.
때론 생명의 위협마저 느낀다.
젊은이들이야 '뭘 그럴까'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노인의 걸음걸이는 젊은 사람보다 느리다.
그렇다 보니 건널목을 중간 정도 건널 때면, 이미 파란불이 깜빡거린다.
때론 신호가 바뀌어도 건널목을 다 못 건널 때도 있다.
그땐 차들이 여지없이 빵빵거린다.
걷는 게 불편한 노인의 맘을 알기나 할까?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했지만, 정말이지 아프니까 노인이다. -김 노인의 고백
교통과 관련해 노인이 겪는 불편함을 '김 노인의 고백' 형태로 재구성해 본 것이다.
김 노인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노인이 웃는 도시, 노인이 살기 좋은 도시의 한가운데에 바로 교통이 있다.
청각·시각 떨어지는 노인들
"타고 내리는 것도 위험하고
길 건너기도 전에 신호 바뀌어
낙상 사고 골절 사고 다반사
약자 위한 교통 정책 펼쳐야"
교통은 노인들의 발이다. 노인에게 교통은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문이다.
노인 인구 14%로 '고령 사회'에 진입한 부산은 이런 점을 고려해 교통 정책을 펼쳐야 한다.
■ 교통 편의 환경 너무 열악
대중교통이 없다면, 노인들의 발이 묶인 것과 같다.
그만큼 노인들은 버스나 지하철(도시철도)을 자주 이용한다.
하지만, 노인들의 대중교통 이용 환경은 너무나 열악하다.
노인이 되면, 특히 청각이나 시각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기 때문에 서로 보완 작용을 할 수 있는
안내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부산지역 시내버스의 경우 노선 안내 방송은 비교적 잘 이루어지고 있으나, 전자문자를 통한 안내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부산시 교통국 관계자는 "운행 중인 시내버스 2천517대 중 버스 내부 전자문자 안내는 시범 운영을 제외하곤 현재 시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오는 7월부터 민자 방식을 통해 단계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고 말했다.
버스와 인도 바닥의 높이 차이가 많은 것도 교통 약자인 노인들의 위협이 된다.
급하게 내리다 낙상사고, 발목 골절 등 다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저상버스가 이를 보완하고 있지만, 부산 시내에는 현재 51개 노선에
399대의 저상버스가 운행, 시내버스(2천517대) 대비 저상버스 보급률은
고작 15.8%에 머물고 있다.
지하철 역시 위험하거나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해도 개찰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용하기에 불편한 곳도 많다.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지역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는 2015년 4월 현재 285대, 에스컬레이터는 239대가
설치돼 있다.
잔여 시간 표시가 없는 건널목 신호등도 노인의 통행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부산 시내 8천844개 건널목 보행등 중 잔여 시간이 표시(도형형, 숫자형 등)되는 신호등은 2천318개로
26%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노인들은 교통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부산지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노인의 수는 매년 70명 안팎이다.
지난해 부산의 교통사고 사망자 185명 중 37.8%인 70명이 65세 이상 노인이었다.
■ '어르신' 위한 교통 정책 어떤 게
2010년 기준 부산시의 교통 약자는 81만여 명으로 전체 부산시 인구의 22.5%에 달한다.
하지만 노인, 장애인, 어린이 등 교통 약자를 위한 부산시의 교통 정책은 너무나 미흡한 실정이다.
교통 약자를 위한 부산시의 정책으로는 2006년 10월 처음 도입된 '두리발'을 비롯해 '장애인 콜택시 운영', '교통 약자를 위한 저상버스 운영'이 고작이다.
부산복지개발원 초의수 원장은 "교통 약자를 위한 시의 지원서비스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에 대한 이해 자체가 잘 안 돼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초 원장은 "노인이 집에 있으면 오히려 국가적으로 요양비 부담이 늘어난다. 따라서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택시이용권'과 같은 제도를 활용해 노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고령자에 대한 체계적인 교통안전 교육도 필수적이다.
버스를 타면, '내리실 때는 버스가 정류소에 완전히 정차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전하게 내려달라'는
안내 문구가 걸려 있지만, 이를 따르는 승객은 거의 찾기 힘들다.
백(74) 모 씨는 "승객이 내리고 타기 무섭게 곧바로 버스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행동이 느린 노인들의 마음은 심리적으로 불안해지고 더 조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산시 교통국 관계자는 "노인을 위한 운전과 안전 교육을 강화하고, 시민 점검단을 구성해 노인 등 시민이 만족하는 교통수단이 되도록 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달식·김상훈 기자 dosol@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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